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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보여주세요 안경 써도 깜깜해도 문이 스르륵 열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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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파이브지티의 정규택 대표가 자체 개발한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인식률이 99.8%에 달하는 이 시스템은 카메라를 바라보면 0.5초 안에 인증되고, 어두운 곳에서도 작동한다. ‘VIP’ ‘출입금지 인물’ 식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가산동에 자리잡은 파이브지티 본사. 외근을 다녀온 직원이 출입구 앞에 설치된 카메라를 잠시 바라보자 ‘인식됐습니다’라는 소리가 나며 굳게 닫힌 문이 저절로 열린다.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별도의 카드키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양손에 든 짐을 내려놓지 않아도 됐다. 평상시와 달리 안경을 쓰거나 모자를 착용해도 카메라를 바라보기만 하면 문은 열린다. 하지만 직원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승인할 수 없습니다’라는 냉랭한 소리만 날 뿐 문은 열리지 않는다.

 공상과학(SF)영화나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생체인식 보안기업인 파이브지티가 선보인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의 작동 모습이다. 이 시스템은 출입하는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가 인식해 미리 시스템에 등록된 사용자만 통과시킨다. ‘VIP’·’출입금지 인물’ 같은 리스트를 두고 별도로 관리할 수도 있다. 파이브지티 정규택(52) 대표는 “카메라를 바라보면 0.5초 안에 인증될 뿐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작동한다”며 “국내 최고 수준인 99.8%의 인식률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순수 토종기술로 개발한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의 상용화에 성공해 보안업계의 조명을 받고 있는 벤처인이다. 국내에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을 선보인 곳은 많지만, 대부분은 미국·중국 등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얼굴에서 수 만개의 특징을 찾아내 본인을 확인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활용,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의 국산 제품화에 성공했다. 해외로 나갈 로열티 지급비용을 아끼고, 생산비용 절감효과를 거둘수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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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게 적외선을 활용한 기술이다. 조명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적외선을 쏘기 때문에 밤에도 사람의 얼굴을 구분해 낼 수 있고, 조도(照度) 변화에 따른 인식오류를 최소화했다. 등록되지 않은 수상한 사람이 카메라에 인식되면 사진을 찍어 보안센터에 보내고, 원격제어를 통해 사이렌을 울리게하거나 보안을 강화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거나, 살이 쪄서 얼굴이 변해도 문제가 없다. 출입할 때 인식한 영상을 수시로 시스템에 등록, 얼굴 데이터베이스(DB)를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력 덕에 파이브지티는 다음 달부터 국내 굴지의 종합보안서비스 업체에 얼굴인식 시스템을 납품한다. 이 종합보안서비스 업체는 파이브지티의 제품을 활용해 보다 강화된 보안·통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상업·가정용으로 상용화할 예정이다.

 그가 보안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1987년, 소방설비 제조·관리업체인 동방전자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혼자 살던 집에 도둑이 들어 당시 두달치 월급을 모아 장만한 카메라를 훔쳐갔다. 범행도구로 사용된 쇠꼬챙이에 속수무책이었던 현관문에 분통이 터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아무나 열 수 없는 보안장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깨 너머로 배웠던 프로그래밍 실력을 발휘해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눌러야 문이 열리고, 잘못 입력하면 사이렌이 올리는 보안장치를 만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디지털 도어락’인 셈이었다.

 정 대표는 “강남에 살던 직장 선배와 술을 마시면서 그 보안장치 얘기를 했는데, 그 선배가 갑자기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며 “내가 직접 선배 집에 똑같은 보안장치를 설치해주고, 당시에는 상당히 큰 금액인 50만원을 대가로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이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보안·안전장비가 앞으로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설명했다.

 지방 공고 졸업장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이듬해 방송통신대 전산학과에 진학했고, 서울시립대에서 전자공학 석사까지 수료하며 독하게 가방끈을 늘렸다. 그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열화재 감지기’, 화재나 정전이 나도 계속 일정한 밝기로 빛을 내는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유도등’ 등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꾸준히 프로그래밍을 연마해온 덕분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특허·실용신안은 얼굴인식 특허를 포함해 20개가 넘는다. 이후 동방전자가 세계적인 보안전문기업 타이코에 인수된 뒤에는 R&D센터장으로 지내며 소방·보안 업계에서 내공을 쌓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생체인식 보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의 관심은 얼굴인식에 꽂혔다. 대표적인 생체인식 수단인 지문인식은 반드시 접촉을 해야하기 때문에 위생상의 문제가 있고, 손에 물이나 땀이 묻으면 오류가 발생한다. 홍채인식은 눈을 대야하기 때문에 번거롭고, 정맥인식은 가격이 만만찮다. 반면 얼굴인식은 물리적 접촉이나 별도의 동작이 필요하지 않은데다, 위조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점이 도드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간 쌓은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으로 승부를 내보자는 결심이 섰다. 그리고 2012년 함께 일하던 R&D센터 직원들과 함께 파이브지티를 창업했다. 휴일도 없이 1주일에 3~4일씩 밤을 새며 회사를 키워갔다. 올해 파이브지티의 예상 매출액은 50억원. 아직은 중견벤처 기업 수준이지만 안전행정부 스마트워크센터 등에 제품을 납품했고, 주요 상장사·투자은행(IB)에서 투자를 받을 정도로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IBG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세계 얼굴인식 사장의 규모는 올해 약 14억달러로 2018년까지 매년 26.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안시설·공공기관·은행·아파트단지 등 지금에라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나아가 PC 로그인, 스마트폰 잠금 해제, 온라인·모바일 결재 등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물론 한계도 있다. 뼈를 깎아내는 안면윤곽 성형수술이나 양악수술을 한 경우에는 본인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얼굴 DB를 업데이트 하기 전에 갑자기 살이 빠지거나, 반대로 살이 쪄서 얼굴 형태가 바뀐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생김새가 거의 흡사한 쌍둥이를 구별할 때에도 오류가 발생하곤 한다.

 그는 “좀더 정교한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중국 기업과 외국 유명 대학에선 대대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미국·중국 기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최근 얼굴인식 보안시스템 외에 또 다른 첨단기술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소음제어 솔루션 기업 실렌티움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선보인 생활능동소음제어(ANC) 기술이다. 소음을 인식하면 컨트롤러에서 주파수 파장을 분석한 뒤, 그 역파장을 가진 제어음을 스피커로 내보내 산업 현장이나 생활 속의 소음을 상쇄시킨다.

 그는 이처럼 50대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에 대해 “누구나 창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되물었다. 그는 “창업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자유로 가는 길이자, 노년을 대비하는 방법”이라며 “실패가 두려우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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