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을 떠나는 교황은 4박5일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숱한 아픔에 시달리는 한국인을 위로하고 축복했다. 하지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치유하고 소망을 주는 건 교황의 일이지만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다. 세월호에 발목 잡힌 한국이 ‘세월호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지금, 국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많은 권력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적게 일하고 가장 무책임한 상태에 빠져 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시급성을 기준으로 보면 ①‘세월호 피해 학생 대입특례 입학법안’과 ‘국정감사법안 개정안’ 통과 ② 정부조직법·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유병언법(범죄수익 환수) 등 안전혁신 법안들과 서비스 산업발전기본법·관광진흥법·소득세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조속한 심의와 처리 ③세월호 진상조사와 특별검사 임명 방식을 규정하는 ‘세월호 특별법안’의 합의와 국정조사 청문회에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인사의 출석 문제 결정이다. ①법안들의 경우, 국회가 오늘 당장 본회의를 열어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대입수시 특례입학 기회는 무산된다. 여야가 말을 안 꺼냈으면 모를까 앞다퉈 주장해 합의한 이 법안마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표류하면 국회의원들은 그 죄를 어디서 물을 것인가. 국정감사도 여야가 올해부터 두 번에 나눠 실시하기로 합의해 26일이 국감 시작일로 잡혀 있는데 근거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행정부에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19대 국회의원들은 임기 개시 3개월이 되도록 단 한 건의 법률안도 처리하지 못한 채 세비만 110억원을 받아갔다. 지난주엔 국회 1, 2당인 새누리당·새정치연합에 3분기 국고보조금 84억원이 지급됐다. 국회와 정당은 일 안 하고 국민 세금만 챙겨가는 낯 두꺼운 짓을 언제까지 거듭할 것인가.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는 무엇보다 지난 7일 있었던 ‘이완구-박영선 합의’를 새정치연합 의원총회가 일방적으로 깼기 때문이다. 상식과 합리를 무시하고 세월호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이 가져야만 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의 생떼와 투쟁정치는 또 한번 국민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새정치연합과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세월호 특별법안에 대한 합의는 깼지만 다른 법안들에 대한 처리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다른 법안들의 처리와 특별법안을 연계해선 안 된다. 어차피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진상조사위는 활동기간이 1년 이상 장기간이 될 것이고 특검의 수사는 그 이후에 있게 되는 만큼 특별법이 그리 화급을 다투는 사안은 아니다. 집권세력으로서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새누리당도 어떻게든 국회를 끌고 가야 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 추천권 문제를 더 깊이 세밀하게 검토해 새로운 절충과 협상의 여지가 없는지 찾아보길 바란다. 일단 이완구·박영선 원내대표는 오늘 무조건 본회의를 열어 가장 시급한 2개의 법안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