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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워도 입춘 온다 … 남북, 작은 사업부터 하나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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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의화 국회의장(오른쪽·박 대통령 손에 가림) 등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오전 광복절 경축식 행사 직전 여야 대표와 4부요인, 광복회장 등 30여 명과 10분 정도 환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입춘이 오듯 남북관계가 힘들어도 봄의 기운은 온다”고 말했다. “봄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미리 준비하는 자만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꼬인 남북관계를 풀려는 의지가 강하게 담긴 말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 간 문화교류와 소통을 강조했다. 내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할 문화사업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제안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스스로 답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남북한이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사업부터 하나하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문화유산의 남북 공동 발굴과 보존사업도 제안했다.

 지난 3월 독일 방문에서 한 드레스덴 선언 때 박 대통령은 역사 연구와 보전을 장려하고, 문화예술·스포츠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5개월이 지난 이번 경축사는 당시의 화두를 구체적인 사업으로 제시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북측이 조속히 답변해 달라고도 촉구했다. 고위급 회담이 열리면 이날 언급한 “작은 사업들”이 논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에선 박 대통령이 이전보다 소프트한 대북 접근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로켓 발사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 움직임과 대남 비방으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남북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문화 이슈를 꺼냈다는 얘기다.

 드레스덴 선언 직후 세월호 참사가 터져 정부는 대북정책의 불씨를 살리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던 게 최근 통일준비위 출범과 대북 인도지원책 발표, 당국대화 제안 등으로 다시 힘을 불어넣고 있다.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올 하반기를 그대로 넘기면 통일 준비 등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그동안 남북 문화교류를 추진해온 민간단체들은 반색했다. 10대부터 90대까지 참여하는 통일준비운동을 표방한 ‘1090 평화와 통일운동’(이사장 이영선)은 북한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 한국 영화 ‘만추’의 필름을 공유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이만희 감독의 딸 이혜영(영화배우)씨도 동참했다. 민병철 건국대 교수는 북한 관광 가이드들에게 맞춘 관광영어 책 제작을 추진 중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문화 교류의 경우 민간이 주도하고, 당국이 이를 지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대통령의 경축사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후속 실천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와 같은 통 큰 조치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글=이영종·이지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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