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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20> 당나라 시절 꿈꾸는 중국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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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중국에서는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 중에서도 한(漢)과 당(唐) 왕조가 차지하는 정치·문화적 역량과 지위는 남다르다. 그것은 중국을 지칭하는 접두어만 살펴봐도 드러난다. 가령 한에서 유래한 한족·한자·한문학·한의학 등과 당에서 비롯한 당인(唐人)·당풍(唐風)·당진(唐津) 등이 있다.

 우리가 군사적으로 강력했던 고구려나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통일신라를 그리워하듯 지금의 중국인은 한과 당을 떠올린다. 이른바 ‘한당성세(漢唐盛世)’, 곧 ‘한과 당의 좋았던 시절’이다. 이 두 나라는 오늘날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시점에서 그 목표가 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당성세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최종 목표는 ‘성당(盛唐)’, 곧 ‘전성기의 당’을 재현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왜 당인가. 당이 오늘의 글로벌한 현실에서의 강대국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는 현재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을 제국으로 호칭한 바 있고, 추아(A Chua)는 목전의 강대국들이 로마제국 등 역사상의 제국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고 진단한 바 있다. 현대의 제국이 되고 싶어 하는 중국에게 당은 훌륭한 모델인 것이다.

 당이 로마제국처럼 동아시아의 제국이었던 것도, 글로벌 시대의 강대국과 유사성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당의 문화가 유례없이 개방적이고 다양했던 점이 그 증거다. 8세기 무렵 전 세계에서 인구 100만을 넘은 유일한 도시. 고대의 글로벌 시티라 할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 각종 각양의 인종과 문화가 몰려드는 상황에서 시인 이백은 고구려 춤을 두고 다음 같이 읊었다. ‘금꽃 장식한 깃털 모자 썼는데, 백마는 천천히 돈다. 훨훨 넓은 소매 춤사위, 마치 해동에서 날아온 새와 같네.(金花折風帽, 白馬小遲回. 翩翩舞廣袖, 似鳥海東來)’ (『이백집(李白集)』 ‘고구려’).

 고구려 춤만이 아니었다. 당시 장안에는 페르시아인들이 보석가게를 하면서 금융업을 주도했고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는 미인들이 흘러 들어와 춤과 음악 등 예능 계통에 종사했는데 이들을 호희(胡姬)라 불렀다. 동남아 지역으로부터는 곤륜노(崑崙奴)라고 불리는 흑인들이 유입돼 하인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당나라 소설 속의 다음 같은 언급은 이국문화가 들불처럼 번진 실상을 반영한다. ‘장안의 젊은이들 마음속에는 오랑캐의 생각이 깃들어 있다.(長安中少年, 有胡心矣)’ (진홍(陳鴻), 『동성노부전(東城老父傳)』)

 당은 외국인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폈다. 최치원 등 신라인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고 많은 유학생·유학승들이 당으로 몰려들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렇듯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시책에 힘입어 대체로 안록산(安祿山)의 난 이전까지 당 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평화로운 공존이 유지된다.

 이제 세계제국으로의 비약을 꿈꾸는 중국이 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주변부 타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패권적인 태도를 버리고 겸허한 인식을 갖는 일, 바로 이러한 자세가 긴요할 것이다. 동북공정 같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이웃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행위는 오히려 성당(盛唐) 재현을 저해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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