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정치인들, 겉만 반질반질 속은 썩고 있는 시체"

중앙일보

입력 2014.08.13 00:50

업데이트 2014.08.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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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4일 한국을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독일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바티칸 AP=뉴시스]

바티칸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공식 일간지가 있다. ‘오세르바토레 로마노’.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로 담긴다. 11일 서울 태평로의 외신지원센터에서 만난 크리스티안 마르티니 그리말디는 ‘오세르바토레 로마노’에 글을 쓰는 교황청 전문기자다. 그만큼 교황을 가까이서 만나고,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기회도 많다. 이번에도 교황 방한 일정을 취재한다. 그에게 교황에 대해 물었다.

교황청 전문기자 그리말디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정치인들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교황께선 ‘소통하라, 소통하라, 소통하라’고 답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가장 인상 깊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루는 교구에서 이탈리아의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들을 새벽에 불러 모았다. 거기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그냥 번질번질한 대리석 묘지와 같다. 겉은 하얗고 반짝반짝하지만, 속은 썩고 있는 시체와 같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왜 놀랐나.

 “만약 어록에 대한 노벨상이 있다면, 이 말이야말로 노벨상감이라고 본다. 나는 그걸 ‘드라이 클리닝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외면은 근사하지만, 내면은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 프란치스코 교황은 늘 거기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모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당일,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새 교황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였다. 거기서 ‘교황을 아는 이들’을 취재해 이탈리아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란 책을 냈다. 최근 국내에서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찰력이 남다르다. 상담을 하면 30분 안에 문제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들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이들은 숫자를 익힐 때 주로 종이에 적거나 손가락을 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섯 살 때 직접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숫자 세기를 익혔다고 했다. 수녀님은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실질적이라는 설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고와 지향이 말이다. 한 번은 그가 쓴 기사를 교황이 직접 읽고 묵상을 한 적도 있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 추기경일 때 교황은 강론에서 ‘사제에게서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교황 선출 후에 그걸 기사화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벽 4시45분이면 일어난다. 신문을 본 교황께선 그 구절을 계속 되새김질했다. 그날 미사 강론에서 그 말을 다시 언급했다. 이게 이탈리아에서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 다음날부터 외신을 통해 사방에서 인용이 되기 시작했다.”

 -사제에게서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 무슨 뜻인가.

 “사제는 목자다. 늘 양의 곁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양의 냄새가 자신의 몸에 배지 않겠나.”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에도 교황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승용차와 운전기사를 거절했다.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다녔다.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밀리면서 자신의 몸에도 양 냄새가 배었던 셈이다. 그는 빈민촌 등을 자주 찾으며 양들의 생활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말디는 ‘미사 중 모유수유’에 대한 난감한 질문을 교황이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교황께선 젖먹이 아이가 배 고파 운다면 장소를 가리지 말고 젖을 물리라고 했다. 젖을 먹는 아이와 젖을 물린 엄마가 그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라며 말이다. 그런 답변에서도 우리는 양의 냄새를 맡는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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