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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노벨상 받은 춤토르, 화성 남양성지 경당 설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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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페터 춤토르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건축가’.

 200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스위스 출신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71·영어식 발음은 피터 줌터)가 천주교 성지의 경당 설계를 맡는다. 경당은 신자들의 기도 공간을 말한다. 경기도 화성시에 자리한 남양성모성지의 이상각 신부는 “성지 안 언덕 위에 규모가 작은 ‘자비로운 예수님 경당’을 지을 계획”이라며 “춤토르가 설계를 맡아 13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남양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성지다.

 국내에는 렌조 피아노·장 누벨·자하 하디드 등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춤토르의 이번 설계 참여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건축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회장이 찾아가 사옥 설계를 의뢰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을 만큼 춤토르는 자신이 맡을 일을 까다롭게 결정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춤토르는 스위스 숨비츠의 베네닉트 교회(1988), 스위스 쿠어 마산스 노인요양시설(1993), 독일 쾰른 콜룸바 뮤지엄(2007), 독일 바겐도르프의 클라우스 경당(2007) 등을 설계했다. 그는 돌과 흙, 벽돌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박한 재료를 사용하고 공간의 빛과 소리, 촉감까지 조율한 설계로 유명하다. 한 번 찾은 방문객을 열광적인 ‘춤토르 매니어’로 사로잡는다는 평을 듣는다. 2009년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춤토르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프로젝트만 맡는다. 일단 맡으면 마지막 디테일까지 헌신을 다한다”고 평했다. 그런 그가 서울 외곽도시의 경당 설계를 맡기로 한 것이다.

 현재 이 성지의 대성당은 다른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71)가 설계를 맡은 상태다. 대성당은 약 1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이에 반해 경당은 많아야 20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89년부터 이곳에 성지를 조성해온 이 신부는 98년 건축 기행에서 춤토르가 설계한 스위스 발스의 온천을 찾았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신부는 “그곳(발스온천)에선 물과 빛, 소리 모든 게 달랐다. 목욕을 한다기보다는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르는 곳 같았다”며 “지인들을 통해 오랫동안 의사를 타진해왔는데 올해 초 그가 설계를 맡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인들은 많은 아픔을 겪고 있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해달라”며 간곡히 다해 설득했다는 설명이다.

 춤토르는 3박 4일간 한국에 머무르며 성지 현장 외에도 서울 진관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비원·종묘·국립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한국가구박물관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춤토르의 한국 파트너로 참여하는 건축가 한만원(HNS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춤토르는 화려하고 과장된 조형을 좇는 요즘 건축 경향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함 속에 시적(詩的) 울림을 담아내는 드문 건축가”라며 “그가 작지만 보석같은 공간을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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