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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는 남자, 말리려는 여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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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26면

저자: 조조 모예스 역자: 김선형 출판사: 살림 가격: 1만5000원

벌써 다섯 달째다. 4월부터 내리 베스트셀러 차트 톱을 달리더니 아직도 톱텐이 상위권에 꿋꿋이 남아있는 생명력이다. 이 정도 뒷심이면 누가 읽어도 ‘괜찮다’라는 중간 이상의 점수를 준다는 얘기. 영국 50만 부니, 독일 100만 부니 하는 숫자의 인증은 둘째치고 영화화까지 결정됐다니 일단 책을 펴들지 않을 수 없다.

베스트셀러 깊이 읽기:『미 비포 유』

“왜 인기야?”라는 물음에 답하자면 한 마디로 ‘탄탄한 지반 위에 조금 색다른 집을 지어 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험난한 남녀의 사랑이 뼈대라는 점은 뻔하지만 소재나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까지, 기존에 줄곧 봐 온 로맨스와는 차별화를 둔다. 이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성인데, 비운의 러브스토리가 빠질 수 있는 무리한 상황 설정은 아예 제로에 가깝다.

남자는 6개월 뒤 죽음을 앞뒀다. 시한부 인생? 아니 되레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사지 마비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는 몇 번의 자살 시도 이후 오랜 설득 끝에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낸다. 여자는 이를 모른 채 만난다? 그런 우연은 없다. 환자의 간병인이 그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찬밥 더운 밥 가릴 게 없다. 간병인이 된지 얼마 안 돼 남자의 예고된 죽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두 남녀는 동서고금의 러브스토리가 안전하게 차용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비껴간다.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에게 치명적 결점을 안기고, 가난하고 꿋꿋한 여자에게는 섣불리 미모를 허락하지 않는다. 되레 결정적 순간마다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민폐형 대신 실수와 고생을 온몸으로 떠 안는 돌쇠형에 가깝다.

무엇보다 보통의 로맨스와 달리 이들에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의 밀당, 제 3자를 향한 질투 같은 것도 생략이다. 남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공언하며 유언장을 만들고 있고, 여자는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마지막 변수다. 남녀의 유일한 말다툼과 갈등은 삶에 관한 의지다. 예전처럼 살 수 없는 인생은 이미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남자, 있는 그대로의 삶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하는 여자. 그 둘 사이의 핑퐁 대화는 읽는 이에게 어느 편에 쉽게 설 수 없을 만큼 고민을 던져 놓는다. 안락사 논란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한편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인생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전개는 느리고 에피소드는 밋밋하다. 숨막히는 장면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그럼에도 책을 놓긴 힘들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 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성패가 아닌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리고 적어도 자의적 죽음을 택한 주인공의 최종 결단은 백혈병 환자를 되살려내는 드라마 결말과는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로 그 궁금증은 배가 된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안도와, 비현실적 동화에 질려버린 냉소를 오가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소 게임이다.

그래서일까. “당신에게 티슈 한 상자가 필요할 것이다” “거실에서 아기처럼 울고 말았습니다” 같은 광고 문구는 사실 과장으로 느껴진다. 책을 덮고 나면 가슴 속엔 슬픔이라기보단 담담한 사색이 자리한다. 오늘이 어제와 다를 수 있다는 교훈은 차치하고라도, 각자의 선택으로 행복해지는 사랑이 있음을 제시해주는 제3의 로맨스임은 분명하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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