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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네 죽음 진실 밝혀 제2, 제3 윤 일병 없도록 할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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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윤 일병 추모제에서 윤 일병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은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김경빈 기자]

아들 잃은 엄마는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군대에서 구타를 당하다 숨진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100여 명의 사람들 앞이었다.

 8일 밤 9시10분 서울 용산동 국방부 서문 앞. 군 인권센터가 주최한 ‘윤 일병과 또 다른 윤 일병을 위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자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이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노라 입대했던 아들이 가혹행위를 당해 숨진 채 돌아온 유가족이었다.

 28사단 윤모(20) 일병의 어머니 안모(58)씨는 다른 피해자 엄마들과 눈이 마주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굵은 눈물이 얼굴의 깊은 주름을 타고 내려왔다. 이날 밤 국방부 앞은 가혹행위로 아들을 잃은 엄마들의 눈물로 축축했다. 안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밤을 새워 써온 편지 3장을 10여분 동안 읽어 내려갔다(※다음은 편지 전문을 요약한 것).

 “보고 싶은 아들 ○○야. 엄마는 네가 떠난 뒤 가슴이 끊어지는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단다. 4월 6일 의식을 잃고 병원에 이송됐다는 비보를 듣고도 귀를 의심했단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선 이런 생각도 했어. 훈련소 퇴소식 이후 한 번도 면회를 못 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라도 네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신 일이 아닐까. 엄마는 너무나도 참혹한 모습으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네 모습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세상이 정지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야, 내 아들아…. 35일 동안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많이 아팠니. 엄마하고 통화할 때 한마디라도 얘기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힘들다고 아프다고…. 내가 4월 5일 면회 간다고 4일에 전화했을 때, 네가 ‘엄마 오지마 오지마 안돼 안돼’ 했지만 미친 척하고 한 번만이라도 부대에 갔더라면…(※안씨는 이 대목에서 2~3분가량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러나 면회가 안 되는데 찾아가면 네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주저앉고 말았단다. ○○야, 미안하다. 바보 같은 엄마를 용서해다오. 너무 후회가 돼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단다. 하나님이 주셨던 보물, 나의 아들 ○○야…. 곰곰이 생각해봐도 너는 한 번도 꾸지람을 들은 적 없는 다정하고 착한 아들이었지. 너의 존재만으로 가족의 선물이었고, 엄마가 속 상하는 일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서 내 손을 잡으며 ‘조금만 참아’ 하고 속삭이던 아들.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누나보다 먼저 다가와서 시원하게 주물러줬던 아들. 장학금 받아서 부족한 엄마·아빠를 도와주고 방학이 되면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아르바이트 해서 엄마·아빠에게 용돈까지 챙겨줬던 속 깊은 아들이었던 너. 군대 마치면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는 엄마·아빠 얼굴도 못 보고 하늘나라로 가버렸구나. 너는 고통 없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는 정말 편히 쉬렴. 엄마·아빠, 누나들 모든 가족들은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힐 거야.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서 너의 죽음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당할 제2, 제3 윤 일병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단다. 엄마·아빠도 남은 삶을 최선을 다해 천국에서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련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나의 아들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윤 일병, 구타로 인한 쇼크사 가능성”=윤 일병이 숨지기 직전 과다 출혈로 두 차례나 수혈을 받은 사실이 진료 기록을 통해 확인되면서 사망원인이 구타로 인한 쇼크사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사건 당일인 4월 6일 윤 일병이 이송된 병원의 응급실 진료기록에 따르면 이날 밤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00ml의 수혈이 이뤄졌다. 이에 대해 서울대 유성호(법의학) 교수는 “혈액검사 기록 등을 보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20대 남성 평균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며 “내출혈의 근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기도폐색은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지 결정적인 사인이 될 수 없다”며 “사인은 구타로 인한 외상성 쇼크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글=안효성·장혁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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