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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 풍향계 CC-TV '신원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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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1월 20일 퇴직 군 간부 위문 공연을 관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신원롄보는 세 꼭지의 시 주석 동정 뉴스를 보도했다. [신원롄보 캡처]

1980년대 한국에 ‘땡전뉴스’라는 말이 있었다. 공영방송이 매일 저녁 9시 ‘땡’ 하면 항상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뉴스를 방송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중국의 국영 방송국이다. CC-TV의 메인 뉴스는 오후 7시의 신원롄보(新聞聯播)다. 30분짜리 보도 프로그램은 전 중국에 의무적으로 전송된다. 9시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신원롄보의 핵심은 최고 지도부의 동정 보도다.

 중국은 정치 우위 국가다. 사회·경제·문화 전반을 정치가 규정한다. 정치는 공산당이 주도한다. 공산당은 민주 집중제로 움직인다. 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의 일거수일투족이 중요한 이유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각종 정치 코드가 담겨 있다. 이는 신원롄보를 통해 공개된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집권기에 따라 신원롄보도 변화했다. 총서기와 기타 상무위원의 보도 시간 분량의 차이다. 최근 홍콩 명보의 분석에 따르면 장쩌민 집권기 총서기는 평균 10분, 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등 기타 상무위원은 7~8분 동안 등장했다. 동정 보도가 넘쳐 방송시간이 30분을 넘기기 일쑤였다. 후진타오 시대 총서기의 분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우방궈(吳邦國)·원자바오(溫家寶) 등은 3~4분을 차지했다. 총서기와 상무위원의 비율에는 변화가 없었다. 시진핑 시대 들어 분량과 비율이 확 바뀌었다. 시진핑 총서기는 평균 15분으로 늘었고, 기타 상무위원은 합쳐도 1~2분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 시진핑의 막강한 정치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압권은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이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된 지난 7월 18일 신원롄보 편성이었다. 세계 주요 언론은 대부분 탑승자 298명이 사망한 비극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신원롄보는 아니었다.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남미국가연합 대화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 동정 보도에 첫 20분을 할애했다. 기존 30분인 방송 분량을 5분 늘렸지만 말레이시아항공기 추락은 마지막 뉴스로 보도했다. 이날 밤 중국청년보 허옌광(賀延光) 사진감독은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글을 올려 신원롄보를 비판했다. “300명가량이 사망한 세계적인 뉴스를 지린(吉林)성 문화 보급 뒤에 보도했다. 신원롄보는 과거 마하트마 간디 인도 지도자 암살을 지린성 풍년 뉴스 다음인 일곱 번째로, 미국의 9·11 테러를 장쩌민 주석 동정 다음인 두 번째로 보도한 전력이 있다.” 허 감독은 “(뉴스 보도에) 한 치의 진보도 없이 대국이 되겠다는 것은 모두 꿈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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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롄보에도 잠시 ‘봄’이 있었다. 2012년 11월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총서기에 취임한 뒤 2013년 3월 양회에서 국가주석에 당선되기까지다. 4개월여 시진핑 총서기-후진타오 국가주석 권력 교체기 동안 신원롄보의 모든 상무위원의 동정 보도는 합해도 1~2분을 넘기지 않았다. 정치 뉴스가 평소보다 절반 이하로 줄고 경제·사회·국제 뉴스가 급증했다. 당시 남방주말은 “신원롄보가 변했다”고 성급히 보도하기도 했다.

 각종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원롄보는 여전히 중국을 읽는 핵심 창구다. 화면에 숨어 있는 각종 정보 때문이다. 중국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저장상방(浙江商幇, 저장성 출신 상인 집단)이 공유하는 22가지 철칙 중 제1조가 ‘반드시 신원롄보를 볼 것’이다. 큰 장사를 위해선 국가 대사에서 정보를 찾아야 한다. 나라의 경제·정치·외교, 심지어 새로운 정책 하나에도 비즈니스 기회가 숨어 있다는 논리다. ‘달무리가 생기면 바람이 일고, 주춧돌이 축축해지면 비가 온다’는 말처럼 큰 장사치는 신원롄보의 미세한 신호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낸다.

 이렇다 보니 ‘신원롄보 읽는 법’은 호사가의 주요 토론거리다. “첫 10분 동안 출연 빈도가 높은 낯선 얼굴은 반드시 승진한다. 고위직 인물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카메라 렌즈가 빨리 지나치는 인물은 몰락이 멀지 않았다. 동정 보도의 길이·순서·배경에는 추호의 실수도 없다. 누가 출연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보이지 않느냐다.” 한 네티즌이 중국의 문답 사이트인 ‘즈후(知乎)’에 올린 신원롄보의 비밀이다. “모든 뉴스 꼭지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뉴스 원고를 쓰는 사람은 백치가 아니다”란 글에도 ‘찬성’ 클릭이 쏟아졌다. 영향력은 돈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2014년 CC-TV 광고 경매에서 신원롄보 직후 10초 분량 광고가 35억661억 위안(약 5897억원)에 낙찰됐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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