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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순신의 최종병기, 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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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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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풍경1: 왜란 때입니다. 원균은 수하에 있던 서리(書吏·문서 담당 하급 관리)에게 곡식을 사 오라며 섬에서 육지로 보냈습니다. 그 틈을 타 부하의 처를 겁탈하려 했습니다. 여인이 저항하며 밖으로 뛰쳐나와 악을 썼습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대목입니다. 원균의 리더십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원균은 조선 수군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탈영병도 많았습니다. 판옥선 한 척당 164명이던 군사 수가 90명으로 줄었습니다. 노를 젓는 격군도 반으로 줄었답니다. 결국 원균은 거제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했습니다. 거북선과 170여 척의 전함, 수년에 걸쳐 마련한 무기들이 모두 바다에 수장됐습니다. 부하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장수는 그렇게 무력했습니다.

 #풍경2: 원균의 모함에 빠졌던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됐습니다. 남은 전함은 고작 12척. 조정에서는 아예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했습니다. 여기서 이순신의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저희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대부분 12척의 배를 인수하러 허겁지겁 달려갔을 겁니다. 이순신은 달랐습니다. 그는 배를 접수하러 바다로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육지로 갔습니다. 열흘 넘게 전라도 땅을 돌았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을 쓴 소설가 김탁환은 “이순신 장군은 그때 숨어 있던 군사와 군량미를 모으고 민심을 돌렸다”고 말하더군요. 그런 뒤에야 바다로 가서 12척의 배를 챙겼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고요? 이순신 장군이 무엇으로 싸움을 했는지 한 방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건 단순히 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를 타는 사람, 그들이 먹고살 양식, 부하의 가족에 대한 안위까지 장군은 염두에 두었더군요.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이순신이 겨냥한 표적은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문서에 수결(手決·요즘의 사인)할 때 자신의 이름 대신 ‘一心(일심)’이라고 썼습니다. 그걸 간절히 원했다는 뜻입니다. 무엇과 하나가 되는 마음일까요. 부하와 하나 되고, 백성과 하나 되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니까요. ‘이순신의 일심’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장군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전라도에서 온 병사가 부모상을 당했습니다. 천리 길이라 고향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순신은 자신이 타는 말을 기꺼이 내주었습니다. 병사는 그 말을 타고 가 부모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말을 내주고 마음을 얻은 겁니다. 비단 전라도로 달려간 병사의 마음만 얻었을까요. 이 소문을 전해 들은 군영의 모든 병사 마음을 얻었을 겁니다. 저는 그게 이순신이 펼쳤던 ‘병법 중의 병법’이라고 봅니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과 마주했을 때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필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에 ‘일심’을 만드는 비법이 담겨 있습니다.

 상대방과 하나의 마음이 되긴 어렵습니다. 내 마음 따로, 상대 마음 따로니까요.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내 마음을 죽이면 됩니다. 그럼 상대와 하나가 됩니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럼 133척의 왜선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일심’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각자 자신의 마음을 죽이면 됩니다. 필사즉생(必死卽生). 그럼 거대한 하나의 마음만 남습니다. 그게 ‘일심’입니다. 12척의 배에 실었던 가장 파괴력 있는 무기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심은 천심(千心)·만심(萬心)으로 쪼개졌습니다. 어떡해야 일심이 될까요. 충무공 이순신에게 대한민국 국가개조를 위한 병법을 묻고, 또 묻습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