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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싸구려 위로는 가라 … 각계 '고수'들 17색깔 행복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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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판미동
388쪽, 1만5000원

행복에 관한 가장 유명한 우화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1906년에 쓴 『파랑새』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데 있다는 메시지는 행복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는 일종의 공리(公理)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묻는다,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가까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이를 찾는 방법은 여전히 막막해서일 게다.

 책은 행복을 화두로 놓고 17명의 인문학자·과학자·예술가를 만난 기록이다. 행복이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행복의 형태와 질감, 색깔과 맛을 찾으려는 시도다. 철학자에게 상처와 힐링을 캐묻고 뇌과학자에게 행복의 근원을 따진다. 천문학자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시인과 선악을 논한다. 책엔 행복에 관한 17가지 무늬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각자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여성 최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도 있고, 영화를 찍는 스님도 있다. 이들이 그려내는 행복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행복과 상처를 이야기할 때 이들이 짚는 부분은 신기하게도 겹치는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싸구려’ 위로를 질타하는 부분이다. 힐링으로 넘쳐나는 세상에 대해 눈속임이라고 비판한다. 유학자인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힐링의 구호가 가득한 세상에 대해 “위로라는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로라는 일시적인 처치에 기대지 말고 냉정히 자기를 들여다보고 가다듬을 것을 주문한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힐링 이데올로기에는 상처의 근원을 외면하려는 얄팍함이 숨어 있다”며 “상처의 원인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개선의 시도가 함께 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위로에 기대지 않고 부딪혀 얻어내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들어 찾아내야 하는 무언가다.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것 자체는 열심히 적극적으로 사는 거죠. 그러면서 많이 바라지 않습니다. 나중에 약간의 성과라도 얻어지면 그것이 저를 아주 행복하게 만듭니다.”

 책엔 그저 행복에 관한 사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학문과 예술의 ‘고수’들이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 왔는지가 생생히 드러난다. 그들의 삶을 엿보며 인생의 결이 서로 다르므로 행복의 무늬도 다름을 깨닫게 된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 그려야 한다는 사실도.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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