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억울한 죽음 방치하면 강군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4.08.0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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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선임병들의 구타로 숨진 28사단 윤모(22) 일병에 대한 군 검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7일 “ 사인(死因)은 기도 폐쇄에 의한 뇌손상이 아니라 구타로 의식을 잃으면서 기도가 막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법 적용을 하는 데 상당한 차이가 있다.

 법의학자들은 윤 일병이 오줌을 싸고 기도가 막힌 것은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말한다. 또 군 검찰의 수사 기록을 보면 지 상병은 윤 일병이 구급차에 실려간 뒤 동료 김 상병에게 “우리들이 수차례 폭행하다가 냉동식품이 목 안으로 넘어가 기도를 막았고 오줌을 지리는 등 평소와 다른 증세를 보였는데도 ‘꾀 부리지 마라’며 때렸다”고 털어놓았다. 윤 일병이 이상 증상을 보였는데도 계속 구타 했다면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군 검찰은 비난여론이 일자 뒤늦게 살인죄 적용을 검토 중이라 한다. 만약 이 사건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가해자들은 상해치사죄만 물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뻔했다. 또 가해자로부터 전해들은 진상을 바로 부대장에게 보고한 김 상병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가해자들의 의도대로 사건이 ‘질식사’로 조작됐을는지도 모른다.

 본지가 지난 5일 현역 사병 108명을 인터뷰한 결과 직·간접적으로 가혹행위를 경험한 사병이 22명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군대 내 자살의 상당수도 가혹행위와 연관돼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사법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군 검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 군 검찰은 형식적으로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지만 실제 대부분의 수사를 하는 헌병은 사단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군내 사건·사고의 책임이 있는 지휘관 입장에선 은폐·축소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현재 각군 소속으로 돼 있는 군 검찰과 군사법원을 국방부로 일원화하고, 국방부 장관이 군 검찰관과 군 판사를 임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대안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군대 내 사법체계의 폐쇄성부터 완화해야 한다. 윤 일병 유족들은 현장 검증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가족들은 목격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군 기밀을 핑계로 사건을 덮고 넘어가려는 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민간인들이 포함된 국방옴부즈맨 제도 등 군대 내 인권 상황을 감시·견제하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

 더 이상 윤 일병 같은 억울한 죽음을 방치해선 안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된다면 우리 군은 강군은커녕 유사시 적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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