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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 지역구 불출마의 배수진을 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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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3선의 지역구(경북 경산-청도) 국회의원이다. 경제 관료로 시작해 언론인으로 일한 경력도 갖고 있다. 정치력과 경제적 식견, 소통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그는 모처럼 등장한 실세 책임장관이다.

 최 부총리가 취임 후 행보에 거침이 없다. 뭔가 단단히 준비하고 있던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감이 압권이다. 취임 보름 만에 단기 경기부양 보따리를 풀어 기정 사실화했다. 논란이 클 법했던 부동산대출(LTV·DTI) 확대는 벌써 시행에 들어갔다. 기업유보금 과세와 가계소득 증대를 표방한 세제개편안도 6일 밀어붙였다. 많은 국민과 시장 참여자들이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최 부총리는 7·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는 데 한몫했다.

 좌우 양쪽에서 비판과 우려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긴 하다. 왼쪽에선 “말이 소득주도 성장이지 결국 부채의존 성장이다. 근본적인 경제양극화 해소책을 내놓으라”고 공격한다. 오른쪽에선 기업유보금 과세안 등을 놓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 포퓰리즘이다. 돈 벌 환경을 만들어주면 투자하지 말라 해도 한다”고 반발한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이들 화살이 도달하기도 전에 재빨리 내달려 또 다른 정책 보따리를 풀며 손님을 모은다. 내수 서비스업 육성과 규제 완화 등이 그것이다. 역풍까지도 미리 계산한 주도면밀함이 감지된다.

 최 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일을 도모해 보는 게 백번 옳다. 한국 경제는 지금 복합적인 무기력증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보는 게 맞다. 다만 치밀한 전략·전술 아래 승부를 걸어야 할 수순이 있다.

 재정과 금융·통화를 동원한 화포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어선 아무 승산이 없다. 이를 통해 얻을 시간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장기 구조개혁 백병전에 돌입해야 한다. 길고도 힘겹게 전개될 진짜 싸움이다. 여기서 패하면 재정 파탄과 가계부채 확대라는 상처만 남고, 주가도 부동산값도 다시 추락할 것이다. 불퇴전의 각오로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다.

 구조개혁이란 게 뭔가. 경제의 체질을 확 바꿔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것이다. 관광·의료·교육·금융·문화 등 내수 서비스산업을 육성해 수출 제조업과 균형을 갖추는 게 첫째다. 그래야 반듯한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가계의 소득이 올라간다. 좀비형 부실기업을 계속 솎아내고, 노동시장도 개혁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기 위해선 얽히고설킨 규제의 사슬을 끊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또 그 소린가 싶을 게다. 김대중 정권 이후 줄기차게 추진됐지만, 이제껏 진척된 게 별로 없다. 기득권 이해당사자들의 완강한 저항 탓이다. 기존의 규제 울타리에 안주해 온 특권층이다. 그들에겐 돈과 권력이 있다. 국회와 공직자, 시민단체들까지 교묘하게 움직이려 한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나눠 먹을 빵덩어리가 작아지면서 사회 구석구석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이번만은 구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기존 체력으로 우리 경제가 버틸 골든타임이 몇 년 남지 않았다. 최 부총리의 뚝심에 국민은 기대를 건다. 때로는 정면 돌파하고 때로는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정치권과 국회를 설득함으로써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그의 손발이 되어줄 것은 정부 조직과 공무원들이다. ‘관피아’ 논란에서 벗어나 10%의 문제 있는 공직자에겐 채찍을 가하되, 나머지 90%는 사명감을 갖고 뛸 수 있도록 당근을 줘야 한다.

 2016년 4월이면 차기 총선이다. 20개월 남았다. 지역구가 최 부총리를 부를 것이고, 지친 그도 정치권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조개혁에 1년 반은 짧다. 박근혜 정부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 지겠다는 당찬 자세가 요구된다. 차기 총선에는 불출마한다는 각오로 경제를 살려보라고 최 부총리에게 부탁한다면 가혹할까. ‘죽기를 각오하면 반드시 살 것(死則必生)’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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