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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내려먹일 미인 뽑으라" … 쌍꺼풀 수술, 보톡스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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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북한 응원단으로 온 이설주(오른쪽). 그의 방문 사실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공개된 직후 본지의 단독 보도(2012년 7월 26일자 1면)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평양에선 요즘 미녀 수백 명의 합숙훈련이 한창입니다. 20대가 주축인 이들은 찜통더위에 목이 터져라 합창하고 함성을 질러댑니다. 옷 입는 법과 헤어스타일, 화장술뿐만 아니라 말하는 법과 걸음걸이까지 배웁니다.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앞둔 모습과 유사한데요. 이들은 다음달 19일 개막할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북한 응원단입니다. 이미 지난 6월 말 선발을 마쳤고, 3개월간의 집중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 북한 응원단의 참가를 둘러싼 남북 협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참가 방침을 일찌감치 정했고, 응원단도 집중 연습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문득 예전 남북회담 때 가깝게 지내던 북측 인사가 떠오릅니다.

 딸의 결혼에 필요하다며 부탁한 국산 남녀 손목시계 세트를 방북길에 전해줬더니 그는 은밀하게 문건 한 장을 보여주더군요. 거기엔 향후 몇 달간의 남북교류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북한이 설정해놓은 남북관계 시간표였죠. 신통하게도 향후 일정은 그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북한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미리 결정한 뒤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번 미녀응원단은 35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연습장면은 한·미 정보당국의 위성망에 포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활동이 실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데요. 정보 관계자는 “얼굴과 피부색을 가능한 한 뽀얗게 만들려 햇볕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평소엔 금기시되던 짙은 화장을 배우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합니다.

 쌍꺼풀 수술이나 보톡스 시술도 이뤄진다고 합니다. 최근 북한에도 젊은 여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성형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당국이 필요하면 무상으로 혜택이 주어집니다. 몇 해 전 방북 때 평양 고려호텔 의례원(서비스 담당) K양은 “남조선과 외국 손님을 맞는 대외봉사 부문이나 해외식당 근무자는 적십자병원에서 무료로 쌍꺼풀을 해준다”고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응원단에 뽑혀 남한을 방문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거칩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을 비롯한 10여 개 예술대학에서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인물 위주로 선발한다는군요. 신장 1m60㎝ 이상도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번엔 김정은이 “남조선에 내려먹일 수 있는 기준으로 뽑으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이른바 ‘강남 스타일’로 불리는 여성들이 발탁됐다고 합니다. 출신성분도 깐깐히 따집니다. 선발 주체가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인 것도 철저한 검증을 위해서라는군요. 취재를 위해 응원단 출신 탈북자를 만나보려 했지만 어려웠습니다. 대북부처 당국자는 “2만6000여 명의 국내 정착 탈북자 중 그런 경력자는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꼼꼼하게 성향이나 출신성분 등을 따져 철벽방어막을 쳤다는 얘깁니다.

 이번 응원단 선발 때는 유난히 고위 간부 청탁과 비리가 심해 평양에 입소문까지 났다고 합니다. 기부금 명목의 뇌물이 오간다는데요. 외모가 수준 미달일 경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성형수술을 강요받기도 하기 때문에 선발명부에 올랐다가 금전 문제로 포기한 사례도 있다는 겁니다.

 선발될 경우 미모·사상 면에서 검증된 우수인력으로 간주되고, 향후 특권층으로 신분이 상승할 기회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과열된다는 건데요. 여기에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 응원단으로 왔던 이설주는 몇 해 뒤 후계자 김정은의 여자로 선택받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군 조종사 출신입니다. 평범한 집안 출생인 이설주는 20대에 북한 퍼스트레이디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평양판 신데렐라’가 된 데는 응원단 경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입니다. 정보 관계자는 “이설주가 응원단 선발에 직접 간여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노동당과 군부 핵심 간부들이 그녀에게 줄을 대려 혈안이 됐다는 첩보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최종 선발된 응원단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응원연습을 하고 사상교육을 받습니다. ‘응원단은 적진(남한)에 들어가 원수님의 위대성을 알리는 노동당의 선전선봉대’라는 게 핵심 주제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미녀 응원단’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남한 체류 중에는 늘 보위부 요원의 감시범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남한 사람과의 대화도 모두 보고 대상이죠. 저녁에는 하루 일과를 반성하고 상호비판하는 ‘일일 총화’(자체 평가모임)를 매일 한두 시간 갖습니다. 중대한 과오의 경우 보위부 요원들이 폭력이나 체벌을 가하기도 한다는데요. 응원단 숙소로 북한 선박인 만경봉호를 이용하는 것도 이런 내부 사정을 감추려는 의도라는 해석입니다.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는 소위 ‘물빼기’라고 하는 혹독한 교육·심문이 기다립니다. ‘남조선에서 보고들은 건 발설 않는다’는 서약에도 불구하고 부모나 친구에게 남한 이야기를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이듬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왔던 응원단 중 21명이 “남조선엔 차도 많고 우리보다 잘 먹고 잘산다”는 말을 했다가 함남 대흥교화소에 수감된 사실이 미 국무부의 북한인권실태보고서(2009년 9월)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지난달 판문점 협의가 결렬된 직후 “참가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위협한 북측 관계자들은 지금 곤혹스러운 입장입니다. 김정은이 아시안게임 북한 축구선수단 평가전 경기를 관람하는 등 참가를 기정사실화한 때문이죠.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세 차례 응원단 파견처럼 비용을 남측이 대라는 의미로 ‘전례대로 하자’고 주장합니다. 우리 정부는 응원단의 경우 참가국이 부담하는 ‘국제 관례’를 강조합니다. 응원단 체류비를 대려면 국민 세금인 남북협력기금을 써야 합니다. 기준은 명확합니다. 북한 응원단이 진정성 있는 화해협력의 사절인지, 아니면 미인계를 앞세운 대남 선전선동대인지 국민의 판단을 구해볼 일입니다.

이영종 기자

[사진 중앙일보DB,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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