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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이순신의 진짜 실력은 인성 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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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강일구]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12척 대 330척’.

 25일 국회 인성캠프에서 열린 영화 ‘명량’ 시사회. 갖은 고초 속에도 뛰어난 리더십으로 국난을 이겨낸 이순신 장군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하면서도 감동의 울림이 큰 이순신 장군의 스토리는 두 시간 동안 객석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반응은 사뭇 달랐다.

 “병법의 대가답게 회오리치는 울돌목의 해류를 기막히게 활용한 게 승전 요인이야.” “병목현상처럼 좁아지는 명량해협으로 적을 유인한 것부터 탁월한 전략이었어.” 영화를 관람한 어른들은 군사 전문가라도 된 양 이순신의 뛰어난 군사전략과 병법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캠프에 참가한 80여 명의 중학생 아이들은 이순신의 승리 요인으로 ‘인품’을 꼽았다. “판옥선이 해류에 휩쓸려 죽게 됐는데 백성들이 조각배를 타고 갈고리로 끌어올리잖아요.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정다훈(전북 정읍 배영중1)군은 “이순신의 훌륭한 인품이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적의 대장선은 맨 뒤에 있는데 이순신의 배는 맨 앞에서 혼자 싸웠어요. 솔선수범하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졌을 거예요.”(충남 천안 부성중3 황정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선조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잖아요. 그런 포용력이 병사들을 하나로 모았어요.”(경기도 여주 세종중3 전배민) 아이들이 영화에서 읽은 것은 전략도 병법도 아닌 이순신의 훌륭한 ‘인성’이었다. 어른들이 겉으로 드러난 전쟁의 결과만 논할 때 아이들은 더욱 본질적인 것을 봤다.

 2박3일간 아이들과 함께 캠프를 하며 편견이 깨졌다. 어른들의 ‘중2 병(病)’ 묘사는 잘못됐다. 반항심 많고 감정 기복이 큰 것은 그 또래에 당연한 성장통이다. 다만 이를 바르게 이끌어 줄 어른들의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시간이 주어지자 스스로 토론하고 고민하며 어른들도 보지 못한 본질적인 부분까지 꿰뚫어 봤다.

 세월호 참사 후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올가을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 1만1000여 개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이 의무화된다. 그러나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 어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180척으로 칠천량해전에 나선 원균은 참패합니다. 이순신은 단 12척으로 왜적을 대파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30여 년간 이순신을 연구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의 답변은 이렇다. “진짜 실력은 인성인 거죠.” 성적과 스펙만이 실력이라고 믿는 어른들의 그릇된 생각부터 바꾸는 게 인성교육의 출발인 이유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