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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내 곳곳에 불길…교통·통신 두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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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8일>
지난17일 계업확대·휴교령등에항의, 시위를 하기 위해18일 상오10시쯤교문앞에모였던 전남대생4백여명은도청앞으로진출했다.
학생들이 도청앞 광장을 점거하려하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면서 투석전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경찰의 최루탄발사와 현장에 있던 시민들도 피해를 본 사람이 늘어나자 더욱흥분, 이날낮 12시쯤 충장파출소를 투석으로 유리창을 깨는등 피해를 입혔다. 시위군중들은 경찰에 쫓기면서 길가에있는 동산파출소·산수파출소·지산파출소등을 투석으로 파손 시켰다.
학생들은 경찰의 제지가 심해지자 수개조로 나누어 광주시내 곳곳으로 분산, 시위를 벌였다. 학생회관앞에서는 경찰「페퍼포그」차1대를 3분의1가량 파손시키고 속칭 농장다리부근에서는 담양경찰서병력 30여명을 실은 경찰「트럭」을 포위, 경찰병력과 30여분동안 투석전을 벌였다. 이들 경찰관들은 다른 경찰병력 3백여명이 투입돼 구출됐다.
이때 경찰관 5명을 포함한 수십명의 학생이 부상했다.
광주시내 금남로와 충장로에 군병력이 투입된것은 이날 하오3시30분 전후.
전남북 계엄분소는 광주시내 일원 통금시간을 당초 저넉8시부터 다음날아침4시까지로 제한했다가 1시간뒤 이를 다시 하오9시로 정정 발표했다.
이날 학생들은『계엄을 해제하라』는등 구호를 외쳤으며 처음에는 이를 지켜보던 일부시민들도 하오에는 합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9일>
광주시내 중·고대학생들은 19일아침 9시30분쯤부터 금남로에 산발적으로 모이기 시작, 4백∼5백명으로 늘어났다. 시위군중들은 도청앞광장을 향해 행진을 벌이려했으나 군부대가 투입되는 바람에 흩어져 금남로양쪽 골목길 상가나 가정집으로 숨어들어갔다.
상오11시쯤 광주중앙여고·대동고 2천여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 운동장에 모였으나 군부대에 의해 교문이 봉쇄 되었다.
군부대가 하오2시를 전후하여 거리에서 일단철수하자 학생과 시민1만5천여명이 금남로5가쪽에서 도청을 향해 몰려갔다.
이때 경찰기동대가 최루탄을 발사하자 금남로2, 3가쪽으로 후퇴했다.
시민들은 정부기관·은행동에 투석,『사무실에 있지말고 나와라』『보고만 있겠느냐』고 외쳤다.
시민들은 길옆 전화「박스」·승강대등을 부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전남일보앞에서 경찰과 맞서면서 나무를모아 불을 질렀다.
시민들은 도청앞으로 밀고가려했으나「페퍼·포그」에 밀려 대치했다. 이때 시민들은 7층「가톨릭」회관(광주CBS는 7층)에있는 계엄군을 잡겠다고 마구 돌을 던졌으며 일부시민·학생들은 안으로들어가 유리창을 거의 깨어버리고 길로 의자나 집기등을 내던졌다.
또 군중들은 인근공사장에 있던 경유 2「드럼」을 길위에 뿌리고 불을 질러 화염이 시가지를 휩쓸었다. 이방화로 승용차 3대가 불탔다. 시민들은 경찰과 맞섰는데 길옆은행과 조선일보지사 사무실에도 돌을던져 거리에는 돌·유리·「드럼」통이 널렸고 승용차 2대가 검은 연기를 뿜었다.
하오3시쯤 군「헬리콥터」가 상공에 나타나 시민들의 해산을 종용했으나 시민들은 주먹으로 허공을 치면서『전라도사람을 모두 죽이고있다』고 말했고 군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하오3시15분쯤 계엄군2백여멍이 전남일보 앞에나타나 시민들은 돌을 던졌으나 이들은 물러서지않고 달려들어 시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오3시10분쯤 소방차가 동원돼 금남로에서 불타고있는 차에 물길을 퍼부었다.
도청청사에서 1km떨어진 금남로3·4가에서 시민·학생이 외치는 함성이 도청까지 들렸다.
3시30분쯤 도청에서 3백m쯤 떨어진 MBC청사에 시민·학생 1백여명이 난입, 청사안을 수라장을만들었고 MBC부근에있는 승용차3대와 MBC차고에있던 중계차 1대에 불을질렀다.
한편 광주에서 18km떨어진 광산군송정읍에있는 광산여고와 정광고등학교 학생1천여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내에 모여 농성을 벌였다.
하오4시 전남북계엄분소에서「헬」기로 담화문을 공중살포했다. 내용은 다음과같다.
『친애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국가안보를 염려하시는 우국충정으로 우리 계엄군을 성원해주시는데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우리계엄군은 포고문 제10호에 명시한 제반사항이 법에따라 원만하게 이행되기를 갈망하는 바이며 작금에 자행되고있는 일부학생들의 무분별한 난동은 사회질서와 시민생활에 크나큰 위협이 되므로 부득이 의법처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위법하지않고 범법의 경중을 엄밀히 조사해서 합법적으로 처리하고있읍니다.
그러므로 시민여러분은 황당무계한 유언비어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계엄군은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면서 광주시일원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읍니다.
시민여러분, 우리 계엄군을믿고 생업에 더욱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
이어 금남로4가에서 학생과 시민이 민간「트럭」1대를 군인쪽으로 밀어 공수특전대원 2명이 부상했다.
하오5시20분쯤 군인들이 일단 철수하자 학생과 시민1천여명이 금남로에 모여 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함성을질렀다. 10분뒤 자동차l대를 앞세운 대원 l백여명이 1가와 5가쪽에서 시민·학생들을 앞뒤에서 협공, 시민·학생들은 다시부근상가로 흩어졌다.
시민·학생들은 군이 퇴거하고 경찰만이 남아있으면 모여들기시작하고 군이 투입되면 방망이와 발길에 채여 부근 상가에 피했다.
전남도교위는 19일하오5시 더이상 고등학교수업이 정상화될수 없다고 판단, 광주시내 37개고교중 중간고사중인 광주상고등 5개교는 제외하고 광주일고등32개교는 20일 하룻동안 휴업조치했다.
학생·시민들과 군·경의 충돌은 밤에도 계속됐다. 하오7시40분쯤 광주역앞 광주고속건너편 길가에서 경남쪽에서「플래스틱」제품을 싣고온 2.5t「트럭」1대를 학생·시민들이 불을놓아 전소했다. 또 같은 시간에 시외「버스」합동「터미널」에서「트럭」1대가 전소되었다.
통금시간이 지난하오10시20분쯤 임동파출소를 1백여명의 학생·시민이 불을놓아 전소되었으며 KBS광주방송국과 북구청사가 8시20분쯤 투석으로 유리창40여장이 깨졌다. 역전파출소에도 들어갔으나 경찰이미리피하고 유리창등을 모두 사전에 떼어내고 기동대지원을 받아보호했다.
이어 하오8시45분쯤 누문동파출소에 1백50여명이 몰려가 내부기물등을 모두파괴했다.
양동파출소도 유리창이 모두깨지는등 피해를 보았고「사이카」자전거 서류등을 끌어내 불태웠다. 이날 시위는 여기서 일단끝났다.

<20일>
광주시민·학생시위는 20일부터 더욱과격해져 이날하오9시를 전후해서는 절정을 이루었다.
20일밤의 소요로 광주MBC를 비롯, 세무서 파출소 건물과 수많은 차량이 불탔고 상당수의 인명피해를 냈다.
20일상오는 군인들이 시내요소요소를 경비하는 가운데 그런데로 평온한것 같았다.
20일상오 4시에는 광주시내주택가에 3∼4만장의 전남대총학생회 명의로된 시민학생궐기를 호소하는 전단이 뿌려졌고 광주시내전체 쇠「파이프」점과 화공약품점의 상품은 팔리거나 도난당해 바닥이 났다.
그러나 이날하오 3시40분쯤5천여 시민·학생들이 다시 금남로4가에모여 도청을향해『계엄철폐』등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하다가 금남로3가「가톨릭·센터」앞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이「페퍼·포그」를 쏘면서 제지했고 군인들은 제2선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날하오4시쯤 1차연좌농성이 풀렸다.
2차시위는 하오5시30분에 시작됐다.
금남로4∼5가에 몰려든 시민·학생들은 도청쪽으로 가까와질수록 그수가 늘어났다.
이때는 도청앞 금남로뿐아니라 도청왼쪽 1백m 광주은행남부지점, 도청을향해 시위행진을 해왔다.
도청을 시위군중이 3개방면에서 협공 해온것이다.
이때 도청앞광장 점거가 아니라 도청으로 난입할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손에는 쇠「파이프」와 각목·돌등을 들었다.
하오6시가 넘으면서 분위기는 한층 험악해졌다. 광주시내에 있는 영업용「택시」「버스」「트럭」3대등의차량이 돌을 싣고 시위군중앞에 나타났다.
가운데일부가「버스」「트럭」등을탈취해 놓았고 일부「택시」운전기사가 동조,「택시」를 군중앞에 세우고 서서히 도청으로 행진해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더욱 기세를 올렸다. 하오8시가 넘으면서곳곳에모였다.
노동청옆 도청차고에서「버스」1대를 꺼내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날밤 첫불길이었다.
곧이어 광주MBC건물에 불길이 솟았고 계림, 대인파출소와 KBS건물에서도 불길이 솟았다.
역전파출소및 양동파출소에도 불길이 솟았다. 도청을 점거하지못한 밤이되자 시내로흩어져상가와 주택가 불을 끄게하고 불을 끄지않은집에는 투석을했다.
삽시간에 광주시내는 암흑가로 돌변하고 시내곳곳에 솟아오른 불길이 하늘을 붉게물들였다. 수십개조로나누어 광주시내 길을누비면서 시위행진을했다. 함성은 벌집주위에모인 벌떼웅성거리는 소리처럼 밤하늘에메아리졌다.
여기에다 최루탄터뜨리는 소리, 불타는 건물에서 불꽃튀는 소리,「사이렌」소리 그리고 최루탄 「가스」가 전시내를 뒤덮어 도청에서 1.2km떨어진 무사산기슭까지 풍겼다. 소방차까지 탈취해 시위를 했으며 MBC옆 박종갑냇과위원도 불이붙어 입원환자들이 시위군중틈으로 옮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하오11시를 전후해서 광주시내는 완전히 치안부재상태를 이루었다. 군과·경찰병력은 도청사수를 위해 도청에 집결했기 때문. 하오10시30분·11시·11시30분세차례에 걸쳐 연발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총소리가 울린뒤 한동안시내가 잠잠해지는듯 했으나 하오11시30분이후로는수만명이 시내로 흩어져 공공건물에 투석, 몽둥이질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탈취한광주고속「버스」1대를 그대로 경찰제지선에 돌진시켜 박기순순경 (함평경찰서나산지서), 이재홍순 (함평경찰서 보안과)강정옹 순경등 3명이 죽고 정홍길 경장·이영남순경·김민경경사·윤나용순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다. <6면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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