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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생 가두시위 이어 횃불 켜고 철야 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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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계엄철폐 등을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선 지방대학들은 15일 하오까지도 24개대학 3만8천여명이 14일에 이어 연이틀째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계속했다. 15일 하오에 있은 가두시위에는 광주중앙여고생 50여명도 한때 대학생들과 합류했으며 인하대학생 1천여명은 전철을 타고 서울로가 서울시내 대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돌아오기도 했다. 학생들은 하오6시께 대부분 해산했으나 전남대등 4개 대학 6천여명은 교정으로 돌아가 토론회를 갖고 횃불시위를 벌이며 철야했다.
15일 하오까지 가두시위를 벌인 지방대학은 다음과 같다. ▲전남대 ▲조선대 ▲조대공전 ▲광주교대 ▲전북대 ▲전주대 ▲경북대 ▲계명대 ▲충남대 ▲공주사대 ▲관동대 ▲인하대 ▲인천대 ▲인천교대 ▲수원공전 ▲경희대용인분교 ▲원광대 ▲충북대 ▲청주대 ▲마산대 ▲경남대 ▲단국대천안「캠퍼스」 ▲목포대 ▲목포공전 ▲목포공전

<청주>
충북대학생 3천여명은 15일 하오1시부터 단과대학별 3개 조로 나눠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시내로 진출, 이틀째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계엄령해제」 등「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무심천을 건너 시내 꽃다리∼청주대학∼충북은행 본점앞∼대학까지 주요간선도로를 누비며 10km나 가두시위를 벌였다.
또 청주대학생 5백여명은 하오 2시쯤 교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5시쯤 시내로 진출, 1시간동안 무심천 재방도로∼꽃다리∼석파 앞으로 4km거리를 가두시위했다.

<이리>
원광대학생 2천여명은 15일 하오3시 교문밖에 대치해 있었던 경찰의 제지선을 뚫고 4km나 떨어진 시내갈산동 이리경찰서 앞과 이리역 광장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틀째 가두시위를 계속한 원광대학생들은 처음 경찰서 앞에서 연좌농성을 시도했었으나 경찰의 강력 제지에 밀려 이리역 광장에서 6시30분까지 농성을 하다가 가두도보행진과 20여대의 학교「버스」를 이용한 시위를 한 뒤 8시쯤 해산했다.

<수원>
수원공전대학생 9백여명과 경희대 용인분교생 5백여명등 1천3백여명은 15일 하오3시30분 수원역 광장에서 「계엄령해제」등을 외치며 하오6시까지 시위를 벌이고 자진 해산했다.
학생들은 수원역 광장에 있는 차량통행 차단용 철봉과 지하도건설공사 표지인 입간판 등을 「로터리」도로에 깔아 경찰차량의 통행을 막기도 했다.
이날 수원공전대 학생들은 하오3시30분쯤 「버스」를 이용, 수원역에 집결, 농성을 시작했으며 하오4시부터 수원시내로 모여든 경희대 용인분교생 5백여명이 4차에 걸쳐 수원역으로 집결, 합세했다.

<인천>
인하대학생 3천여명은 15일 상오10시3O분 1시간수업을 마친 뒤 대운동장에서 학생총회과 시국성토대회를 갖고 「스크럼」을 짜고 교문밖 5백m까지 진출, 경찰과 첫 충돌했다. 학생들은 「계엄령철폐」등 구호를 외치며 「플래카드」를 앞세워 자연우유앞∼기계공고∼주안네거리∼시민회관을 거쳐 낮12시30분쯤 주안역 앞에 1천3백여명이 집결, 『제도언론 철폐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연좌시위를 벌였다.
인천대학생 2백여명도 교내에서 시국성토대회를 가진 뒤 15일 상오11시40분쯤 교문 밖으로 나와 연좌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 2차에 걸친 경찰의 제지로 흩어졌다.
한편 주안역 앞등에서 경찰의 제지로 흩어졌던 학생들은 하오1시55분쯤부터 시내중심가인 동인천 역전에 집결하기 시작, 1차로 4백여명이 모인데 이어 4∼5차에 걸쳐 배다리방향과 답동「로터리」방향에서 모여 하오2시20분쯤엔 인하대·인천대·인천교대 학생등 3개 학교 학생 2천여명이 동인천역앞 중앙로를 차지하고 연좌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그때 그사람』등 노래를 부르며『언론자유를 보장하라』『계엄령을 철폐하라』는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하오4시20분쯤 『귀가하겠다』며 대부분 동인천역을 통해 전철을 타러 역구내로 들어갔다.
이날 시위로 인천경찰서 축현파출소 강근성순경(30)등 경찰관 4명과 인하대 인문사회계열 1년 임학성군(19)등 학생6명등 모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강릉>
관동대학생 4백여명은 15일 하오5시30분쯤부터 계엄철폐등 7개 요구사항을 주장하며 학교에서 3km거리인 강릉경찰서 앞까지 나와 하오6시50분까지 가두시위를 벌인후 학교로 다시 돌아가 본관지하강당에서 시국토론을 벌이며 철야농성했다.
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50분부터 교내본관앞 잔디밭에 모여 시국성토를 벌이다가 하오1시30분쯤 교문밖 4백m까지 진출했으나 대기중이던 1백50명의 경찰에 저지당해 학교로 되돌아갔다가 하오 5시30분 경찰의 제지선을 뚫고 가두로 진출했다.

<전주>
전북대학생 5천여명은 15일 하오5시10분까지 경찰과 충돌하면서 시내 중심도로인 팔달로와 시청앞·전주교·역전광장·서중광장 등에서 가두농성시위를 벌인뒤 하오7시부터 9시30분까지는 교내에서, 지난14일 가질 예정이었던 『민주구현의 날』행사를 계속했다.
제1과학관앞 금잔디 밭에서 가진 이날 야간행사는 2천여명의 남녀학생이 참가, 횃불을 밝혀들고 마당 굿으로 시작해 민주학혼위령제·탄원제·민중축제·민주구현을 위한 기도, 「민주화」횃불점화식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또 전주대학생 1천여명은 이날밤 9시쯤 김원태 학장등 20여명의 교수를 선두로 교문을 벗어나 계엄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송천 복개도로∼역전∼팔달로등 4km의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의 가두시위로 시내 중심도로인 팔달로는 한동안 교통이 마비됐고 주변상가도 철시했었다.
한편 전주시내 7개 대학 학생대표들은 15일 하오10시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전주지구 대학생연합회(회장 김대식·전북대농대4년)를 결성, 15일 상오10시 시국에 대한 학생결의문을 채택기로 했다.

<대전>
충남대학생 2천여명은 15일 하오5시50분부터 2시간동안 대전시 중앙로와 홍명상가 앞등 중심가에서 비상계엄 해제등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하오8시쯤 학교로 돌아가 16일 상오10시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해산했다.
한편 공주사대생 2백명도 15일 하오5시 교문을 나와 공주읍내로 들어가다가 금강대교에서 경찰과 3시간동안 대치한 후 8시쯤 저지선을 뚫고 읍내로 진출, 시위를 벌이다 하오10시쯤 해산했다.

<천안>
단국대천안「캠퍼스」 학생 3백여명은 15일 하오1시20분부터 운동장에서 시국성토를 한후 4시10분쯤 4km떨어진 천안역 광장으로 진출, 계엄해제등을 요구하며 연좌하다 4시35분쯤 경찰에 의해 해산돼다.

<광주>
조선대와 조대공업전문대생 3천여명이 15일 낮12시30분까지 도청앞 광장에서 「민주화성회」를 마친데 이어 하오3시30분에는 전남대생 1만여명, 조대·조대공업전문대생 5천여명, 광주교육대 8백여명등 모두 1만6천여명이 모여 또다시「민주화성회」를 벌였다.
이날 상오 교내에서 시국성토를 벌이던 전남대학생들은 하오1시30분 교문을 나서면서 경찰제지에 부딪쳐 광천동 철둑길과 학교후문 쪽으로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또 각 대학별로 시국선언문을 낭독했으며 전남일보·전남매일등 두 지방신문에서 만든 언론자유선언문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15일은 스승의 날이라고 밝히고 광장에 나온 30여명의 대학교수들을 분수대 앞에 초치, 스승에게 보내는 글을 낭독하고 빨간색「카네이션」을 달아주기도 했다.
2시간30분 동안 성회를 벌인 학생들은 전남대의 마지막 시국선언문을 끝으로 학교로 돌아가 15일 하오6시부터 교내에서 횃불시위를 벌였다.
광주교대생 가운데 1백50명은 학교강당에서 15일밤 민주화토론회를 전야로 개최, 16일 아침6시에 해산했으며 전남대학생 2백여명은 학생회관3층 소강당에서 철야농성했다. 15일 밤8시30분쯤 광주 중앙여고 학생50여명이 도청광장앞 시계탑 앞에 모이는 것을 경찰이 해산시켰는데 최근 학원사태이후 여고생이 집단행동을 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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