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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불붙는 육체』제작중 자금없어포기 문예물『배따라기』도 도중에 좌절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6년부터 72년까지의 영화개주요일지를보면▲제13회「아시아」영화제 서울 개최(66년) ▲22개 영화사가 12개사로 통합정비(67년)▲『춘몽』을 감독한 명신목이 외설혐의로 불구속기소(67년)▲문공부가 국산영화육성방침발표(68년)▲영화제작자협회가 동경·「마닐라」등지에서 한국영화 견본시개최(69년)▲한국 최초의 70mm영화『춘향전』제작(71년)▲영화인 연금제도가마련돼 14명에게 연금지급(72년) 등이다.
63년『상처받은 두 여인』이후 72년까지 나는 1편의 영화도 감독하지 못했다.72년,그때 내 나이 이미 68세.일선에서 물러날 나이도 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정열과 집념은 버릴 수가 없었다.
72년 가을,「프러덕션」을 갖고 있던 최무이 나와 명신목에게 작품 하나씩을 의뢰했다.오래 쉬었던 나는 큰 기대와 포부로 이 일을 맡았다. 그때의 작품이『불붙는 육체』였다.
데려다 기른 양녀(고아)틀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부자의갈등을 그린 이색 작품이었다.
각본 김세호, 촬영 안상일, 배역은 아버지에 이예춘, 아들에 이악동, 양녀에 ??????, 그리그 황정순등이었다.서울 촬영을 끝내고 동해안 묵호근방의 축산이란 조그마한 어촌에서 「로케」를 마치고 상경했다. 그러나 상경하니 불길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무이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제작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금이 끊기니 촬영은 자연 중단되고말았다.그때의 낙심은 대단했다.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그 축산 가을바다의 아름다움이 눈에 선하다.
허탈해 있는데, 하루는 국제영화배우학원원장 박용의가 찾아와 학원의 고문이 돼달라고 했다.그래서 고문이란 이름으로1주일에 한차례씩 륵강을 했다. 몇달이 지난 뒤 박용의가『영화 l편을 하시지요』하고 종용했다. 제작비는 자기가 일부마련하고 나머지는 지방흥행사의 것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김동인원작의 단편『배따라기』틀 「시나리오」로써 장동휘 윤정희 황정순 하룡빙등으로 배역을 짰다.
하룡수는 이 영화가「데뷔」작이었다.『불붙는 육체』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어 나는 다시 이 영화에 온 정열읕 쏟았다.
촬영을 담당한 홍동혁과 경북영일군구룡포바닷가로「로케」「현팅」을 가 좋은 장소를 물색해놓고 상경했다. 나는 평소 바다를 좋아해 나의 작품엔 대부분 바다 장면이 나온다. 서울에서의「세트」촬영을 시작으로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됐다.『배따라기』는 의처증으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을 묘사한작품으로,그 가운데 장동휘와윤정희의 석사 장면이 있었다.
나는 일부「스태프」만 데리고 이 장면을 연출했다.두사람의 연기는 정말 실감이 났다.동석했던 한 지방 흥행사도『야, 굉장한 연기다』고 감탄해 나는 이 영화가 흥행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이게 또 웬일인가.거의 3천자가량 촬영이 진행되었을때 박용의가 제작비가 바닥났다는 것이었다.지방 홍행사들이 처음 계획과는 달리 영화를 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지방흥행사들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었다. 당시만해도 흥행위주의 통속물· 「코미디」·폭력물이 홍수를 이루던 시절이라 문예영화에 누가 선뜻 나서려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지방 흥행사를 끌어들이는데 책임을 졌던 섭외담당이 상업적 수완이 능란하질 못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배따라기』도 제작중단의 비운을 맞게 됐다. 당시신문은 문예영화『배따라기』 의 제작에 대서틀필, 성원을 보냈지만 결국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만 셈이었다. 연출을 종용했던 박용의도 미안하게 됐다고 얼굴을 들지못했지만, 모든게 억지로는 안되는 일. 마음을 가라앉힐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슴을 찌르는 회의와 자탄은 금할 수가 없었다.『역시 그랬구나.정말로 이규환의 시대는 가고 말았구나.「팬」들도 내이름을 잊어버렸고 흥행사들도 나의 존재를대수롭게 여기질 않는구나.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은퇴해야겠구나』
이런 자탄과 함께 영화에 욕심을 더 부린다는 것은 이제무리구나하는 생각도 했다.
지나온 세월이「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겼고, 문득 깊은회한과 슬픔이『쾅』등어리를쳤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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