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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 유럽에도 ‘발등의 불’ 여객기 피격 사건 ‘게임 체인저’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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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호 01면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들이 18일(현지시간) 동부 도네츠크주의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 여객기(MH-17)의 잔해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이 여객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중이었다. [도네츠크 AP=뉴시스]

네덜란드 192명, 영국 10명, 독일·벨기에 각 4명.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제 SA-11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보잉 777-200 여객기의 유럽인 희생자들 수다. 말레이시아 44명(승무원 15명 포함), 호주 27명, 인도네시아 12명, 필리핀 3명, 미국·캐나다·뉴질랜드 각 1명도 사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300명 가까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행”이라고 규탄했다.

이번 여객기 격추 사건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판세를 바꾸는 중대한 사건)’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 초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이어지고 있는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정부군과 분리주의 친(親)러시아 반군 간의 국지적 교전이 중대한 고비에 접어들었다. MH-17편 격추로 다수의 유럽인을 포함해 많은 희생자를 냄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가 당사자 국가만의 일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 국가들로서는 ‘강 건너’가 아닌 ‘내 발등’의 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오바마가 “우크라이나인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중대한 문제”라며 “유럽인들에게는 경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시장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이번 사건에 대해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선포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한정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유럽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전면전”이라며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목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애써 외면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경제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크림을 합병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에 대해서도 유럽은 선뜻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벌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18일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유럽 지도자들은 분노를 표시하면서도 러시아와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데는 주저하는 분위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한층 수위가 높은 제재에 동참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관계는 매우 가깝다. 네덜란드는 러시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여서 모스크바에 대한 엄중한 경제제재로 빚어질 후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국 국민들이 다수 희생된 이상 계속 뒷전에 물러나 있기에는 곤란해졌다.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사건이 유럽 국가들엔 러시아 정책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는 “결국 이는 유럽이 이미 했어야 할 일을 이제라도 해내도록 만드는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러시아에 대한 확실한 제재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경향은 여전히 강하다”며 “하지만 이들의 입지가 이번에 좁아졌으며 유럽의 제재 수위를 높이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장 첨예한 쟁점은 누구의 소행이냐를 밝히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친러 반군 또는 러시아의 직접 개입이 확인되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전 세계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는 “피격된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았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사고기가 러시아와의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의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러시아제 SA-11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결론지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관계기사 4p, 16~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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