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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환상 좇는 인류 열망 … 산 넘고 물 건너 역사를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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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류는 생존 조건이 어려웠던 시절,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한편 모든 것이 완전한 이상사회가 어딘가에 존재하리라는 꿈을 꿨다. 즉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지녔던 것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에는 이미 이런 생각이 엿보인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 먹지 마라. 3년 동안 길렀건만 인정사정 없구나. 너를 두고 떠나가리, 낙토를 찾아가리. 낙토, 낙토, 거기에서 나는 살리.(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시경(詩經)』 ‘석서(碩鼠)’) 이 시에서는 탐관오리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살기 좋은 낙원을 소망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읊고 있다.

 근대 중국의 대학자 부사년(傅斯年)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상고시대의 중국 대륙은 하족(夏族)과 이족(夷族)이 각기 서방과 동방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인지 중국신화를 보면 서방 민족과 동방 민족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즉 서방에는 곤륜산(崑崙山)이, 동방에는 삼신산(三神山)이라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먼저 서방의 곤륜산은 어떠한 낙원인가. 서쪽 끝에 있는 그곳에는 주수(珠樹)와 낭간수(??樹) 등 옥을 열매로 맺는 나무들과 다섯 길이나 되는 거대한 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곤륜산이 유명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서왕모(西王母)라는 아름다운 여신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 여신은 불사약을 지녀서 인기가 높았다. 다음으로 동방의 삼신산에 대해 알아보자.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의하면 이 산들은 발해(渤海) 한가운데에 있는데 신선들이 황금과 은으로 지은 궁궐에 살고 불사약이 있으며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 희다고 하였다. 이 삼신산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라는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허황한 상상으로만 여겨졌던 이들 두 낙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두 임금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였다. 진시황은 주술사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대선단을 이끌고 발해부터 우리나라 서해, 남해 전체를 샅샅이 훑어 삼신산을 찾게 하였다. 서복 일행은 남해도와 부산 영도(이 섬에 봉래산과 영주동이라는 지명이 현존한다!), 제주도 서귀포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삼신산은 결국 못찾았지만 이로 인해 서해를 통한 동아시아 해상교류가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한무제는 서왕모의 불사약에 흥미를 보여 장건(張騫)을 대월지국(大月?國)에 파견할 때 곤륜산을 찾아보도록 명했다고 한다. 역시 낙원을 찾지는 못했지만 서쪽 끝 곤륜산에 대한 관심이 실크로드를 개척하게 된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는 가설도 있다. 서양에서도 지리상의 발견을 추동했던 원인 중 하나로 (콜럼버스가 이미 증언했듯이) 황금의 나라 지팡구 등 동양에 대한 환상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환상도 때로 실제 역사를 만든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신화학과 도교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상상력을 풀고 있다. 저서로 동양 신화를 분석·정리한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 신화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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