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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 웰 다잉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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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러스트 강일구]

이별서약
최철주 지음, 기파랑
261쪽, 1만2500원

죽음은 두렵고, 불편하고, 우울한 주제다.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 말하지 않던가. ‘정말 오래 버티면 이런 일 생길 줄 내가 알았지.’ 누구나 언젠가 닥칠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똑바로 마주서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셸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인생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도 죽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한 묶음이듯, 삶과 죽음 역시 한 묶음 아니겠나.

 저자는 딸과 아내를 암(癌)으로 떠나 보내면서 ‘좋은 죽음’에 천착한다. 드라마에서 보듯 ‘멋있는 죽음’은 없다. 중환자실에는 고통과 비명, 분노와 생떼, 그리고 혼수상태로 이어지는 불편한 진실이 민낯을 드러낸다. 과연 아름다운 이별이 가능한가.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며 마지막까지 책 출간에 매달린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항암제를 중단하고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들에게 인사말까지 작성한 재클린 케네디를 삶과 죽음의 좋은 교사로 든다. 췌장암으로 쓰러져 장기간 연명치료를 받은 일왕(日王) 히로히토는 반면교사로 친다. 문제는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우리 사회에 ‘웰 다잉’이란 화두가 본격적으로 던져진 것은 2009년 대법원이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판결하면서다. 연초 인위적인 치료를 거부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듬해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의 입적도 ‘웰 다잉’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했다.

최철주

 『이별서약』 역시 ‘웰 다잉’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별서약이란 사전의료의향서를 저자가 간명하게 고친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지를 사전에 밝힌 것으로, 가족들의 ‘도덕적 판단’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떠날 때 울지 않는 사람들’이 되자는 것이다.

 기자 출신답게 저자는 인물과 현장에 포커스를 맞춘다. 수많은 인터뷰와 생생한 사례를 통해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웰 다잉’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웰 빙’의 선결요건임을 강조한다. 책의 첫머리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사용도 거부하는 서류에 서명한 딸 이야기다. 사랑하는 딸을 가슴에 묻는 고통스런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경험의 공유차원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자,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 특히 ‘하얀 정글’로 불리는 의료 현장에 대한 고발은 신랄하다.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투에 환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의사들의 야만주의에 분노한다. 일찍이 주요섭(1902~72)도 수필 『미운 간호부』에서 정(情)이 사라진 문명을 고발하지 않았던가. 그는 서울대가 예비 의료인에게 ‘죽음학’부터 가르치라고 권고한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어떻게 생명의 본질과 인간의 존엄을 알겠느냐고 묻는다. “인간성 탐구가 없는 의학은 의료기술자만 배출한다”는 것이다. 치료(Cure)에 돌봄(Care)을 더한 교육을 촉구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는 “병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오직 죽음일 뿐”이라고 했었다. 그런 그도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프다”는 독백은 ‘웰 다잉’이 한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회와 병원과 가족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3대 강의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 셸리 케이건의 ‘죽음’과 함께 탈 벤-샤하르의 ‘행복’이 꼽힌다. 벤-샤하르는 “부정적인 감정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별서약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의 첫걸음이 아닐까.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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