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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이에로, 청룽·판빙빙, 전지현·김수현 … 이들 공통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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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탈리아의 2006년 축구 월드컵 우승을 이끈 명장 마르첼로 리피,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영웅 루이스 피구와 페르난도 이에로, 월드 스타 청룽(成龍)과 판빙빙, 한국의 배우 전지현과 김수현. 이들은 모두 중국 생수 브랜드 ‘헝다빙취안’의 모델이나 홍보 대사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다.

 취수원인 백두산을 중국 명칭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표기한 제품이라고 해서 한국 네티즌의 뭇매를 맞고 전지현·김수현이 계약 취소 소동을 벌인 그 제품이다. 창바이산이 중국의 역사 개조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일환이란 주장은 허황된 것이었지만 논란은 중국으로까지 번졌다. 광고에서 창바이산 표기를 지우자 “한국 연예인들에게 100억(원)씩 퍼주고 이름까지 지웠다”며 헝다그룹마저 수난을 당했다. 틀린 지식에 근거한 여론 과열이 이번 해프닝을 일으켰지만 사실 근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전쟁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해진 중국 생수 업계의 시장 경쟁이 그것이다.

 중국은 차(茶)의 나라다. 집에서 끓인 차를 휴대용 차통에 넣어 다니며 목을 축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척되고 수질 오염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생수 시장이 커나가기 시작했다. ‘바링허우’(80년대 출생자들) 이후 세대들은 차통보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선호했다. 시장은 97년 이후 한동안 연 30% 넘게 급성장했다. 중국음료공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포장음용수의 지난해 생산량은 6651만t으로 전체 음료 생산량의 45%가 넘고 시장 규모는 1200억 위안(약 19조9000억원)에 이른다.

 초창기 중국 생수시장은 “(물맛이) 약간 달아요(有点甛)”란 광고 문구로 유명한 눙푸산취안(農夫山泉)과 와하하(娃哈哈), 캉스푸(康師傅)가 삼분한 형세였다. 지금도 이 상표들은 중국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경쟁은 가열되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도태됐던 캉스푸가 절치부심해 2005년 와하하를 제치고 업계 1위를 탈환하는가 하면, 러바이스(樂百氏)·라오산·5100빙촨·쿤룬산(崑崙山)·이바오(怡寶) 등 후발 주자들이 달려들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2010년을 전후해 생수업체들은 경쟁 과열과 제조원가 상승으로 경영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이 고급화였다. 이미 고급생수(高端水)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에비앙(중국명 依雲)·페리에(巴黎水) 등 외국 브랜드에 5100빙촨·쿤룬산 등이 도전장을 던졌다. 고급 생수는 칭장(靑藏)고원·백두산·쿤룬산 등 고해발 수원지에서 얻은 깨끗하고 무기질이 풍부한 물로 광고됐다. 중국인의 소득 수준 향상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고급수 시장은 지난 2년간 연 80%씩 증가해 갔다. 이윤도 일반 생수의 6~7배나 됐다.

 여기에 2012년 말 후발 주자로 뛰어든 것이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가 60조원에 달하는 헝다가 선택한 전략은 물량 공세로 인지도 높이기였다. 첨병은 중국인들이 ‘잘하지는 못해도 보는 건 누구보다 즐기는’ 축구였다. 헝다는 2부리그 팀 ‘광저우’를 사들였고 다리오 콘카 등 A급 선수들과 이장수·리피 감독을 영입해 2010년 1부리그 승격, 이듬해 1부리그 우승, 2013년 중국팀 최초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이란 놀랄 만한 업적을 이뤘다.

 지난해 11월 광저우에서 열린 FC서울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한 광저우 선수들의 유니폼엔 ‘헝다빙취안’이 새겨졌다. 우승을 결정 짓자 경기장엔 대형 생수병이 등장했다. 생수 홍보 대사 피구와 이에로가 나타나자 분위기는 절정을 이뤘다. 헝다는 우승한 날부터 이듬해 춘절(올해 1월 31일)까지 20억 위안(약 3300억원)을 광고비로 쏟아부었다. 청룽과 판빙빙을 모델로 앞세워 CC-TV와 각 성을 대표하는 위성TV들을 도배해 나갔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신랑(新浪)은 “최대 광고주는 헝다”라고 털어놨다. ‘세계 물의 날’인 3월 22일엔 전국 각지에서 ‘전국민 건강 음료수 축제’를 열었다. 5월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기자 수백 명을 초청해 놓고 세계 28개국과 수출 계약식을 떠들썩하게 열었다.

 헝다의 광고 융단폭격은 경쟁업체들을 도발했다. 쿤룬산은 질세라 중국의 테니스 영웅 리나(李娜)를 내세워 마케팅에 돌입했다. 모델료로 4000만 위안(66억원) 넘게 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와하하도 저장(浙江)TV와 최소 2억 위안(332억원)의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광고에 돈을 잘 쓰지 않던 5100빙촨마저 포털사이트 소후(搜狐)에 광고를 낼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품질을 인정받는 한국 브랜드들까지 가세했다. 롯데가 5월 백두산 샘물 ‘백산지(白山池)’를 내놨고 농심은 6월 지린(吉林)성에서 연간 200만t 생산 규모의 신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서 헝다가 쐐기를 박으려 내놓은 카드가 ‘대장금’ 이후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 한국 드라마라는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김수현이었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陳凱歌)가 CF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창바이산이라는 원산지 표기 하나가 그런 사달을 일으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진설명

지난해 11월 광저우 헝다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확정짓자 광저우 톈허 스타디움 안에 등장한 헝다 빙취안 대형 생수병. ?

전지현과 김수현을 내세운 헝다빙취안 광고. 논란이 된 창바이산 수원지 표기가 사라졌다.

리피 감독과 광저우팀 선수들이 등장하는 생수 광고엔 윗부분에 창바이산 표기가 선명하다.

헝다는 월드스타 판빙빙도 모델로 내세웠다.

헝다에 대항해 쿤룬산이 내세운 테니스 스타 리나. [중앙포토]

[S BOX] 백두산은 세계 3대 수원지

헝다가 생수 취수원으로 선택한 백두산은 유럽의 알프스, 러시아의 캅카스와 함께 ‘세계 3대 수원지’로 꼽힌다. 백두산 화산 암반수는 20여 종의 천연 미네랄을 함유, 물맛과 영양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압록강과 두만강, 쑹화(松花)강의 발원지가 백두산일 정도로 수량도 풍부하다. 2000년 이후 중국 굴지 생수업체들의 취수 공장이 이곳에 속속 들어섰다. 헝다를 비롯, 눙푸산취안(위 사진)·와하하·캉스푸·톈스리(天士力) 등 10곳이 넘는다. 한국의 농심도 70년간 취수권을 확보해 2010년부터 생수를 생산, 2012년 말부턴 국내에서도 팔고 있다. 농심은 2003년부터 좋은 수원지를 찾기 위해 울릉도·하와이 등 화산지대를 살펴본 끝에 백두산을 골랐다고 한다. 연 25만t 생산 규모의 기존 공장에 더해 지난달 새 공장 건설도 시작했다. 재밌는 사실은 농심이 중국에서 파는 생수 ‘백산수(白山水·아래 사진)’에도 ‘창바이산’으로 취수원을 명기하고 있지만 이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롯데도 5월 초부터 지린성 백산(白山)시에서 퍼 올린 백두산 샘물 ‘백산지(白山池)’ 판매를 시작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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