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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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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들어서만 14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에 다녀오자마자 미·중 전략대화에 참석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더니 어느새 그리스를 거쳐 브라질에 가 있다. 그런데 바쁘기로 따지면야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 서기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부패와의 전쟁을 책임지며 매일같이 공직자에다 군인이며 기업가, 이제는 국영 TV의 앵커까지 잡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K교수는 “바쁠 것 하나 없다, 그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나”고 말했다. “중국은 자고로 청백리가 없는 나라다. 아무나 조사하면 다 나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과장 섞인 표현이겠지만 고금의 중국 역사에 해박한 전문가의 말이라 그러려니 했다. 최근 보도된 몇몇 지방 관리의 사례를 보면서 K교수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법제주임을 지낸 우즈충의 집에서 가방이 하나 나왔는데 그 속에 아파트 열쇠 33개가 들어 있었다. 베이징 등 경향 각지는 물론 캐나다에까지 아파트를 사둔 건 약과였다. 그는 집에다 불당을 차려 놓고 있었는데 거기서 각종 골동품·보석·명품 등 2000점이 압수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니 자그마치 그의 월급 300년치였다. 잘못 봤나 싶어 신문을 코앞으로 당겨 들여봐도 30년이 아닌 300년이 분명했다. 혹시 인쇄가 잘못됐나 싶어 신화통신의 원본 기사를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대국이라 스케일이 다른가 싶었다.

 몇 차례 폭력 전과가 있는 허우즈창은 2009년 허베이성 한 마을의 촌장으로 선출됐다. 주민들을 협박하고 투표 용지를 빼앗아 자기 이름을 써 넣은 결과였다. 그날부터 허우는 촌장의 탈을 쓴 공공의 적이 됐다.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예산을 착복하는 것만으론 부족했던지 주민들에게 각종 물건을 떠안겼다. 가옥 개량을 한다고 강제로 집수리를 하게 해서 돈을 챙기고, 춘절이면 폭죽을 강매해 돈을 뜯어냈다. 가축 거래도 반드시 그의 손을 거쳐야 했고, 심지어는 썩은 옥수수를 사게 했다. 말 안 듣는 주민들에겐 주먹 세례를 가했다. 신고를 해도 이미 한통속이 된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한 청년이 그를 살해했다. 그러자 촌민 전원이 연명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며 구명운동을 펼쳤다.

 이쯤 되면 숫제 토비(土匪)를 촌장 자리에 앉힌 격이 아닌가. 이건 나만의 탄식이 아니다. “부패한 지방 관리들은 토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 건 『허삼관 매혈기』를 쓴 저명 작가 위화(余華)였다. 그러고 보니 시진핑 주석이 부패 척결 의지를 밝히면서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때려잡겠다”는 표현법을 사용한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라오바이싱(老百姓)’, 다시 말해 중국의 서민들에겐 멀리 있는 호랑이보다 가까이 있는 파리가 더 무서운 것이다. 더러운 물건은 피해버리면 그만이라지만 파리는 계속 달려드니 그게 더 무섭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