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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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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때마침 비슷한 영화 두 편을 봤다(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안 본 분들은 참고하시길).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 연기가 기막힌 ‘그녀’는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얘기다. 오직 목소리로만 나누는 사랑이지만, 진짜 사랑을 경험한다. 사만다라는 이름의 컴퓨터 OS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굴곡을 경험하면서 “내가 이렇게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된 거겠죠” 자문하는 존재다. 남자는 결국 사만다가 수만 명의 다른 남성(고객)들과, 그것도 동시 접속해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받는다.

 조니 뎁이 천재 과학자로 분한 ‘트랜센던스’는 초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학자 부부의 얘기다. 남편이 죽음에 이르자 아내는 그의 모든 지적 정보를 스캔해 수퍼컴에 입력한다. 그렇게 탄생한 초인공지능은 온라인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와 연결되며 신과도 같은 초월적 힘을 갖게 된다. 마침내 그는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불사의 존재가 되려 한다.

 이제 로봇은 더 이상 영화적 상상만이 아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사의 감정인식 로봇 ‘페퍼’는 내년부터 약 196만원에 상용화된다. 인간과 감정을 주고받는 반려로봇이란 말도 나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가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라는 주제로 이슈가 됐던 것이 2001년이다.

 이제 로봇은 기사를 쓰고, 일부지만 미국에서는 약사와 변호사 역할까지 한다. AP통신은 이달 초부터 기업 분기 실적 기사를 로봇 기자(컴퓨터 알고리즘)에게 맡겨 세계적 화제가 됐다. 로봇, 즉 컴퓨터 알고리즘이 세상 곳곳을 재편하는 알고리즘 사회의 본격 도래다. 뉴미디어 학자 레프 마노비치의 말대로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세계와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사회”의 도래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인삼 제품을 샀더니 그 이후 관련 광고가 SNS며 뭐며 나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맞춤형 광고다. 인터넷 쇼핑몰에 가입한 다음 날에는 페이스북에 관련 광고 페이지가 턱 하니 떠 있다. 이게 보기 싫다고 했더니 페친 몇 명이 광고를 감추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아예 SNS를 떠나지 않는 한 이 방법밖에 없다. ‘트랜센던스’에서 괴물이 된 초인공지능을 없애는 방법도 결국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진화하는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며 점점 나를 옥죄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또 다른 알고리즘을 통해서다. 알고리즘 사회의 덫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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