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의 수직으로 떨어져" … 학교·아파트 피하려 기수 낮춘 듯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헬기가 추락해 탑승자 5명이 숨졌다. 사고가 난 곳은 학교와 아파트단지, 상가 등이 밀집한 곳이어서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 전문가들은 “헬기가 갑자기 고도를 급격히 낮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추락한 점으로 미뤄 헬기조종사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10시53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 한 아파트 인근 도로변에 강원 소방1항공대 소속 소방헬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기장 정성철(52) 소방경, 부기장 박인돈(50)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38)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42) 소방교, 이은교(31) 소방사 등 탑승자 5명이 모두 사망했다. 여고생 박모(18)양은 헬기 파편에 다리를 맞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사고 헬기는 프랑스 유로콥터사가 만든 인명구조용(14인승)으로 2001년 국내에 들여왔다.

 헬기는 아파트 건물과 중학교 사이에 곤두박질했다. 아파트 단지와는 10m쯤 떨어져 있다. 20m 떨어진 성덕중에서는 학생 1360여 명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추락 장면을 목격한 주민 오현석(30)씨는 “헬기가 거의 수직으로 내리 꽂힌 것으로 볼 때 조종사가 건물과 충돌을 피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고 정성철 소방경, 고 박인돈 소방위, 고 안병국 소방장, 고 신영룡 소방교, 고 이은교 소방사.

 초당대 정원경(콘도르비행교육원) 교수는 “지표면에서 근접해서 고도가 급격히 낮아진 것으로 보아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조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창순(58) 광주시 소방항공대장은 “헬기나 항공기 승무원들은 추락 때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인명이나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착륙하도록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 기장은 조직의 맏형 같은 존재로 알려졌다. 후배 조종사 윤기성(41)씨는 “젊은 대원의 어려움을 지휘관에게 건의해 곧잘 해결하곤 했다”고 말했다. 4대 독자인 정 기장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의 개인주택에서 장인·장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신 소방교는 특전사 출신으로 쉬는 날에는 주로 초등학생 자녀와 봉사활동을 했다. 이 소방사는 오는 9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올해 강원도 홍천의 한 대학 간호과에 입학했다. 구조와 간호업무를 모두 하기 위해서였다. 강원도는 순직한 5명을 모두 1계급 특진키로 했다.

 헬기는 이날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복귀하던 길이었다. 지난 14일부터 사고 현장을 순찰하며 실종자 등을 찾았다. 이날 8시47분쯤에도 사고 현장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기상 악화로 취소했다. 헬기는 10시49분 광주비행장을 이륙한 지 4분 만에 추락했다.

 사고 원인으로는 기체 이상이나 기상악화 등이 제기됐다. 관제를 담당한 공군 제1전투비행단은 이륙 1분 만인 10시50분 지상 700피트(210m) 아래로 저공 비행하는 것을 확인하고 기수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헬기는 기수를 올렸다가 곧바로 다시 떨어졌다. 이 때문에 기체 이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 헬기는 지난 7일 정비점검을 받았다.

 이날 오전 11시 전후로 사고 지역에는 시간당 3.5㎜의 비가 내렸다. 천둥·번개나 돌풍 등은 관측되지 않았지만 구름이 낮게 깔려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춘천=이찬호 기자, 광주광역시=최경호·권철암 기자

사진 설명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수색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헬기가 17일 오전 광주광역시 장덕동 한 아파트 인근 도로변에 추락해 정성철(52)기장 등 5명이 사망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추락과 함께 폭발한 헬기 잔해에 물을 뿌리고 있다. [광주=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