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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우리도 해볼까 '배당의 만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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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배당 투자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을 때 였으니까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2003년 배당주 펀드를 처음 출시했을 때 주변의 반응을 이렇게 기억했다. 매매차익만 노려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얼마 안되는 배당에 투자하냐는 것이었다.

 주식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얻는 매매차익. 다른 하나는 기업이 주주에게 이익을 배분해 주는 배당금이다. 오랜 기간 한국 증시에 배당을 보고 투자한다는 말은 남의 나라 얘기였다. 삼성전자·현대차같은 수출기업들이 고속성장하고 주가도 따라 상승하다보니 배당수익률이 낮아도 큰 불만이 없었다. 2000년 이후 코스피 상장사들의 배당수익률은 2000년과 2008년을 제외하면 모두 1%대였다. 주가가 1만원인 기업의 주당 배당금이 100원대 였다는 얘기다.

박스권서 배당수익 1%대 … 투자 매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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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코스피는 7년째 1800~2050포인트 사이의 박스권에 갇혀있다. 예전처럼 매매차익 만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럼 배당으로라도 빈 바구니를 채워야하는데 배당수익률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경기침체로 이익이 줄자 기업들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배당을 주기 보다는 내부에 현금을 쌓았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배당금을 많이 주지도 않으니 투자자는 주식시장을 떠났다. 코스피가 지난해 선진국 증시의 상승 랠리 속에서도 제자리를 맴돈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반전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들이 배당금을 늘리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힌 뒤 부터다. 가능한 정책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정부가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를 하는 방안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세금과 배당·상여금을 빼고 축적해 둔 현금성 자산을 말한다. 신한금융투자 한범호 수석연구원은 “만약 일정 이상의 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이뤄된다면 기업들은 세금을 내기보다는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더 주거나, 배당을 늘리거나, 신규투자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 쪽이든 주식시장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특히 대기업 중에서 꾸준한 이익이 나면서도 성장성이 줄어들고 있는 기업들이 배당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유보율은 1만7000%가 넘는다. 자본금(8980억원)의 170배가 넘는 156조원의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현대글로비스(1만1834%)와 SK(5105%)·CJ제일제당(4218%)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들의 배당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배당소득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 경우 전통적인 고배당주의 몸값이 올라가게 된다. SK텔레콤(올해 예상 배당수익률 3.6%)·KT&G(3.4%)처럼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꾸준한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주요 후보다.

 찬 밥 신세였던 우선주의 몸값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더 많은 배당을 받는 대신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다. 그동안은 거래량이 적다는 이유로, 혹은 지수 산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보통주보다 훨씬 싼값에 거래됐다. 허남권 부사장은 “개인투자자들 중에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기업경영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결권에 그렇게 높은 프리미엄을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증시에서 우선주 주가는 보통주의 절반 정도다. 보통주의 80% 수준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역시 “의결권이 없고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만으로 아직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우선주가 많다”고 설명했다.

배당금 늘면 우선주도 값어치 올라갈 듯

 어느 방식을 택하든 배당이 늘면 증시 전체에 활기가 돌 전망이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보통 주가가 얼마나 비싼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주가수익비율(PER)이다. 한국 증시의 PER는 대만이나 브라질보다 낮은 저평가 상태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아 왔던 게 낮은 배당성향이었다. CIMB증권 이도훈 리서치센터장은 “요즘 돈이 몰리고 있는 글로벌 인컴펀드의 투자대상이 되려면 배당수익률이 최소한 2~2.5%는 돼야하는데 삼성전자·현대차 등 한국의 주요기업들은 이 기준에 미달돼 투자대상에 포함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치고 빠지는 단기 투자 위주의 문화를 바꾸는데도 배당이 한 몫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배당수익률이 높아지면 주식을 채권처럼 장기보유하면서 정기적으로 소득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이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배당금을 기초로 한 월지급식 펀드 등 새로운 재테크 상품도 등장할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월지급식 펀드가 전체 펀드 순자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월지급식 펀드의 비율이 1%가 채 되지 않는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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