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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곡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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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은 미국의 2배를 넘는 국토를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방은 한시절 전「유럽」을 먹여 살리는 곡창이었다. 1970년대 초입까지만 해도 소련은 자급자족을 하고 남은 농축산물은 수출했었다. 미국·「캐나다」 다음가는 막대한 양이었다.
바로 그 소련이 지난 72년부터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 72, 75년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흉년이 들어 곡물의 수확량은 일시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농민들은 가축을 죽여 들에 버리는 등 심각한 위기를 겪었었다.
「미·소 곡물협정」이 서둘러 체결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76년 10월부터 1981년 9월 31일까지 5개년에 걸친 협정.
그 골자는 이렇다. ⓛ소련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밀(소맥)과 옥수수를 최저 6백만t 매입한다. ②소련은 정부간 협의없이 매년 2백만t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다. ③미국정부는 소련의 매입을 촉진함과 동시에 어느 작물 연도의 미국 전곡물 공급량이 2억2천5백만t을 하회할 때 그 연도의 매각량을 삭감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협정 수량의 선적을 규제하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 ④일작 연도에 있어서 8백만t을 초과할 때는 두 정부사이에 사전 협의한다.
요즘 외신에 따르면 소련은 미국으로부터 거의 2천만t의 곡물을 수입하는 상담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협정 한도의 2배도 훨씬 넘는 양이다.
소련의 10차 5개년 계획(76∼80년)에 따르면 연평균 곡물수확 목표량은 2억1천5백만 내지 2억2천만t이다. 「브레즈네프」의 농정개혁에 힘입어 지난 78년엔 수확량이 목표를 훨씬 넘는 2억3천5백만t이나 되었다.
그러나 근년의 소련은 만성적인 공복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날로 감퇴되고 있는데에 큰 원인이 있다. 게다가 농업기상의 부조에서 비롯되는 흉년의 주기화 현상도 문제다.
한편 소련사람들의 식생활 개선에 대한 요구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고급화·다양화 추세는 정치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농축산물의 증산은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에 따른 사료의 공급 증대도 필연적이다.
소련은 이런 「갭」을 메우기 위해 그 동안 미국·「캐나다」·「아르헨티나」·「프랑스」 등에서 쉬지 않고 곡물을 수입해야 했다.
오늘의 소련은 마치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처럼 곡물에 그 명운을 걸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브레즈네프」가 그 동안 자신의 정치수명을 걸다시피 하며 농업투자에 전력을 기울여온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보복의 하나로 1천7백만t의 곡물수출 감축을 선언했다. 소련 인구 1인당 거의 90㎏의 양이다. 「브레즈네프」는 발뒤꿈치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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