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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국가개조 이렇게! 교황의 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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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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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어쩌면 두려움과의 싸움입니다. 국가개조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화두는 국가개조가 됐습니다. 아직 개조의 바람이 불진 않습니다. 관피아를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의 ‘마피아’에 대한 개혁은 아직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국가개조가 말뿐인 구호에 그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지구촌에는 국가개조에 버금가는 수술을 하고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그는 교황청 내부와 이탈리아 마피아를 향해 포문을 열었습니다. 사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가톨릭 역사에서 바티칸 개혁을 시도했던 교황은 여럿 있었지만 다들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바티칸 개혁은 ‘이중주의 개혁’입니다. 바티칸은행과 마피아, 둘을 모두 겨냥해야 합니다. 바티칸은행을 통한 마피아의 검은돈 세탁 의혹은 줄기차게 제기됐습니다. 2010년에는 바티칸은행 총재가 2300만 유로(약 320억원)의 돈세탁을 시도하다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재임 중 이런 사건이 터졌지만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바티칸을 개조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교황청 회계 담당 사제가 현금 2000만 유로(약 295억원)를 스위스 은행에서 밀반입하다 체포됐습니다.

 바티칸과 마피아의 유착설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황이 영지를 잃는 등 권력이 급격히 축소되자 지역을 장악한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거대한 ‘가톨릭 패밀리’입니다. 영화 ‘대부(God Father)’를 보셨나요. 성당에서 영세를 받을 때 마피아 보스가 대부가 됩니다. 그런 방식을 통해 패밀리가 꾸려집니다. 그렇게 꾸려진 수백 개의 패밀리가 점조직처럼 얽힌 게 마피아입니다.

 그러니 쉬운 일이겠습니까. 요한 바오로 1세(1978년 즉위)도 ‘바티칸 개조’를 위해 칼을 뺐습니다. 마피아 돈세탁 연루 의혹이 있던 교황청의 실세 주교를 해임했습니다. 교황은 즉위 33일 만에 침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독살설이 파다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마피아의 근거지인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는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두 달 뒤 로마의 성당 두 곳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다시 두 달 뒤에는 반(反)마피아 운동을 펼치던 사제가 집 앞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황청은 마피아에 대해 입을 닫았습니다. 바티칸 개조, 마피아 척결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21년이 흘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침묵을 깼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대담하게 ‘바티칸 개조’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3대 마피아 중 하나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를 찾아가 “마피아는 파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강력한 ‘선전포고’입니다. 오랫동안 가톨릭은 이탈리아 마피아의 ‘안식처’였습니다. 돈세탁 창구뿐 아니라 범죄행위에 대한 정신적 도피처 역할도 했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고리를 끊어 버린 겁니다.

 사람들은 마피아가 교황을 암살할까 봐 걱정합니다. 교황은 개의치 않습니다. 방탄조끼도 입지 않고, 방탄차도 타지 않습니다. 8월 방한 때도 방탄차를 거부합니다. 궁금합니다. 그런 힘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합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대담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움은 어디서 나올까요. 사심(私心)에서 나옵니다. 내가 살고자 할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교황의 행보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대한민국 국가개조에도 그런 리더십이 절실합니다. 사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리더십. 다음 달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 수 배우면 어떨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