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소년' 살려낸 서울대병원 … UAE 마음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2014.07.11 01:12

업데이트 2014.07.1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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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UAE 왕립 셰이크 칼리파 종합병원

2012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아랍에미리트(UAE) 소년 레시드(당시 9세)가 실려왔다. 화재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뇌손상과 호흡기 부전이 심각한 상태였다. 소년은 왕실 제트기를 타고 UAE에서 막 날아왔다. UAE에서는 소년을 살릴 길이 없자, 아부다비 보건청이 선진국 병원들에 치료를 의뢰했다. 다른 나라 병원들이 선뜻 응하지 않을 때 서울대병원은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수술 후 석 달간 심리·재활치료를 받고 레시드는 스스로 걷게 됐다. 레시드의 사연은 현지에서 널리 알려졌고 한국 의료기술에 대한 신뢰도 쌓이게 됐다.

 지난해 10월 말 UAE 대통령실.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인력(1420명)의 15~20%를 한국에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UAE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문주영 서울대병원 행정처장의 제안 설명에 담당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짓는 UAE 왕립 종합병원의 위탁운영사업권에 응찰한 세계 유수 병원들은 극히 소수의 인력만 보내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실력과 열정으로 국내 종합병원이 미국·영국·독일의 유명 병원을 제치고 처음으로 수출길에 오르게 됐다. 오병희 서울대병원장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이 UAE 왕립 셰이크 칼리파 종합병원을 5년간 위탁운영하는 사업자로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UAE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병원을 운영하게 된다. 그동안 성형외과나 중소 병원이 미국·중국·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종합병원 해외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의료진과 정보시스템·회계 등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것이어서 부가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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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원장은 “2019년까지 진료와 시설 운영, 정보시스템 설치·운용과 재무·회계 등 병원 운영 전체를 도맡게 된다”고 말했다. 넉 달가량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12월 UAE 국경일에 맞춰 암·심장질환 진료를 시작으로 1차 개원하고 내년 4월 정식으로 문을 연다.

 셰이크 칼리파 종합병원은 UAE 대통령실이 새로 설립하는 공공병원이다. 암·심장질환·소아과·응급의학·재활의학·신경계질환 치료에 중점을 둔 3차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이다. 1인실 248개 병상을 갖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의사 30명, 간호사 120명 등 200여 명을 현지에 파견할 계획이다.

 UAE 측은 5년간 약 1조원의 운영예산을 지원한다. 이 중 국내 인력 인건비가 1500억원이다. 서울대병원은 이와 별도로 5년 동안 400억원의 위탁운영 수수료를 받는다. 국내엔 진료비 수입으로 흑자를 내는 병원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계로선 상당한 성과다. 정기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병원을 직접 지으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오래 걸리지만, 위탁운영은 사람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공 사례”라고 말했다. 문 장관은 “세계 유수의 병원들과 경쟁 끝에 해외 대형 병원의 운영권을 따낸 것은 한국 의료수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초반엔 서울대병원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존스홉킨스·스탠퍼드·조지워싱턴대 병원, 영국의 킹스칼리지병원, 독일의 샤리테병원 등 7곳과 경합했다. 최종 후보에 올라간 샤리테병원은 8명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가 소속돼 있다. 현지에서는 “서울대병원이 뭐냐”라고 물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오 원장은 ▶우수한 한국 의료진이 상주하고 ▶서울대병원이 개발한 전자의무기록 과 같은 차세대 의료정보시스템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두 가지 약속으로 UAE의 마음을 얻었다.

 최근 한국을 찾는 UAE 환자가 늘어 우리 의료기술에 대한 신뢰가 쌓인 점도 도움이 됐다. 국내에서 진료받은 UAE 환자는 2009년 17명에서 지난해 1151명으로 늘었다. 올 2월 UAE 왕세제가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현장을 확인하고, 5월 박근혜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면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 것이 결실을 거뒀다. 서울대병원은 곧 UAE 파견인력을 모집할 계획이다. 국내 다른 병원 출신도 경력직으로 채용한다. 급여는 경력과 직급에 따라 한국에서 받는 금액의 150~250% 수준이 될 전망이다.

세종=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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