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두 바퀴로 하나 된 아름다운 동행 … 희망의 페달 밟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파일럿 전대홍 경륜선수(앞)와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 김종규씨가 행렬 선두에 서서 양수리 북한강 철교를 건너고 있다.

지난 6일 시각장애인이 광명에서 부산까지 550㎞를 자전거로 종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광명 스피돔 경륜경기장을 찾았다. 일반인도 어렵다는 국토종단을 시각장애인이 가능할까. 직접 가서 보니 이해가 됐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2인1조로 한 팀을 이뤄 2인용 자전거인 ‘탠덤사이클’을 타고 달린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 5명과 경륜선수 5명이 함께 호흡하며 4박5일을 꼬박 달린다. 행사 이름처럼 ‘자전거로 하나 되는 아름다운 동행’인 셈이었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파일럿 공민우(앞) 선수는 4박5일 내내 시각장애인 이동훈 선수의 눈이 되어 달렸다

“자, 여기 턱 조심하시고요. 화장실은 문에서 2시 방향으로 다섯 발자국 떨어져 있습니다.”

지난 5일 경기도 광명 스피돔 경륜경기장 연수실에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 5명이 경륜선수의 도움을 받아 들어왔다. 6일부터 진행되는 ‘자전거로 하나 되는 아름다운 동행’ 행사를 앞두고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시각장애인이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종단한다는 게 신기해 선수들을 만나자마자 방법부터 물었다.

“앞좌석에 파일럿이라 불리는 비장애인이 앉고, 뒤에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가 탑니다. 탠덤사이클은 장애인 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돼 있어요.”

김종규(30) 선수의 파일럿 전대홍(38) 선수가 말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탠덤사이클 종목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다. 오는 10월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한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 5명은 모두 경력 3년 이상을 자랑하고, 전국장애인체전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이다. 그러나 프로선수는 부산경륜공단 소속인 김종규 선수뿐이다. 다른 선수들은 평소에 안마사로 일하거나 일반 회사를 다닌다. 직장인 선수, 다시 말해 아마추어 선수다.

파일럿은 전부 경륜선수다. 이번 국토종단에 나선 경륜선수 5명은 모두 최소 한 번은 국토종단 자전거 길을 완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반면에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는 김종규 선수를 빼고 전부 첫 도전이었다. 그래서 더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지난 두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 파일럿과 만나 탠덤사이클을 탔고, 매일 체력단련실에서 근력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웠다.

이번 행사는 경륜선수의 재능기부 활동에서 비롯됐다. 현재 등록된 경륜선수는 600명인데, 이 중에서 20여 명이 개인시간을 쪼개 시각장애인 선수를 위한 파일럿으로 봉사하고 있다. 국내 대회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경륜선수의 개인적인 봉사활동을 확대해 이번 국토종단 행사를 마련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창섭 이사장은 “탠덤사이클은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서로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는 상징적인 스포츠”라며 “국토종단 하는 선수들을 보며 많은 국민이 감동도 받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단은 이번 국토종단 행사를 통해 장애인복지관 4곳에 각각 탠덤자전거 5대를 기부하고, 해당 지역 장애인을 초청해 자전거를 태워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지난 6일 진행된 출정식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출전 선수와 진행 가이드 일행.

 

4박5일의 의미 있는 동행

지난 6일 낮 12시30분, 식사를 마친 선수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행사장으로 나왔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다행히 날이 맑았다. 오후 1시40분 출정식이 끝나고 자전거 90여 대가 줄이어 출발했다. 출전 선수를 격려하기 위해 국민체육진흥공단 자전거교실 수료생부터 경륜선수봉사단, 그리고 광명장애인복지관에서 초청한 장애인 등 100여 명이 한강 마포대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렸다.

“양화대교가 보여요. 이제부터는 한강입니다. 놀러 나온 사람이 많네요.”

공민우(34) 선수가 뒷자리에 탄 시각장애인 이동훈(39) 선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탠덤사이클을 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선수의 호흡이다. 앞에 탄 파일럿은 길에 대해서 꾸준히 설명했다. 기어를 변속하거나 길 도중에 작은 턱을 만날 때는 물론이고 주변 경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 평균 5시간 페달을 굴리는 것은 고역에 가깝다. 앞에서 간단히 주변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시각장애인 선수에게는 큰 힘이 된단다.

경기도 양평의 북한강철교를 지날 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기차를 탄 것처럼 덜컹덜컹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한강을 옆에 끼고 3시간을 더 달려 첫날 종착점인 여주대교에 도착해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7일에는 여주대교에서 시작해 문경새재까지 120㎞를 달렸다. 점심식사 장소는 남한강 길의 종착지이자 새재자전거길 시작점인 충주탄금대였다. 여기에서부터 풍경이 달라졌다. 넓고 곧게 뻗은 강줄기를 따라 달리던 것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 고개로 이어졌다.

8일은 시작부터 고됐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코스 중 하나인 이화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17㎞였지만, 고개를 넘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속도를 내기 위해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고 페달을 구르다가 공민우·이동훈 선수 팀이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바로 주행을 계속했다. 8일 오후 상주보부터는 다시 강과 만났다. 상주에서 시작한 낙동강길이 부산 을숙도까지 240㎞나 이어졌다.

모든 여정이 10일 오후 1시 부산 을숙도에서 마무리됐다. 장거리 훈련은 1주일에 한 번 100㎞를 달리는 것이 전부라는 경륜선수도, 국토종단에 처음 나선다는 시각장애인 선수도 무탈하게 국토종단에 성공했다.

유일한 여성 참가자 신현중(41) 선수는 “파일럿 김동환 선수가 가이드처럼 길을 설명하고 말을 걸어줘서 그나마 덜 힘들었다”며 “말로만 듣던 국토종단 길을 눈 대신 귀와 코, 피부로 느끼며 달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