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최장집 답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지난달 27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왼쪽)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를 인터뷰했다. 한때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던 최 교수는 제3정당 설립의 꿈을 접고 이제 생활에 기반한 자율결사체에 희망을 건다고 얘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그렇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요즘 나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비관적 진단을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교수로부터 들었다. 그도 이 슬픈 진단을 내리는 데 잠시 주저했지만 소생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30년 전과 같았다. 전두환 시절, 학위 논문을 쓰던 필자는 권위주의 정권을 끝낼 방도를 젊은 최 교수에게 따져 물었는데 그의 답은 ‘노동’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 권위주의 정권을 넘어뜨렸던 노동은 민주주의 영역에서 탈퇴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결함을 일관되게 주장했던 최 교수는 이제 그 기대를 접었다. 대신 자발적 결사체로 마지막 희망을 옮겼다. 토크빌적 민주주의, 그것은 30년 전 필자와 최 교수가 조심스레 주목했던 제2의 씨앗이었다. 안철수로부터 기대를 접은 그는 시민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송 : 현안 쟁점에서 시작해 보죠. 총리 유임이 일종의 아이러니 아닌가요?

 최 : 대통령 다음에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가 안 돼요. 야당까지 넘어갈 필요도 없이 여당 경계 안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데, 대통령 주변에 있는 좁은 풀에서 고르려 하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대통령의 민주주의관이 협소한 탓입니다.

 송 : 조심스러운 지적입니다만, 대통령의 경계적 퍼스낼리티 때문은 아닌지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 말이지요. 민주주의란 경쟁과 참여라는 두 바퀴로 가동되는데, 적절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어떤 경계 내에서만 움직이고 있다면 ‘권력의 사유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 : 정치의 사유화 또는 사적 대통령이란 말을 쓰는 사람도 있지요. 대선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식할 수 있다는 관념을 맨데이트(mandate)라고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대표로 선출된 사람은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영어로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의식은 매우 약한 듯합니다.

 송 :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코드인사가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인재풀은 넓었습니다. 7~8년이 지난 지금은 정치적으로 후퇴한 것인가요?

 최 : 예, 분명히 후퇴했어요. 스필버그 영화 ‘링컨’의 원제가 ‘Team of Rivals’잖아요? 적을 각료로 포용하는 정치, 그거 쉽게 안 됩니다. 대통령을 둘러싼 언로가 막혀 있으니까요. 정보 차단, 스크리닝이 작동하면 사회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지요. 아마 한국 사회 전체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송 :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한국 정치의 어떤 문제를 시급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최 :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양파 껍질 벗기듯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게 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우선은 그동안 과대성장국가에서 비대해진 공적 부문, 즉 선출된 정부와 선출되지 않은 행정체제에 책임을 물어봐야 성과가 없다는 서글픈 사실을 확인했지요. 책임의 부재죠. 관료행정과 발전국가의 공적 부문이 비대해지면서 민영화·외주화를 거듭한 결과 그 외형은 커졌는데, 그에 반비례해 책임 소재는 축소·소멸됐습니다.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이 중첩되고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KTX 민영화, 인천공항철도 민영화가 현 공사체제로 운영되는 것보다 무엇이 좋은지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잖아요? 매각 대금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임에도 소수의 사람이 그냥 회사를 운영하듯 결정한 겁니다.

 송 : 결정 과정의 독점이지요.

 최 : 그렇습니다. 둘째,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라고 했을 때 그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가해지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입니다. 세월호는 예측 가능한 위험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다르죠. 외주화·민영화된 영역에서 감시·감독이 제대로 안 된 탓에 양극화의 하층 약자들에게 위험이 가해집니다. 공직윤리·직업윤리가 거기에 작동해야 하는데 멈춰 버린 것이죠.

 송 : 한국의 위험이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면 국가개조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야 본질에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이 공론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 : 민영화·외주화의 과정에서 부패고리가 생겨납니다. ‘~피아’로 불리는 집단, 해운조합, 한국선급, 해양구조협회 등등 이런 것들이 공사가 겹치는 영역에 존재하는데, 대개 관료 출신들의 은거지이지요. 공적 윤리가 희석화되는 이곳에서 부패와 비리가 자라납니다. 이런 구조를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잘 분석한 다음 정책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국가개조라는 그 엄청난 슬로건을 먼저 내놓고 시작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위험의 본질은 달라졌는데, 그 달라진 리스크의 본질에 닿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리조직을 만들어 봐야 헛일이죠.

 송 : 공개념의 겹구조·중첩구조가 문제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업무 대행에 돈만 받고 책임은 수주하지 않는 관행을 혁파하는 것이 국가개조의 급선무입니다.

 최 : 맞습니다. 셋째는 노동 문제입니다. 선장이 임시직에 월급이 300만원도 안 되고 승무원들도 임시직이고, 이런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할 도덕적 감성을 기대할 수 없지요. 말하자면 공직자 윤리의 부재는 노동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분절노동 시장 중 하층, 즉 비정규직 시장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감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입니다.

 송 : 국가개조란 개념도 좀 일방적인 어감을 줍니다.

 최 : 국가개조라는 말은 전전(戰前) 1930년대에 일본의 기타 잇키(北一輝)라는 극우보수 사상가가 쓴 말입니다. 서양에 대적하려면 아무튼 일본을 총체적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전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일본열도개조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일본개조론, 이런 관념의 연장선에 놓인 말이죠. 전체주의적 용어예요. 국가주의적으로 통째로 위에서 디자인하고 사회를 개조하겠다는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죠. 먼저 제일 강한 말을 던져 놓고 정부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거잖아요. 국가안전처 신설,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를 축소하고 재편하는 등 이런 식은 문제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죠.

 송 : 이런 통치양식이 또 다른 심각한 위기를 낳을까 걱정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1년 동안은 국정원 선거 개입 때문에 허송세월했고 지금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국민 사이에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최 :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쟁 원리가 강화되고 그것도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사회 운영의 원리로 정착했는데, 그것이 민주주의 가치와 잘 조응하는가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되묻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한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고 정신적 피폐화가 진행됐지요. 그런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일궈 낸 권위주의 모델로 민주화 시대를 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불러옵니다. 첫째는 비대한 관료체제를 관리하는 리더십과 정치능력이 지극히 취약해진 것이죠. 둘째, 사회는 다원화됐고 사회적 요구도 다양한데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이 모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현 정부가 꼭 그런 양상입니다.

 송 : 민주화 이후 27년이 지났는데 초기에 비해 지금의 민주정치는 후퇴했다고 진단하는 건가요?

 최 : 나쁜 정부라고 말은 못해도 사회적 요구와 그것을 다루는 정치능력의 격차는 훨씬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분명한 후퇴죠.

 송 : 최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의 꽃은 정당정치라고 주장하셨는데요, 정당체제도 후퇴했다고 진단하시는지요?

 최 : 사람들은 87년 체제를 말하는데, 그게 양당체제에 갇혀 있다면 민주당과 보수당 양당구조를 구축한 58년 체제와 다를 바가 없어요. 58년 선거가 이른바 정초선거입니다. 이후 이제껏 양당체제가 지속됐고 제3정당은 낄 자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3정당의 창구를 열지 못하면 정당 발전은 헛바퀴를 돕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든 제3정당이든 기회가 유실됐어요. 정당이 제구실을 하려면 사회로부터 인풋(input) 기능이 커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은 주입 기능이 취약해 집권정당이 아웃풋(output)을 독점하는 구조로 변형됐죠. 권위주의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이전에 나라를 만든 보수세력이 강한 나라입니다. 이들이 변화를 추구해 왔지만 폭이 좁았고 사회적 요구를 대폭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에 그런 권위주의적 구조가 정착된 것이지요. 야당의 실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회세력을 조직하고 대변하는 야당의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으니까 ‘무능력한 야당’이 되고 여당은 게을러지고,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대충 통치해도 정권 교체에 대한 위협이 없으니까 스스로 개혁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못 느끼는 거지요.

 송 : 저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상태로 나갔기에 창구가 막힌 것은 아닌지요? 최 교수님께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하면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하셨는데, 그 기대를 접으셨나요?

 최 : 예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소생 가능성이 거의 소멸한 듯합니다. 기반이 거의 붕괴돼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습니다. 노동에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이제는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죠. 아무래도 보수 양당체제로 수렴되잖아요?

 송 : 민주당-새누리당 양당구조로는 본질적인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가요? 그래도 어쨌든 양당이 노력은 하고 있지 않나요?

 최 :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진보세력으로 통칭되는 이런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어쨌든 하고는 있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보수 양당의 틀 속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런 정당체제 속에서 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쟁을 통해 정권 교체를 한다면 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을 충족하기는 하겠지만 이 정당을 통해 한국 사회를, 양극화 문제에서 시작해 붕괴된 도덕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실질적으로 바꿔 낼 수 있을지, 세월호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내고 실행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송 : 그래서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셨는지요?

 최 : 네, 그런 면도 좀 있습니다. 뭔가 지금 이 보수 양당체제를 변화시킬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문제는 제3정당이 과연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지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거죠.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제 좀 비관적입니다. 그걸 겪고 나서 기대를 접었어요.

 송 : 네. 나오신 것도 그것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안철수 본인에 대한 실망이었나요?

 최 : 모두 다죠.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문제가 상당한 차이가 있었어요. 일단 제3정당이 안 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첫째는 대선이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가 아니고 단순다수제이고, 국회의원 선거도 단순 소선거구제여서 제3정당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 둘째는 한국 사회의 균열구조가 단순해 다른 유형의 정당이 생겨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당이 들어서도 사회적 기반이 약합니다. 노동 문제를 대표하는 노동정당도 잘 안 되는 판에 다른 요인이 정당을 생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배 문제와 남북 문제를 빼고 나면 뭐 중대한 균열구조가 별로 없잖아요. 셋째, 강력한 리더십과 주체적 역량의 문제가 있어요. 안철수씨하고도 관련되고 내가 직접 경험했던 문제인데요, 좋은 리더십이 출현해 주체적 역량을 갖춘 제3정당을 만들어 가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실감했어요.

 송 : 역량이 모자란다는 얘기인가요, 안철수씨가?

 최 : 역량이 모자라죠. 그렇게 되려면 사회의 중대한 문제를 정말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해석하고 그걸 사람들한테 조리 있게 설명하고 호소해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는데…. 안철수씨 아니라도 누굴 갖다 놔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대통령이 안 돼도 좋으니 정당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각오를 가지면 혹시 모르겠는데 선거 때마다 출마해야죠, 지방 정치지망생들을 돌봐야죠, 그렇게 안 하면 인재들을 양대 정당에 모두 빼앗기는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한국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실행하는 제3정당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결국 양당체제로 돌아갔지요.

 송 : 그래도 제3정당의 기회의 창이 열렸는데, 최 교수님 말씀처럼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닫혀 버렸어요. 그리고 안철수씨는 저쪽으로 가 버렸잖아요. 야당 쪽으로 가 버렸는데….

 최 : 양당체제로 돌아가 버렸지, 네. 흡수된 겁니다, 안철수씨는. 그러니까 제3정당의 시도는 끝난 거죠. 제3정당은 없어진 거죠.

 송 :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야기된 것에는 노동조합도 책임이 크지요. 사회가 밀어낸 것이기도 합니다만.

 최 : 그러니까 양면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장제일주의라고 할까 그런 펀더멘털(fundamental)이 노동을 배제하는 것과 그것이 아닌 다른 경제 발전 노선, 예컨대 사민주의든 뭐든 그런 것이 수용되기 전에는 여지가 없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라고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조차도 친기업적 정책을 쓰지 않았잖습니까. 노동 억압적인 일관된 국가 정책, 그리고 국가와 재벌 대기업의 동맹이 핵심이잖아요. 이것이 이끌고 주도하고 있는 경제 성장 정책과 경제 운영의 특성에서 노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자리는 굉장히 협소했다는 생각이 들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거는 송 교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삶, 노동 현실, 고용 조건 같은 생활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완전히 이념적 노선을 취해 왔고 민족 문제까지를 다 우리가 해결한다는 식으로 하면 성공할 수 없지요. 그렇게 되면 중산층도 떨어져 나가니까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민주화를 통해 어쨌든 법과 제도는 일단 노동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만들어졌잖아요. 아무리 노동 억압적 환경이라고 해도. 노동운동가들이 현장 문제를 잘 다루고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향과 내용을 잡아서 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가 만들어졌으리라고 생각하죠.

 송 : 그런데 지금 영향력 있는 노조들은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살고 있는, 잘산다는 표현이 뭐 합니다만, 다른 노동자에 비해서는 그래도 비교적 생활 조건이 좋고 근로 조건과 임금이 괜찮은 편이잖아요. 그러니까 힘 있는 노조들이 제기하는 요구 조건과 쟁점들은 저 밑에 있는 50%의 비정규직과 시간제 근로자의 이해와 전혀 다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도 못했죠.

 최 : 한국 노동운동이 산별노조가 아니고 기업별 노조잖아요? 기업별이라는 것도 재벌 대기업에 주로 기반해 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됐는데, 이게 어떻게 변할 수가 없는 구조로 돼 버렸습니다. 정작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노동 개혁에 제대로 기여하려면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송 : 실제로 대기업 노조들이 밑에 있는 중소기업 노조를 끌어들이고 싶어도 이질성이 증대하고 그들끼리 또 균열이 생길까 봐 계속 배제를 해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비정규직이 저렇게 내쳐진 것도, 물론 이제 사회 전체적으로 구조가 밖으로 자꾸 내모는 그런 힘도 있었지만 노동이, 힘 있는 노동조합이 끌어안지 못한 책임도 상당히 크죠. 노동 배제 전략과 노동의 독주가 결국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낳은 셈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점도 거기에 결부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동조합은 생활정치로부터 시작을 하는 커뮤니티 조직이잖아요. 커뮤니티 생활정치에서 뿌리를 내리고 올라오는 건데, 우리는 이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거기에 정치 발전의 쇠퇴 요인이 잠복해 있습니다. 최 교수님도 책에 쓰셨습니다만 한국 정치의 발전 에너지가 제도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제도 밖에서 유입돼 내부 개혁을 이룬 것인데요, 밖에서 들어오는 이 에너지가 지금 고갈돼 있는 거 아닌가요? 시민운동도 거의 붕괴 상태고, 노동운동도 이런 상태기 때문에 지금 정치권에 대한 외적 압력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 게 아닌가, 이게 가장 큰 위기 요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곧 시민운동의 문제죠.

 최 : 네. 동감입니다. 민주화운동 때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상당히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었죠.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가 병립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시민사회가 형편없이 약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왜냐하면 운동에만 의존하는 시민사회라는 게 허약할 수밖에 없고요, 운동을 탈동원화하면 다 각자 자기의 본래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즘 나오는 ‘시민정치’라는 말은 그만큼 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를 얘기하고자 하는 건데요,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게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빈약합니다. 사회기반이 다원적이 아니고 모니스틱한(일원적인) 한국에서는 인터넷이나 SNS가 동력이 될지는 몰라도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본질적 방안은 아닙니다. 자발적 결사체죠.

 송 : 정치적 능동주의(political activism)를 활성화하려면 결국은 주거지 차원에서 결사체들이 활동하는 것,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micro foundation)라고 할까요, 이걸 채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합니다만, 저는 시민운동을 마을공동체 운동 형태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 : 네,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은 거, 시민운동이 운동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자율적 결사체, 생활에 토대를 두는 주거지 단체, 직업직능적인 결사체, 그리고 생산자 집단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기가 일하는 직장 문제는 자신이 잘 알지요. 생계조직과 직장조직, 마을조직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민주주의가 단단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결사체의 자유를 한껏 보장해야 합니다. 세월호만 해도 그래요. 대통령이 모두 책임질 수도 없죠. 책임의식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 : 토크빌적 민주주의군요.

 최 : 네, 맞습니다.

 송 : 토크빌적인 사고인데 요즘 협동조합 운동에서 이런 싹을 좀 읽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협동조합 운동을 의구심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사체 운동이 일어나는 거는 상당히 좋다고 봅니다. 도덕적인 어떤 각오를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주주의의 미시적 구조를 만들 때가 됐다고 봅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책을 보내신 것도 그런 의미였나요?

 최 :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또 지사를 하면 좀 잘해서, 지금 뭐 별로 좋은 정치인이 없는데 멋있는 정치인이 됐으면 하는 기대였지요. 격려의 차원입니다.

 송 : 이제 한 3년 정도 지나면 그분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결성하는 시간을 맞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답답해하는 국민에게,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이거 하나만 해 봐라’라고 집어서 말씀해 주신다면?

 최 : 거창한 것보다 결사체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전교조가 이념과 남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법외 노조로 만들어 억압하는 것도 문제가 많지요. 아무튼 자율적 결사에 자유를 주고 사람들이 그 자유에 부응하는 책임의식과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송 : 한국은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격차가 큽니다. 격차를 줄이는 것, 이게 우리의 과제이죠. 오늘 최 교수께서 한국의 민주정치가 후퇴했다고 아프게 진단하셨는데,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시민사회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습니다. 정부와 정권의 책임의식이 증발한 것처럼 시민사회의 책임도 방기되면 총체적 위기를 맞습니다. 우리의 후대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스스로 해결할 과제들이 발견되면 결사체를 통해 풀어 나가자, 그것에서 한국 정치를 갱신하는 민주적 마음의 습관이 나온다는 것이 오늘 대담의 제언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서울대 교수·사회학

지난달 27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왼쪽)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를 인터뷰했다. 한때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던 최 교수는 제3정당 설립의 꿈을 접고 이제 생활에 기반한 자율결사체에 희망을 건다고 얘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그렇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요즘 나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비관적 진단을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교수로부터 들었다. 그도 이 슬픈 진단을 내리는 데 잠시 주저했지만 소생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30년 전과 같았다. 전두환 시절, 학위 논문을 쓰던 필자는 권위주의 정권을 끝낼 방도를 젊은 최 교수에게 따져 물었는데 그의 답은 ‘노동’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 권위주의 정권을 넘어뜨렸던 노동은 민주주의 영역에서 탈퇴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결함을 일관되게 주장했던 최 교수는 이제 그 기대를 접었다. 대신 자발적 결사체로 마지막 희망을 옮겼다. 토크빌적 민주주의, 그것은 30년 전 필자와 최 교수가 조심스레 주목했던 제2의 씨앗이었다. 안철수로부터 기대를 접은 그는 시민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송 : 현안 쟁점에서 시작해 보죠. 총리 유임이 일종의 아이러니 아닌가요?

 최 : 대통령 다음에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가 안 돼요. 야당까지 넘어갈 필요도 없이 여당 경계 안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데, 대통령 주변에 있는 좁은 풀에서 고르려 하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대통령의 민주주의관이 협소한 탓입니다.

 송 : 조심스러운 지적입니다만, 대통령의 경계적 퍼스낼리티 때문은 아닌지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 말이지요. 민주주의란 경쟁과 참여라는 두 바퀴로 가동되는데, 적절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어떤 경계 내에서만 움직이고 있다면 ‘권력의 사유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 : 정치의 사유화 또는 사적 대통령이란 말을 쓰는 사람도 있지요. 대선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식할 수 있다는 관념을 맨데이트(mandate)라고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대표로 선출된 사람은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영어로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의식은 매우 약한 듯합니다.

 송 :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코드인사가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인재풀은 넓었습니다. 7~8년이 지난 지금은 정치적으로 후퇴한 것인가요?

 최 : 예, 분명히 후퇴했어요. 스필버그 영화 ‘링컨’의 원제가 ‘Team of Rivals’잖아요? 적을 각료로 포용하는 정치, 그거 쉽게 안 됩니다. 대통령을 둘러싼 언로가 막혀 있으니까요. 정보 차단, 스크리닝이 작동하면 사회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지요. 아마 한국 사회 전체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송 :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한국 정치의 어떤 문제를 시급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최 :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양파 껍질 벗기듯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게 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우선은 그동안 과대성장국가에서 비대해진 공적 부문, 즉 선출된 정부와 선출되지 않은 행정체제에 책임을 물어봐야 성과가 없다는 서글픈 사실을 확인했지요. 책임의 부재죠. 관료행정과 발전국가의 공적 부문이 비대해지면서 민영화·외주화를 거듭한 결과 그 외형은 커졌는데, 그에 반비례해 책임 소재는 축소·소멸됐습니다.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이 중첩되고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KTX 민영화, 인천공항철도 민영화가 현 공사체제로 운영되는 것보다 무엇이 좋은지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잖아요? 매각 대금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임에도 소수의 사람이 그냥 회사를 운영하듯 결정한 겁니다.

 송 : 결정 과정의 독점이지요.

 최 : 그렇습니다. 둘째,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라고 했을 때 그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가해지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입니다. 세월호는 예측 가능한 위험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다르죠. 외주화·민영화된 영역에서 감시·감독이 제대로 안 된 탓에 양극화의 하층 약자들에게 위험이 가해집니다. 공직윤리·직업윤리가 거기에 작동해야 하는데 멈춰 버린 것이죠.

 송 : 한국의 위험이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면 국가개조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야 본질에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이 공론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 : 민영화·외주화의 과정에서 부패고리가 생겨납니다. ‘~피아’로 불리는 집단, 해운조합, 한국선급, 해양구조협회 등등 이런 것들이 공사가 겹치는 영역에 존재하는데, 대개 관료 출신들의 은거지이지요. 공적 윤리가 희석화되는 이곳에서 부패와 비리가 자라납니다. 이런 구조를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잘 분석한 다음 정책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국가개조라는 그 엄청난 슬로건을 먼저 내놓고 시작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위험의 본질은 달라졌는데, 그 달라진 리스크의 본질에 닿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리조직을 만들어 봐야 헛일이죠.

 송 : 공개념의 겹구조·중첩구조가 문제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업무 대행에 돈만 받고 책임은 수주하지 않는 관행을 혁파하는 것이 국가개조의 급선무입니다.

 최 : 맞습니다. 셋째는 노동 문제입니다. 선장이 임시직에 월급이 300만원도 안 되고 승무원들도 임시직이고, 이런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할 도덕적 감성을 기대할 수 없지요. 말하자면 공직자 윤리의 부재는 노동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분절노동 시장 중 하층, 즉 비정규직 시장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감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입니다.

 송 : 국가개조란 개념도 좀 일방적인 어감을 줍니다.

 최 : 국가개조라는 말은 전전(戰前) 1930년대에 일본의 기타 잇키(北一輝)라는 극우보수 사상가가 쓴 말입니다. 서양에 대적하려면 아무튼 일본을 총체적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전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일본열도개조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일본개조론, 이런 관념의 연장선에 놓인 말이죠. 전체주의적 용어예요. 국가주의적으로 통째로 위에서 디자인하고 사회를 개조하겠다는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죠. 먼저 제일 강한 말을 던져 놓고 정부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거잖아요. 국가안전처 신설,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를 축소하고 재편하는 등 이런 식은 문제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죠.

 송 : 이런 통치양식이 또 다른 심각한 위기를 낳을까 걱정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1년 동안은 국정원 선거 개입 때문에 허송세월했고 지금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국민 사이에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최 :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쟁 원리가 강화되고 그것도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사회 운영의 원리로 정착했는데, 그것이 민주주의 가치와 잘 조응하는가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되묻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한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고 정신적 피폐화가 진행됐지요. 그런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일궈 낸 권위주의 모델로 민주화 시대를 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불러옵니다. 첫째는 비대한 관료체제를 관리하는 리더십과 정치능력이 지극히 취약해진 것이죠. 둘째, 사회는 다원화됐고 사회적 요구도 다양한데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이 모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현 정부가 꼭 그런 양상입니다.

 송 : 민주화 이후 27년이 지났는데 초기에 비해 지금의 민주정치는 후퇴했다고 진단하는 건가요?

 최 : 나쁜 정부라고 말은 못해도 사회적 요구와 그것을 다루는 정치능력의 격차는 훨씬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분명한 후퇴죠.

 송 : 최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의 꽃은 정당정치라고 주장하셨는데요, 정당체제도 후퇴했다고 진단하시는지요?

 최 : 사람들은 87년 체제를 말하는데, 그게 양당체제에 갇혀 있다면 민주당과 보수당 양당구조를 구축한 58년 체제와 다를 바가 없어요. 58년 선거가 이른바 정초선거입니다. 이후 이제껏 양당체제가 지속됐고 제3정당은 낄 자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3정당의 창구를 열지 못하면 정당 발전은 헛바퀴를 돕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든 제3정당이든 기회가 유실됐어요. 정당이 제구실을 하려면 사회로부터 인풋(input) 기능이 커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은 주입 기능이 취약해 집권정당이 아웃풋(output)을 독점하는 구조로 변형됐죠. 권위주의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이전에 나라를 만든 보수세력이 강한 나라입니다. 이들이 변화를 추구해 왔지만 폭이 좁았고 사회적 요구를 대폭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에 그런 권위주의적 구조가 정착된 것이지요. 야당의 실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회세력을 조직하고 대변하는 야당의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으니까 ‘무능력한 야당’이 되고 여당은 게을러지고,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대충 통치해도 정권 교체에 대한 위협이 없으니까 스스로 개혁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못 느끼는 거지요.

 송 : 저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상태로 나갔기에 창구가 막힌 것은 아닌지요? 최 교수님께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하면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하셨는데, 그 기대를 접으셨나요?

 최 : 예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소생 가능성이 거의 소멸한 듯합니다. 기반이 거의 붕괴돼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습니다. 노동에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이제는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죠. 아무래도 보수 양당체제로 수렴되잖아요?

 송 : 민주당-새누리당 양당구조로는 본질적인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가요? 그래도 어쨌든 양당이 노력은 하고 있지 않나요?

 최 :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진보세력으로 통칭되는 이런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어쨌든 하고는 있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보수 양당의 틀 속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런 정당체제 속에서 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쟁을 통해 정권 교체를 한다면 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을 충족하기는 하겠지만 이 정당을 통해 한국 사회를, 양극화 문제에서 시작해 붕괴된 도덕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실질적으로 바꿔 낼 수 있을지, 세월호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내고 실행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송 : 그래서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셨는지요?

 최 : 네, 그런 면도 좀 있습니다. 뭔가 지금 이 보수 양당체제를 변화시킬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문제는 제3정당이 과연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지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거죠.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제 좀 비관적입니다. 그걸 겪고 나서 기대를 접었어요.

 송 : 네. 나오신 것도 그것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안철수 본인에 대한 실망이었나요?

 최 : 모두 다죠.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문제가 상당한 차이가 있었어요. 일단 제3정당이 안 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첫째는 대선이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가 아니고 단순다수제이고, 국회의원 선거도 단순 소선거구제여서 제3정당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 둘째는 한국 사회의 균열구조가 단순해 다른 유형의 정당이 생겨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당이 들어서도 사회적 기반이 약합니다. 노동 문제를 대표하는 노동정당도 잘 안 되는 판에 다른 요인이 정당을 생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배 문제와 남북 문제를 빼고 나면 뭐 중대한 균열구조가 별로 없잖아요. 셋째, 강력한 리더십과 주체적 역량의 문제가 있어요. 안철수씨하고도 관련되고 내가 직접 경험했던 문제인데요, 좋은 리더십이 출현해 주체적 역량을 갖춘 제3정당을 만들어 가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실감했어요.

 송 : 역량이 모자란다는 얘기인가요, 안철수씨가?

 최 : 역량이 모자라죠. 그렇게 되려면 사회의 중대한 문제를 정말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해석하고 그걸 사람들한테 조리 있게 설명하고 호소해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는데…. 안철수씨 아니라도 누굴 갖다 놔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대통령이 안 돼도 좋으니 정당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각오를 가지면 혹시 모르겠는데 선거 때마다 출마해야죠, 지방 정치지망생들을 돌봐야죠, 그렇게 안 하면 인재들을 양대 정당에 모두 빼앗기는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한국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실행하는 제3정당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결국 양당체제로 돌아갔지요.

 송 : 그래도 제3정당의 기회의 창이 열렸는데, 최 교수님 말씀처럼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닫혀 버렸어요. 그리고 안철수씨는 저쪽으로 가 버렸잖아요. 야당 쪽으로 가 버렸는데….

 최 : 양당체제로 돌아가 버렸지, 네. 흡수된 겁니다, 안철수씨는. 그러니까 제3정당의 시도는 끝난 거죠. 제3정당은 없어진 거죠.

 송 :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야기된 것에는 노동조합도 책임이 크지요. 사회가 밀어낸 것이기도 합니다만.

 최 : 그러니까 양면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장제일주의라고 할까 그런 펀더멘털(fundamental)이 노동을 배제하는 것과 그것이 아닌 다른 경제 발전 노선, 예컨대 사민주의든 뭐든 그런 것이 수용되기 전에는 여지가 없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라고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조차도 친기업적 정책을 쓰지 않았잖습니까. 노동 억압적인 일관된 국가 정책, 그리고 국가와 재벌 대기업의 동맹이 핵심이잖아요. 이것이 이끌고 주도하고 있는 경제 성장 정책과 경제 운영의 특성에서 노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자리는 굉장히 협소했다는 생각이 들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거는 송 교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삶, 노동 현실, 고용 조건 같은 생활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완전히 이념적 노선을 취해 왔고 민족 문제까지를 다 우리가 해결한다는 식으로 하면 성공할 수 없지요. 그렇게 되면 중산층도 떨어져 나가니까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민주화를 통해 어쨌든 법과 제도는 일단 노동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만들어졌잖아요. 아무리 노동 억압적 환경이라고 해도. 노동운동가들이 현장 문제를 잘 다루고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향과 내용을 잡아서 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가 만들어졌으리라고 생각하죠.

 송 : 그런데 지금 영향력 있는 노조들은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살고 있는, 잘산다는 표현이 뭐 합니다만, 다른 노동자에 비해서는 그래도 비교적 생활 조건이 좋고 근로 조건과 임금이 괜찮은 편이잖아요. 그러니까 힘 있는 노조들이 제기하는 요구 조건과 쟁점들은 저 밑에 있는 50%의 비정규직과 시간제 근로자의 이해와 전혀 다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도 못했죠.

 최 : 한국 노동운동이 산별노조가 아니고 기업별 노조잖아요? 기업별이라는 것도 재벌 대기업에 주로 기반해 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됐는데, 이게 어떻게 변할 수가 없는 구조로 돼 버렸습니다. 정작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노동 개혁에 제대로 기여하려면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송 : 실제로 대기업 노조들이 밑에 있는 중소기업 노조를 끌어들이고 싶어도 이질성이 증대하고 그들끼리 또 균열이 생길까 봐 계속 배제를 해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비정규직이 저렇게 내쳐진 것도, 물론 이제 사회 전체적으로 구조가 밖으로 자꾸 내모는 그런 힘도 있었지만 노동이, 힘 있는 노동조합이 끌어안지 못한 책임도 상당히 크죠. 노동 배제 전략과 노동의 독주가 결국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낳은 셈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점도 거기에 결부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동조합은 생활정치로부터 시작을 하는 커뮤니티 조직이잖아요. 커뮤니티 생활정치에서 뿌리를 내리고 올라오는 건데, 우리는 이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거기에 정치 발전의 쇠퇴 요인이 잠복해 있습니다. 최 교수님도 책에 쓰셨습니다만 한국 정치의 발전 에너지가 제도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제도 밖에서 유입돼 내부 개혁을 이룬 것인데요, 밖에서 들어오는 이 에너지가 지금 고갈돼 있는 거 아닌가요? 시민운동도 거의 붕괴 상태고, 노동운동도 이런 상태기 때문에 지금 정치권에 대한 외적 압력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 게 아닌가, 이게 가장 큰 위기 요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곧 시민운동의 문제죠.

 최 : 네. 동감입니다. 민주화운동 때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상당히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었죠.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가 병립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시민사회가 형편없이 약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왜냐하면 운동에만 의존하는 시민사회라는 게 허약할 수밖에 없고요, 운동을 탈동원화하면 다 각자 자기의 본래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즘 나오는 ‘시민정치’라는 말은 그만큼 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를 얘기하고자 하는 건데요,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게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빈약합니다. 사회기반이 다원적이 아니고 모니스틱한(일원적인) 한국에서는 인터넷이나 SNS가 동력이 될지는 몰라도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본질적 방안은 아닙니다. 자발적 결사체죠.

 송 : 정치적 능동주의(political activism)를 활성화하려면 결국은 주거지 차원에서 결사체들이 활동하는 것,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micro foundation)라고 할까요, 이걸 채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합니다만, 저는 시민운동을 마을공동체 운동 형태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 : 네,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은 거, 시민운동이 운동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자율적 결사체, 생활에 토대를 두는 주거지 단체, 직업직능적인 결사체, 그리고 생산자 집단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기가 일하는 직장 문제는 자신이 잘 알지요. 생계조직과 직장조직, 마을조직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민주주의가 단단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결사체의 자유를 한껏 보장해야 합니다. 세월호만 해도 그래요. 대통령이 모두 책임질 수도 없죠. 책임의식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 : 토크빌적 민주주의군요.

 최 : 네, 맞습니다.

 송 : 토크빌적인 사고인데 요즘 협동조합 운동에서 이런 싹을 좀 읽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협동조합 운동을 의구심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사체 운동이 일어나는 거는 상당히 좋다고 봅니다. 도덕적인 어떤 각오를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주주의의 미시적 구조를 만들 때가 됐다고 봅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책을 보내신 것도 그런 의미였나요?

 최 :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또 지사를 하면 좀 잘해서, 지금 뭐 별로 좋은 정치인이 없는데 멋있는 정치인이 됐으면 하는 기대였지요. 격려의 차원입니다.

 송 : 이제 한 3년 정도 지나면 그분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결성하는 시간을 맞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답답해하는 국민에게,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이거 하나만 해 봐라’라고 집어서 말씀해 주신다면?

 최 : 거창한 것보다 결사체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전교조가 이념과 남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법외 노조로 만들어 억압하는 것도 문제가 많지요. 아무튼 자율적 결사에 자유를 주고 사람들이 그 자유에 부응하는 책임의식과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송 : 한국은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격차가 큽니다. 격차를 줄이는 것, 이게 우리의 과제이죠. 오늘 최 교수께서 한국의 민주정치가 후퇴했다고 아프게 진단하셨는데,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시민사회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습니다. 정부와 정권의 책임의식이 증발한 것처럼 시민사회의 책임도 방기되면 총체적 위기를 맞습니다. 우리의 후대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스스로 해결할 과제들이 발견되면 결사체를 통해 풀어 나가자, 그것에서 한국 정치를 갱신하는 민주적 마음의 습관이 나온다는 것이 오늘 대담의 제언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장집은 …

1943년 강원도 강릉 출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83년 모교에 부임해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담론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다. 98년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5월 당시 무소속이었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으나 80일 만에 사퇴했다. 주요 저서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어떤 민주주의인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을까』(공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