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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혹, 길 끝엔 업체 로비가 … " 김광재 유서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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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철피아(철도 마피아)’ 수사를 받던 중 지난 4일 자살한 고(故) 김광재(58)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남긴 유서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그는 유서(본지 7월 5일자 2면)에서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정계 진출 유혹에 끌린)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적었다. 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당사자가 정치권의 개입 및 청탁·압력 의혹을 제기하고 숨지면서 철피아 수사가 정치권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일 철도시설공단 전·현직 인사들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2011년 8월 취임 당시만 해도 전직 관료 출신 ‘철피아’ 인사들이 개입된 철도업계 납품을 둘러싼 복마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연간 수조원대 철도공사 발주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고 특정업체들에 쏠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업체가 2013년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등 2000억원대 독점 납품계약을 따낸 AVT사였다. 전직 공단 관계자는 “평소 국회의원이 꿈이었던 김 전 이사장이 유서에 쓴 대로 수천만원대 금품이 아니라 공천을 미끼로 한 여권 인사들의 압력과 청탁을 물리치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이사장의 전임 이사장이던 조현룡(69) 의원이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으로 경남 의령-함안-합천에 당선, 국회에서 노른자위라는 국토교통위원회와 예산결산특위, 기획재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것도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게 된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이사장에게 여권 인사들과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공천 유혹을 전달한 사람이 영남대 후배인 권영모(55·구속)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이었다고 한다. 김 전 이사장의 영남대 동기로 공단 궤도처장을 지낸 A씨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도 로비의 출발점인 AVT사 이모(55)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권 전 부대변인이 여당 실세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 다수를 AVT사 이 대표와 김광재 전 이사장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5일 김 전 이사장에 대한 납품청탁 대가로 이 대표로부터 2억원대 금품과 고문료를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별도로 3000여만원을 김 전 이사장에게 전달한 혐의(뇌물 공여)로 권 전 부대변인을 구속했다.

 검찰은 권 전 부대변인이 소개한 여권 인사들이 금품 로비를 받았는지를 캐고 있다. 권 전 부대변인은 현재 대학 선배인 김 전 이사장의 자살로 충격을 받아 정치권 인사에 대한 진술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과거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특보 출신인 권 전 부대변인은 현 정권 핵심 인사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 60~70명의 부대변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천억대 납품계약 체결에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가 누구인지 조사 중이다.

 검찰은 또 서울 강서구의 3000억원대 재력가 송모(67)씨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44) 서울시의원이 AVT사 고문으로 재직하며 이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에게 국정감사 무마 등을 위해 야당 국토위 의원들을 소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김 의원은 이 대표로부터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살해된 송씨도 김 의원에게 용도변경 청탁대가로 5억2000여만원을 준 것 외에 2004~2009년 해당 중진 의원을 포함해 4명의 여야 지역구 의원에게 500만원씩 정치후원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심새롬·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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