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두 부류 … 원하는 삶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앙선데이

입력 2014.07.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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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28면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 1930~2013) 나이지리아 이보족 출신으로 미션스쿨을 졸업한 뒤 대학에서 의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아프리카가 겪은 참담한 사회사를 문학적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노력했으며, 28세에 발표한 첫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박하사탕’의 명 장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마주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 곧이어 영화는 세월이 앗아간 그의 흔적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6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치누아 아체베

누구에게나 이렇게 돌아가고픈 시절이 있다.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면서 “그 시절 참 좋았었는데” 하고 끝내버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데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가물가물한 기억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실이고, 바로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오늘의 절망에서 출발한다. 이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영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19세기 말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Things Fall Apart)』의 주인공 오콩코 역시 그랬다.

이오족 최고의 씨름선수이자 전사로 존경 받았던 오콩코가 왜 그런 운명을 맞게 됐을까? 아마도 서구 문명과 제국주의의 침략 때문일 것이라고, 그래서 오콩코가 불쌍하게 희생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체베가 옆집 아저씨 얘기하듯 구수한 입담으로 담담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무오피아 마을의 오콩코는 성격이 불 같은 사내지만 맨손으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일궈낸 가장으로 세 명의 아내와 여덟 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실수로 한 소년을 죽이는 바람에 마을에서 추방당해 7년이 지나서야 돌아온다. 한데 그가 다시 마주친 고향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백인 교회가 들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심어주고 있고, 백인 정부는 법원과 경찰의 힘으로 부족을 지배하고 있다. 그가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눈앞에서 부서지고 산산 조각나고 있는 부족민들이다.

“우무오피아의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오콩코와 달리 새로운 체제에 강한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백인은 괴상한 종교를 가지고 왔지만 교역소도 세웠고, 이전과 달리 야자유와 열매도 비싼 물건이 되었고, 많은 돈이 우무오피아로 흘러 들었다.” 게다가 백인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속옷과 수건을 선물로 주었다. 사람들은 몇 달만 배우면 법원 서기까지 될 수 있었고, 백인들의 약은 빠르고 잘 들었다.

그러나 오콩코의 눈에는 백인들이 이오족의 전통과 질서를 짓밟는 것으로만 보인다. 이오족이 신성시하는 비단구렁이를 백인들이 죽여도 못 본채 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사람들에게 오콩코는 외친다.

“겁쟁이처럼 굴지 맙시다. 어떤 녀석이 내 집에 와 똥을 쌌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눈을 감으면 되나요? 아닙니다! 몽둥이를 가져와 머리를 깨버려야지요. 그게 남자가 할 일입니다.”

마침내 백인 교회의 신도 하나가 그들의 조상신에게 수모를 주자 오콩코는 부족 지도자들과 함께 교회를 불태우고, 치안판사가 보낸 전령의 목을 자른다. 그러나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사는 이제 다 사라지고, 그들은 혼란에 빠진 군중일 뿐이다.

오콩고는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오족의 전통으로는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큰 죄악이라 동족이 손을 댈 수 없다. 그래서 오콩코를 잡으러 온 백인 치안판사에게 그의 친구 오비에리카는, 당신은 이방인이니 그를 묻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백인과 원주민의 구분은 기껏 이 정도다. 마을 원로이자 오콩코의 외삼촌인 우첸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엔 이것이다 하는 끝은 없는 법이어서, 어떤 종족에게 좋은 것이 다른 종족에게는 싫은 것이 되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 ‘재림’에서 따온 것인데, 예이츠는 지금 이 세상의 질서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해도 그것이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노래했다. 사실 문명과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삶이다.

이 소설에는 이오족 마을의 어른들이 전해주는 삶의 지혜들이 무수히 나오는데, 어떤 노인은 겸손을 모르는 오콩코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왕의 입을 보면, 한때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출발시간이 늦자 이렇게 말한다. “새 아내를 막 맞이한 신랑과는 이른 아침에 약속을 하지 말아야지.”

오콩코가 추방당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갔을 때 무거운 표정으로 낙담에 빠져있자 우첸두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떠올려보라고 한다.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삶이란 이처럼 누구에게나 고단한 것이지만 다들 힘들게 참고 살아간다. 이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면 백인과 원주민도 아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오콩코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았을까?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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