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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명령 따른 장쉐량 ‘매국노’ 오명 쓰고 해외 유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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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29면

장제스의 처남 쑹즈원(宋子文. 왼쪽 두 번째)은 장쉐량의 지기(知己)였다. 장쉐량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쑹즈원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은 장쉐량 문제로 장제스와 결별했다. 1943년, 퀘백(Quebe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에 도착한 쑹즈원. 오른쪽 두 번째는 부인 장웨이(張樂怡). [사진 김명호]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은 일본군에게 아버지와 아들을 잃었다. 일본이라면 철전지 원수였다. 자다가도 일본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1>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일본과의 무력 충돌을 바라지 않았다. 장쉐량의 불 같은 성격도 잘 알았다. 일본군이 동북 3성을 침공할 경우 장쉐량의 대응을 우려했다. 1931년 8월 16일, 장쉐량에게 간단한 비밀 전문을 보냈다. “앞으로 일본 군대가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절대 응수하지 마라. 만에 하나, 일시적인 분노로 국가와 민족의 대계를 그르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난징(南京)의 국민당 요원들도 비슷한 전문을 장쉐량에게 보냈다. 아들뻘인 장쉐량을 깍듯이 모시던 감찰원장 위유런(于右任·우우임)도 장제스의 성화에 못 이겨 친필 서신을 보냈다. “중앙정부의 가장 큰 책무는 내란(공산당을 지칭)의 평정이다. 동북의 형제들은 이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장쉐량은 베이핑의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부인 위펑즈(于鳳至·우봉지)는 장제스가 보낸 전문을 깊숙한 곳에 숨겼다.

9월 18일, 일본군이 싸움을 걸어왔다. 장쉐량은 장제스의 명령에 순종했다. 동북을 일본 관동군에게 내주고 동북군을 만리장성 너머로 철수시켰다. 장제스는 “매국노”와 “무저항 장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장쉐량에게 외유를 권했다. “잠시 나가 있어라. 1년만 지나면 수그러든다”

장쉐량과 함께 유럽 순방길에 오른 위펑즈는 장제스가 보낸 전문부터 챙겼다. 런던에 도착하자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을 찾아가 귀금속과 함께 개인금고에 보관했다. 훗날 장쉐량이 연금에 처해지자 위펑즈는 이 전문을 쑹즈원에게 보여줬다. 장쉐량의 안위를 누구보다 걱정하던 쑹즈원은 동생 쑹메이링을 통해 “장쉐량을 죽이면 전문을 공개하겠다”며 장제스를 협박했다.

쑹메이링은 유럽에서 귀국한 장쉐량을 장제스에게 안내했다. 장쉐량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환대를 받았다. 무솔리니는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무솔리니를 본받자. 한 개의 정당에 한 명의 영수가 우리 체질에 맞는다. 최고 통수권자인 위원장이 항일전쟁을 지휘하면 무조건 복종하겠다”며 시종실 주임자리를 원했다. 장제스는 거절했다 “공산당부터 섬멸시킨 후에 생각해보자.”

서북군 지휘관 양후청. 1936년 12월 12일 밤, 장쉐량과 함께 시안사변을 주도했다.

장제스는 장쉐량을 옌안에 웅크린 홍군 토벌 부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총사령관은 장제스였다. “시안(西安)으로 가라. 내 대신 홍군 섬멸작전을 지휘해라.” 시안과 옌안은 지척간이었다. 당시 시안 일대는 국민당 원로 양후청(楊虎成·양호성)이 지휘하는 서북군(西北軍)의 천하였다. 양후청은 동북군을 거느리고 온 장쉐량의 지휘를 거부하지 않았다.

위기에 몰린 공산당은 리커농(李克農·이극농. 중공의 대표적인 비밀공작 전문가, 한국전쟁 휴전회담과 제네바 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했다)에게 장쉐량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1984년, 마오쩌둥이 리커농에게 보낸 전문이 공개됐다. “우리는 항일전쟁을 주장하는 장쉐량의 의견에 동의한다. 동북군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싶다. 장제스와 장쉐량을 떼어놔라. 내전을 중지하면, 홍군이 항일의 선봉대 역할을 하겠다. 매국노 토벌도 우리에게 맡기면 성실히 수행하겠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직접 장쉐량과 담판해라. 원칙을 양보하지 말고 교섭도 파열 시키지 마라.” 장쉐량과 1차 접촉에 성공한 리커농은 저우언라이와 장쉐량의 만남을 주선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귀가 얇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의적이다. 저우언라이를 만난 장쉐량은 중공측의 주장에 동의했다. 엄청난 제의를 했다. “동북군에 상주할 홍군 대표를 파견해라. 정보를 교환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함께 토의하자.” 장제스 옹호도 잊지 않았다. “장제스는 항일을 반대한 적이 없다. 항일전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항일전쟁을 지휘할 사람은 장제스가 유일하다. 나는 장제스를 만날 기회가 많다. 볼 때마다 항일전쟁을 건의하겠다.” 저우언라이는 이견이 없었다. 장쉐량은 만족했다. 무기구입에 쓰라며 은(銀) 2만량과 미화 20만불을 건넸다. 헤어질 무렵 큰 상자를 저우언라이에게 내밀었다. “홍군에게 꼭 필요한 귀한 물건이다. 내 입당 지원서로 알고 잘 간직해라. ” 상자를 열어본 저우언라이와 리커농은 입이 벌어졌다. 최신 군사지도가 들어있었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주더·펑더화이와 함께 장쉐량의 입당 문제를 논의했다. 시안의 장쉐량에게 “장쉐량 동지”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낸 후 코민테른측에 승인을 요청했다. 코민테른은 장쉐량의 입당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쉐량은 국민당의 2인자다. 장제스와 함께 중국 홍군 최대의 적이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마오쩌둥은 다시 장쉐량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두만 “장쉐량 대인각하”로 시작 될 뿐, 내용은 먼저 보낸 것과 한자도 틀리지 않았다.

장제스의 정보기관은 눈뜬 장님이 아니었다. 중앙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장 다이리(戴笠·대립)가 장쉐량이 비행기를 몰고 시안을 떠났던 사실을 장제스에게 보고했다. “공산당과 접촉한 것이 분명합니다. 체포를 건의합니다.”

그날 밤, 장제스는 쑹메이링의 침실을 찾았다. “장쉐량이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며 쑹메이링의 눈치를 살폈다. 쑹메이링은 발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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