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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PTSD 정복, 뇌 신경망 지도에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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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01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뇌』는 인간이 행동하는 동기 13가지 가운데 마지막 하나를 ‘최후 비밀’로 묘사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란 물음에 가장 근접한 해답이다. 작가는 ‘최후 비밀’을 쾌락, 그것도 뇌로부터 비롯된 궁극의 쾌락이라고 표현했다. 쥐가 지렛대를 누를 때 이 부분에 전기자극을 받도록 하면 쥐는 하염없이 지렛대만 누르다 끝내는 죽는다.
 지난달 12일 가천대 뇌과학연구소에서 만난 조장희 석좌교수는 ‘최후 비밀’에 대한 해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었다. 7테슬라(지구 자기장의 35만 배)의 MRI로 찍은 살아 있는 인간의 뇌를 연구하면서다.
 조 교수는 7테슬라 MRI로 뇌를 찍은 뒤 x,y,z 축에 따라 뇌신경을 각각 다른 색으로 염색했다. “1㎜ 간격으로 뇌를 촬영하고, 이를 기존에 나온 뇌 해부도와 비교하면 살아 있는 인간의 뇌 신경망 연결을 확인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조 교수팀은 이 방법으로 뇌 속에서 감정 조절과 관련된 신경, 이른바 내측전뇌다발(MFBMedial Forebrain Bundle)의 위치를 새롭게 확인했고, 조만간 연구 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 교수팀에 따르면 MFB는 기존에 밝혀진 것보다 뇌 수평선(기준점)을 기준으로 좀 더 아래에 있고, 모양은 흩어진 다발과 비슷하다. 이 MFB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한 ‘최후 비밀’, 즉 쾌락의 중추다.
 ‘최후 비밀’이 담고 있는 정보는 비단 쾌락만이 아니다. 복측피개영역(VTA)에서 측좌핵(NA)을 잇는 MFB는 ‘쾌락과 욕망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의 통로다. 도파민은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고 분비량이 과다하면 정신분열증, 적으면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유발한다.
 조 교수는 “앞으로는 강박신경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뇌질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정신건강 관리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뇌 신경망과 이를 통해 전달되는 신경전달물질을 파악한다면 정밀한 ‘타깃’ 치료도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뇌 연구, 국소주의에서 연결주의로
과거에 뇌 연구자들은 정신적신체적 이상증세를 겪는 인간을 관찰하고, 죽은 뒤 뇌를 해부해 손상 부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뇌를 탐구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뇌에 전기자극을 주기도 했다.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인 팬필드는 이 방식으로 뇌의 특정 구역이 손과 발얼굴 등의 신체 부위, 나아가 지각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뇌에 이상이 없는데도 뇌질환이 생기는가 하면,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각·미각과 관련된 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심지어 소뇌도 대뇌가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통해 사물의 무게를 인식하고, 근육을 조절해 힘을 낸다.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뇌가 ‘연결’된 것이다. 뇌 신경망 연결, 즉 커넥톰(connectome) 연구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뇌 신경망의 생성과 연결로 우리의 인지능력이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뇌에는 1000억 개의 뇌신경세포(뉴런)가 있으며 뉴런의 끝부분에 위치한 시냅스로 화학과 전기자극을 주고받으며 연결된다. 유아기 때 시냅스는 초당 50만 개 이상 생성됐다가 성인이 되면 60% 수준으로 떨어진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무엇이냐에 따라 뉴런 간의 연결이 강화되거나 퇴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결된 뇌 신경망은 성인의 경우 그 수가 100조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1㎜ 커넥톰 연구에 12년 걸려
“죽은 뇌는 의미가 없어요. ‘Seeing is Believing’.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뇌를 탐구하고, 뇌 신경망 연결을 확인하는 게 지금의 숙제죠.”(조장희 석좌교수)
 “뇌 신경망 연구는 이제 태동기예요. 신석기 수준이랄까요? 다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도구들도 아직은 ‘돌도끼’뿐입니다.”(가천대 의대 김영보 교수)
 뇌 연구는 인체 해부와 동물 실험 등을 통해 많은 발전을 해왔다. 1960년대부터 CT(컴퓨터 단층촬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MRI 등 뇌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뇌 연구는 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의 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은 EEG(뇌전도·뇌파 측정), MEG(뇌자도·뇌자기장 측정), fMRI(기능성MRI·뇌의 혈류 변화 측정) 등에 불과하고 해상도도 너무 낮다.
 시냅스는 연결 간격이 불과 2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대략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크기)에 불과하다. 해상도가 높은 광학현미경은 관찰 범위가 좁고, 규격을 나눠 신경망 연결을 파악하더라도 천문학적으로 많은 연결망 계산이 숙제로 남는다. 김 교수는 “뇌 신경망 연구를 여행과 비교하자면, 각 지역에 관광명소나 숙박 정보는 알아도 가는 길이 몇 개 차선인지, 통행량은 얼마나 되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모르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탐구와 과학기술의 진보를 토대로 뇌는 점점 베일을 벗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해상도를 대폭 높인 11.7테슬라 MRI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동해 뇌의 비밀을 밝히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IST) 기능커넥토믹스센터 김진현 박사는 뇌 신경세포가 연결될 때 녹색 형광을 내는 유전자를 뇌 속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형광을 확인하면 뇌 신경망의 연결 유무를 즉시 알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스공대(MIT) 정광훈 박사는 뇌에 ‘하이드로겔’을 투입해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시키면서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뇌 투명화 기술(일명 CLARITY)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뇌 신경망 연구는 흔히 ‘인간지놈프로젝트’처럼 미래 과학기술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분야로 평가받는다. 뇌질환의 치료나 정신건강의 예방, 텔레파시도 꿈은 아니다. 뇌과학연구원 뇌융합부 라종철 박사는 “1㎜에 불과한 예쁜 꼬마선충의 신경망 연결을 알아내는 데 무려 12년이 걸렸다”며 “인간 뇌 신경망 연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므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이다”라고 당부했다.

KIST 김진현 박사팀은 뇌에 녹색형광유전자(GFP)를 투입해 형광빛을 보고 뇌 신경망 연결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위 사진). MIT 정광훈 박사의 뇌 투명화 기술(일명 CLATRITY)을 쥐의 뇌에 적용하자 뇌에 가려졌던 신문의 글자가 보인다.



◆테슬라(Tesla)=자장(자석)의 단위. 1테슬라는 1만 가우스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 자장은 0.2 가우스다.
◆시냅스(Synapse)=신경세포(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연접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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