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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18) 네덜란드 모르겐스테르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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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엄마 정현숙씨와 아들 박준영씨.

1998년 남편이 네덜란드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아이 셋을 데리고 네덜란드 깜뻰(Kampen)에 갔다가 2007년 한국에 돌아왔다. 네덜란드에 처음 갈 때 애들이 어려서 교육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다. 그저 유럽 생활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9년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 큰아들 준영이는 네덜란드 라이든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라 네덜란드에 남았고 둘째는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에 진학했다. 대학 갈 때 두 아이 모두 인기학과보다 원하는 진로에 맞췄다. 막내딸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막내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꿈이 이뤄질 것”이란 네덜란드식 마음가짐으로 사춘기의 절정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 셋 키우며 강의하고 책 쓰며 살 수 있는 것도 네덜란드 엄마들에게 배운 여유와 인내의 양육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깜뻰은 네덜란드에서도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한국에선 대도시 아니면 양질의 교육을 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네덜란드는 다르다. 도심이나 시골이나 학교 교육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담동 초등학교나 시골 깡촌의 초등학교나 교육의 질이 동일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느 학교에 보낼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가까운 곳에 보내면 된다. 네덜란드 공립학교는 이주민의 입학도 어렵지 않다. 핀란드를 포함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자가 아니면 공립학교 입학이 불가능한데, 네덜란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이주한 경우라면 아이를 받아준다. 하지만 교육 목적으로 아이만 조기유학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예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생일을 맞은 학생을 반 전체 아이들이 축하해주는 모습.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있다. ▷사진 크게보기

책가방 없이 다니는 초등학교

네덜란드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놀란 적이 세 번 있었다. 첫번째가 아이들이 책가방 없이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다. 교과서와 공책은 학교 사물함에 모두 넣어두고 빈손으로 다닌다. 중학생이 돼서야 가방을 들고 다닌다.

큰애가 이곳 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만 7살이었다. 영어는 ABC 겨우 쓸 줄 알고, 네덜란드어는 아예 몰랐다. 아이가 들어간 모르겐스테르(Morgen Ster) 초등학교는 국제학교가 아니니 외국인을 위한 네덜란드어 속성 과정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학교측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게 한다”며 “보조교사 한 명이 거의 전담하듯 아이를 돌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여러 번 설명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래 보조교사 역할이라는 게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반복해서 쉽게 설명해 주는 정도 아닌가. 우리 아이처럼 아예 언어를 모르면 돕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예습·복습으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요량이었는데 교과서를 안 가져오니 내가 대혼란에 빠진 거다.

저돌적인 한국 엄마답게 당장 학교에 찾아갔다. “우리 아이는 외국인이고, 네덜란드어를 모른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니, 집에서 예습과 복습을 시켜야 한다. 우리 아이가 교과서를 집에 가져올 수 있게 배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상식적인 요구 아닌가. 하지만 그때 맞닥뜨린 교사의 반응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라는 말풍선이 옆에 떠 있는 것처럼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얘기가 끝난 뒤 차분하게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지금 철자부터 배우고 있다. 당신 아이가 외국인이긴 하지만 사람은 어떤 언어도 6개월만 지나면 마스터할 수 있다. 개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수업에 뒤처질까 걱정을 하는 거냐. 너무 조급하다. 기다려봐라.”

한국에선 10년을 영어 공부해도 외국인만 보면 도망가고 싶어지는데, 6개월 만에 네덜란드어를 익힐 수 있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교과서를 달라고 졸랐고, 그게 안된다면 추천도서 목록이라도 달라고 또 졸랐다. 결국 교사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몇몇 책 제목을 적어주면서 “괜한 걱정 때문에 별 의미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가 알려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아이와 읽고 중요한 단어를 미리 외우게 했다. 이런 예습을 한두 차례 반복하자 아이는 “전보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고 했다. 교사에게 다시 찾아가 추가로 추천도서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이번엔 딱 잘라 거절했다.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지만 당신 아이만 부모가 교육에 개입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건 정말 6개월이 지나자 아이가 네덜란드어를 무리없이 사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면담 시간. 면담이 정해지면 이혼한 부부도 함께 학교를 찾아온다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

두번째로 놀란 점은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다. 부모가 교사의 수업 방식이나 학교 지침에 개입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교과서를 달라고 조르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내가 외국인이라 교사가 이해해줬던 것 같다. 네덜란드 부모가 교사 결정에 항의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월반과 유급 결정권도 교사가 갖고 있는데, 유급 당해도 교사에게 따지는 법이 없다. 교사는 교육 전문가인만큼 교사 판단을 존중하는 문화가 깔려있는 거다.

그렇다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식의 숨막히는 권위주의는 아니다.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서비스하는 곳이고, 교사는 교직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두번씩 교사와 학부모의 ‘10분 면담’ 시간을 마련한다. 면담 시간 결정은 학부모 편의를 철저하게 봐준다. 직장 끝난 뒤 학교를 찾을 수 있게 오후 6시부터 10시 사이에 면담 시간을 정하고, 교장을 포함해 전 학교 교사 가운데 학부모가 만나고 싶은 교사를 3명까지 선택할 수 있다.

네덜란드 초등학교는 2교시가 끝나면 집에서 싸온 간단한 간식을 먹고 30분 동안 밖에 나가 논다.

면담 시간에는 교사가 관찰한 아이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때 아이의 교과서와 공책을 볼 수 있다. 아이가 평소 네덜란드 역사를 어려워했기 때문에 역사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항상 걱정이 됐다. 면담한 역사 교사는 토론 수업 시간에 아이가 어떤 발표를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으며, 반 친구들은 아이의 의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설명해줬다. 또 교과서와 공책을 보여주며 아이가 공부하며 느낀 내용을 정리한 걸 세세하게 짚어가며 알려줬다. 면담을 마치고 나니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이러니 “부모보다 교사가 낫구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 네덜란드 교사는 말을 돌려서 하는 법이 없다. 굉장히 직설적이다. 아이의 학습태도, 자존감, 교우 관계 등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한다. 가정에서 어떤 점을 더 신경 써서 교육해야 하는지, 부모 양육 방식에 문제점은 없는지도 콕콕 짚어준다. 나도 교사 말에 뜨끔할 때가 많았다. 첫째 아이같은 경우는 “물건을 함부로 다룬다”며 “아껴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가정 교육을 해달라”는 충고를 들었다. 둘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자기 과제가 끝나면 주변 아이들을 건드리면서 친구들의 집중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학교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사가 이렇게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언급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가 공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에 믿음직스러웠다.

체스를 두며 수학 개념을 배우는 모습.

놀라운 외국어 교육

마지막으로 놀랐던 건 외국어 교육이다. 네덜란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큰아이가 영어 공부한다면서 얘기하는 걸 들으니, ‘Good Morning, Jane’ 같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한국 엄마인 나로서는 아찔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웬만한 한국 초등 5학년이면 영어 원서를 읽을 나이 아닌가. 급하게 영어 학원을 물색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네덜란드엔 애들이 다니는 외국어 학원이라는 게 없었다. 이웃에게 걱정을 토로했더니 다들 “조금만 지나면 다 잘할 텐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학원도 없고, 과외 교사도 구할 수 없으니 학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뒤 아이가 읽는 영어 책을 보니 대학 수준이었다. 수업은 영국 교사가 영어로만 진행하고 중간중간에 토론을 겸한 구술 시험도 계속 이어졌다. 사교육 도움 없이, 공교육만으로 1년 만에 아이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걸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큰애가 중2 때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로테르담은 좋은 국제학교가 많아 국내 대기업 주재원 가족이 많이 산다. 이곳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는 동년배 한국 아이를 만나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 막힘이 없었다. 그 아이 엄마가 “아이가 화란(네덜란드) 학교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사실 영어뿐만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공교육만으로 거의 전국민이 독일어·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가르친다.

네덜란드에서 배운 가장 큰 덕목은 인내다.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누르고 아이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 말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이가 뭘 빨리 이뤄내는 것보다 차근차근 제대로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네덜란드 엄마들이 정말 대단한 건 아무리 바쁜 워킹맘도 밤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점이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가며 연기하듯 열심히 읽어준다. 오후 8시부터는 TV 켜는 집도 없다. 아이에게만 TV 보지 말고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책을 보거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언뜻 보면 한국 엄마가 교육에 뜨거운 열정을 지닌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양보하면서 아이의 진정한 성장을 기다릴 줄 아는 네덜란드 엄마야말로 진정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닐까.

글·사진=엄마 정현숙(50·프리랜서 작가·서울 강북구 번동)
정리=박형수 기자
감수=네덜란드 교육진흥원

네덜란드 교육 환경

실용 교육 중시
초등생부터 목공은 기본

네덜란드 교육은 ‘실용’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교육은 삶을 재미있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전기 배선이나 목공, 뜨개질 같은 걸 기본으로 배운다. 중학생이 되면 집에서 아이 혼자 고장 난 자전거나 다리 부러진 의자를 고칠 정도다.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실용 정신이 근간에 깔려 있다. 네덜란드는 영토가 좁고 땅이 낮아, 자국민 힘만으로는 부강하게 살기 힘든 여건이다. 주변 나라와 무역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어 실력은 필수다.

그러니 외국어를 결코 암기 위주로 가르치지 않는다.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림과 이야기를 곁들여 재미를 북돋워준다. 가끔 학교에 들르면 교실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걸 들을 수 있다. 흥미를 갖게 한 후 아이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면서 언어를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수업 시간에 계산기나 사전 사용법을 가르치고, 시험 볼 때 계산기와 사전을 쓸 수 있게 한다. 정확하게 계산하는 능력보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험성적 등 성과물만으로 아이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다. 수업 과정에서 어떤 역량을 보였는지를 꼼꼼하게 관찰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학교 과제는 ‘도서관에서 독일 역사에 대한 책을 읽어볼 것’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것’ 등이다. 감상문이나 수필을 적어 내는 게 아니라 그저 읽고 생각해오는 것이라 교사가 검사할 수 없다. 네덜란드 교사는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걸 들으면 얼마나 깊이 사고하는지 다 드러나는데 종이에 적어 내는 게 무슨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다.

네덜란드 학교는 공립이든 사립이든 의무 교육 연령까지는 모두 무료다. 네덜란드의 의무 교육 연령은 만 5~16세까지다. 초등교육은 4~12세까지 9년, 중등교육은 13~18세까지다. 대학 진학할 때 입학시험이 없으나 졸업시험이 매우 까다롭다. 우리가 박사 학위자 대할 때 깍듯이 박사 호칭을 붙이듯, 네덜란드에서는 대학만 졸업해도 학사라는 칭호를 반드시 붙여줄 정도로 권위를 인정한다.

도움말=네덜란드 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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