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의 합창 흐뭇한 "서도 천국"

중앙일보

입력 1979.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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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탐스런 흰 송화인가, 미촌부락을 병풍처럼 둘러친 뒷산 솔밭에는 3백여 마리의 백로·왜가리가 창공을 향해 비상의 나래를 편다.
『쿠르르쿡·쿠르르쿡』. 하늘로 치솟는 이들의 군무는 지칠 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영동에서 무주구천동쪽으로 10㎞쯤 떨어진 충북영동군학산면봉림리 미촌부락.

<벌목하자 흩어져>
30가구 1백20여명의 주민들은 예부터 상서로운 새(서조)로 알려진 백로·왜가리가 이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는 기쁨에 부촌의 꿈과 함께 이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옛날부터 나무가 울창해 많은 새들이 모여 산다하여 이름 붙여 봉림리.
이곳에 백로가 찾아든 것은 지금부터 70여년 전이었다.
17세때 이 마을 성씨가문으로 시집을 와 65년간 백로와 희노애락을 같이했다는 신현규 할머니(82)는 『처음에는 백로 한쌍이 마을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3백년 묵은 아름드리 노송에 깃을 드린 후 해마다 늘었다』고 말한다.
1월 중순쯤 찾아와 10월 초순까지 마을을 온통 흰빛으로 뒤덮던 백로들은 추수와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는 남쪽으로 떠나곤 했다.
신 할머니는 『이들 백로를 벗하며 고생스런 시집살이를 보냈다』고 회상한다.
신 할머니는 특히 69년 봄을 잊을 수 없단다.
송충이 피해로 마을 뒷산 소나무를 거의 베어내자 백로들은 둥지 틀 곳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백로 한상은 신씨 집 뒤편 느티나무에 둥우리를 틀고 끝까지 이 마을을 버리지 않았다.

<온갖 수난 견뎌내>
신씨는 이 한쌍을 위해 먹이를 던져주고 밤낮으로 안부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백로들도 「수난의 달」을 용케 견디며 오늘을 맞은 것이다.
76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에게는 밤새 떼죽음을 당하거나 일가가 풍지박산 되는 악몽의 날이 거듭되곤 했다.
애당초 미촌부락민들은 이들을 부의 상징으로 여겨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보호와 사랑을 쏟았다.
그러나 이웃마을 청소년들이 알을 마구 꺼내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백로가 폐병에 특효약이라며 긴 장대로 마구 때려 잡아가기 일쑤였다.
마을청년들은 야경대까지 조직, 알 도둑 쫓기에 전념했고 경찰에 단속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지난해부터는 『백로가 찾아오지 않으면 동네가 망한다』는 마음으로 백로보호운동을 폈다.
새마을지도자 성백찬씨(42)의 제의로 반상회에서 조를 편성하여 밤낮으로 지켰다. 이러한 정성을 알았음일까 올해에는 음력정초부터 날아들기 시작하여 현재 백로가 2백여 마리로 불어났다.
특히 처음으로 왜가리 80여 마리까지 몰려와 솔밭을 온통 흰누리로 만들었다.

<가을이면 남으로>
1백여개의 새집에는 알을 품고 있거나 부화가 끝나 병아리중 닭 크기로 자란 새끼들이 모이를 달라고 아우성, 산은 백로의 합창으로 가득하다.
주민들은 오는 가을이면 8백여 마리의 대가족으로 불어나 남쪽을 향해 떠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보호운동이 결코 헛되지 않은데 대해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쌍의 부부는 교대로 집을 지키고 먹이를 구하러 갈 때는 큰 날개를 너울거리며 10㎞떨어진 금강상류 영동군양산면가곡리·원당리·봉곡리 앞들까지 나가 달팽이·개구리·물고기 등을 잡아 나른다.
어미 새는 거의 자란 새끼의 나는 연습을 위해 주둥이로 조아대며 엄하게 훈련을 시킨다.
한편으론 집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적이 침범할 땐 날개를 치면서 하늘로 오르고 와글와글하면서 소란을 떤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한가지 흠은 있다. 백로 똥이 너무 독해 둥우리 튼 나무 밑엔 잡초도 자라지 못하고 나무잎도 시들게 돼 결국은 1백여년 이상된 고목들이 말라죽는 것이다. 미촌부락에 백로가 정착한 뒤 고사한 나무들만 해도 수십그루를 헤아린다.
뿐만 아니라 비바람이 부는 여름철에는 분비물과 생선비린내 때문에 온 마을 주민이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다.

<농약으로 떼죽음>
이 마을 성승환씨(54)는 『새들이 요즘은 마땅한 보금자리를 못 찾아 헤맬 때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하고 『새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말라죽은 나무대신 울창한 나무숲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백로·왜가리의 죽음은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논우렁 등을 즐기는 새들이 농약중독으로 떼죽음을 당할 때마다 주민들은 슬퍼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영동군수 권탁상씨는 『논에 들어가는 새들을 쫓는 것만이 이들의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학계전문가들의 보호대책을 바라고있다.
백로·왜가리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보호지로 지정된 곳은 경남통영군도산면도선리산280,강원도양양군현남면포매리 등지.
무엇보다도 미촌리는 백로·왜가리가 함께 집단 서식하고 있다. 특히 이곳 왜가리는 몸길이 50㎝·날개 27㎝·꼬리 9㎝로 머리뒷부분에 깃털이 있고 잿빛에 날개 끝 부분이 까만 것이 특징이다. 주민들은 학계 전문가들이 현지를 답사, 이 부탁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희귀조를 보호해 줄 것을 한결같이 바라고 있다.
글 박상하 기자|사진 양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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