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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1인당 주민수 … 경기 1989명, 강원 673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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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 반장님, 빨리 와보세요.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 같아요!”

 지난 5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 남양주소방서 별내119안전센터 김정준 소방교는 소리가 들려온 거실로 달려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무거운 방화복에 공기호흡기까지 걸친 터라 숨이 턱턱 막혀왔다. 역시나 거실 한가운데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이미 연기를 꽤 많이 마신 듯 했다. 김 소방교는 환자를 들쳐 업고 황급히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이미 정신을 잃은 환자를 구급차에 눕힌 뒤 김 소방교는 입고 있던 방화복과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그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아무도 환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김 소방교가 현장의 유일한 구급대원이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인 김 소방교가 화재 진압에 투입된 건 당장 불을 끌 사람이 부족해서였다. 수락산 자락 조용한 시골 마을 별내면에 인구 9만 명 규모의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출동 업무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직원은 고작 2명 충원된 게 전부다. 그마저 2교대에서 3교대 근무로 바뀌면서 실제 일일 근무 인원은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얼마 전부터 구급대원을 제외한 인력은 다시 2교대 근무로 원상복구됐다. 남양주소방서 소방행정계장 홍진영 소방경은 “신도시가 생기면 최우선적으로 인력 배치를 해야 하지만 당장 소방서 전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즉각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이는 남양주뿐만 아니라 전국 소방 조직이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라고 토로했다.

 인력 부족은 소방 조직의 고질적 애로다. 전국 소방공무원은 모두 3만9519명. 경찰공무원 정원 10만2386명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소방관 1인당 담당하는 국민이 한국은 1300명에 달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각각 912명, 799명이다. 또 근무 방식이 3교대로 전환되면서 업무 부담이 가중됐다. 이에 따라 3교대 근무를 자체적으로 연기하고 2교대 근무를 지속하고 있는 일선 소방서도 많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화재 출동 골든타임 준수율이 지역별로 격차가 크다’는 본지 보도(5월 28일자 14면)에 이어 시·도별 소방 서비스 격차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각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이는 본지가 시·도별 소방 인력 배치 현황을 소방방재청에서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소방관 1인이 담당하는 주민 수는 경기도가 최대로 1989명인 반면, 강원도는 673명으로 최소였다. 약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경찰관 1인당 담당 주민 수는 400~600명 사이로 시·도별 격차가 크지 않다.

특히 신도시 지역은 수요에 맞는 인력 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주 인구와 위험 시설물이 늘어나는 산업단지 지역도 마찬가지다. 광교 신도시와 인근 산업단지 등을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 중인 경기도 수원시가 대표적이다.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수원 관내 소방서는 1곳에 불과하다. 소방관은 370명이다. 3개 경찰서에 1600명의 인력이 근무 중인 경찰과 대조적이다.

 정부가 소방력 보강을 위해 시·도에 예산을 내려보내지만 온전히 소방 조직에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결국 소방관들의 인사권과 예산을 쥐고 있는 건 지자체의 일반직 공무원들”이라며 “소방차 사라고 정부에서 준 돈을 도로 포장하는 데 써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소방 장비 구매 목적으로 한정한 특별 교부세가 내려오면 기존 소방 예산을 그만큼 떼내 유용하기도 한다.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소방관들에게 ‘재정 지원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안전행정부의 논리가 빈약한 이유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물론 지역자원시설세 등 소방력 보강을 위한 전용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년 감사만 5~6차례=소방 조직이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돼 있다 보니 비효율적인 중복 업무도 상당히 많다. 경기소방재난본부 고덕근 예산팀장은 한 해의 절반가량을 감사(監査) 자료를 만드는 데 보낸다. 상급기관의 감사가 끊이지 않아서다. 출동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옥상옥인 셈이다. 고덕근 소방경은 “국정감사 두 번, 경기도의회의 도정감사, 감사원 특별감사, 자체 감사까지 매년 대여섯 번 이상의 감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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