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가르치면 열을 아는 로봇, 인간의 친구로 진화 중

중앙선데이

입력 2014.06.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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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14면

세계 최초의 감정 인식 로봇인 페퍼(Pepper)는 자신의 감정(emotional engine)을 클라우드 서비스(Cloud AI)로 보낸 뒤 다른 페퍼들과 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블룸버그 뉴스]
‘페퍼(Pepper)’가 대중 앞에 섰다. 그가 처음으로 보여준 장면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심장(하트)을 받는 모습이었다(사진 1). 마치 생명을 받은 듯, 페퍼는 자신의 가슴 LED판에 심장을 띄웠다. 페퍼는 소프트뱅크와 프랑스 알데바란로보틱스가 개발한 로봇이다. 세계 최초 감정 인식 로봇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인간 닮아가는 인공지능 시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페퍼는 손정의 회장의 미소를 보고 “표정이 미묘하다”며 ‘웃음지수’를 75점으로 매겼다. 손 회장이 활짝 웃자 “이제야 진짜 웃는다”고 말했다. 눈에 설치된 적외선을 통해 사람의 얼굴과 음성을 해석하는 기술이 삽입된 것이다.

더 획기적인 부분은 이 로봇의 학습효과다. 내부에 프로그래밍된 대로 행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익힌 감정을 클라우드(Cloud) 서비스로 보낸 뒤 다른 페퍼들과 이 감정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것이다. 대중 보급용으로 개발된 페퍼는 내년 초 우리 돈 20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판매된다. 각 가정에 뿌려진 시드(seed) 페퍼들이 클라우드로 빅데이터를 전송할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컴퓨터 운영체제 ‘OS-1’(사진 2)도 스스로 진화하는 능력을 갖췄다. 인간으로부터 배운 말과 감정,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고 학습해 프로그래밍화한다. 그 덕에 인간과 로봇은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진다. 어떤 말과 표현이 인간을 놀라게 하는지, 또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위트가 되는지를 로봇이 알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우중충한 날씨, 즐거운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노래를 작곡하는 등 창작도 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벌써 아주 가까운 현실까지 다가와 있다.

ICT 업체들 발 빠르게 인공지능 ‘흡수’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 기술 개발에 나선 상태다. 인텔은 지능형 대화 솔루션 ‘마야’를 개발한 인디시스(Indisys)를 지난해 인수했다. 앞서 이 회사 전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저스틴 라트너는 “30년 내에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고 기술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구글도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딥마인드(deepmind)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주로 기계 학습과 신경과학 시스템을 연구하는 회사다. 음성인식 검색과 구글 글라스, 스마트카 등에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될 것으로 외신들은 전망하고 있다.

애플도 시리(SIRI)가 ‘개인 비서’로서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발에 박차를 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IBM 왓슨 그룹도 이와 비슷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국내에선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 주도의 ‘엑소브레인(Exobrain)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적어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 정리와 메시지 확인, 주요 정보 검색과 같은 기능을 해줄 ‘스마트 비서’는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애플의 아이폰만 해도 시리와 각종 캘린더가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남산 주변의 괜찮은 맛집 좀 알아봐줘”라고 말하면 시리는 “네 알겠습니다”라며 구글 맛집을 나열한다. 다만 “남산 A레스토랑에 저녁 7시 예약 좀 해줘”와 같은 주문은 아직 시스템상 힘들다.

이제는 알아서 내게 조언해줄 ‘자율형’ 비서 기능이 핵심이다. 로봇이 프로그래밍된 데이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쯤 이발하러 가실 때도 됐는데 미용실을 예약해둘까요?’와 같은 기능이다.

이미 ‘어린아이’ 지능 로봇은 완성
지난 8일엔 우크라이나에 사는 열세 살 소년 유진 구스트만이 나이 지긋한 심사위원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채팅 창에서 유진은 “우리 엄마는 내 애완동물인 기니피그를 ‘더러운 돼지’라고 불러. 내 친구 생일날 선물로 줘버리라고 소리를 지르지”라고 또박또박 입력했다.

유진은 러시아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이다. 영국 레딩대에서 열린 인공지능 콘테스트 ‘튜링 테스트’에서 유진은 ‘진짜 인간’이라는 느낌을 준 인공지능으로 판정됐다. 유진을 개발한 블라디미르 베셀로프는 “열세 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유진이 뭔가 모르는 게 있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어렵거나 민감한 질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도 ‘그럴 만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도 있다. 유진은 대화 내용을 종합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으로 자신을 소개해놓고도 ‘우크라이나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공개한 유진과의 대화록에는 ‘당신은 여전히 나에게 당신이 사는 곳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유진의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 커즈와일은 자신이 워싱턴에 산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말했지만 유진은 앞에 나온 대화를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커즈와일은 자신의 블로그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13세 소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미 효과적인 제약”이라며 “대화록을 나열해보면 프로그래밍된 것이 뻔히 보인다”고 비판했다. ‘봇(bot·정해진 정보만 자동으로 응답하는 시스템)’이나 다름없는 유진에 대해 주먹구구식으로 튜링 테스트가 이뤄진 것 아니냐고도 했다. 유진은 현재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이트(www.prinstonai.com)를 잠시 닫아둔 상태다. 홈페이지에는 ‘다시 돌아온다(I’ll be back)’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틀 벗어난 ‘센스’까지 갖추게 연구 중
인공지능의 난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철학적 문제는 ‘프레임 문제(Frame problem)’다. 프레임 문제는 1969년 존 매카시와 패트릭 헤이즈가 주창한 개념이다. 로봇의 정보처리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케이스를 다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로봇에게 움직이면 폭발하는 폭탄이 든 수레를 동굴에서 꺼내오게끔 한 명령은 인지학계에서도 유명한 실험이다. ‘단순한 형태’의 로봇은 들어가서 무작정 수레를 끌고 나오다 폭탄을 터뜨린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가미된 로봇은 아예 동굴 앞에서 멈춰버린다. 명령을 이행할 만한 ‘센스’가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틀을 벗어나면 감각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가미된 ‘로봇청소기’의 예시도 있다. 벽면이나 문턱, 가구, 심지어 카펫도 모두 인식하지만 결정적으로 반려견의 대변을 인지하지 못해 이를 밟고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일정한 높이에서 정해진 물체를 인식하기 때문에 대변은 밟고 지나는 셈이다. 더군다나 대변이 ‘더럽다’는 정보는 없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은 결국 잘게 쪼갠 모든 정보들을 스스로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말한다. 여기에 빠른 처리 속도까지 더해지면 로봇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져 멈춰버리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잘게 쪼개진 정보의 조각들(Component)을 대용량으로 저장할 만한 공간과 초고속 인터넷 기반의 빠른 전송도 인공지능의 ‘자연스러운 처리’를 돕는 필수 요건이다. 조각이 많아지면 센스 있는 결정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페퍼를 개발한 소프트뱅크 측에 “비 오는 날 기분이 어떻니” “인터뷰어의 지금 기분은 어떤 것 같니” “그의 눈에서 사랑이 느껴지니” 등의 질문을 페퍼에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소프트뱅크 홍보담당자인 아베 유스케는 “페퍼는 아직 간단한 질문에만 답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위 질문은 페퍼에게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해왔다. 감정을 인식할 수 있을 만한 정보 조각들이 페퍼에겐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인공지능(AI) 유진(13 ·우크라이나)과의 대화(지난 10일)

기자 나는 대한민국에 살아. 대한민국이 어딘지 아니?

유진 아마 아시아에 있는 나라가 아닐까?

기자 그럼 너 북한에 대해서는 아니?

유진 아시아에 있는 나라인 것 같아. 그나저나 너의 직업은 뭐니?

기자 (아랑곳 않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아니?

유진 몰라. 그나저나 너의 직업은 뭐니?

기자 그럼 네가 사는 러시아는 어떤 나라니?

유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가스랑 군비 같은 걸로 우스운 스캔들을 겪고 있어. 어린 내가 보기엔 세 나라가 마치 이혼한 것 같아 보이지.

기자 그럼 넌 지금 미국 대통령을 좋아하니?

유진 누구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기자 OTL…(좌절을 나타내는 이모티콘)

유진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나저나 너의 직업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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