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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産 두려운 여성들 ‘난자 냉동’으로 미래 임신 준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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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22면

일러스트 강일구

결혼 4년차 여성 회사원 36세 김모(서울 신길동)씨. “애는 언제 낳을 거냐. 나이를 생각하라”는 주변의 성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지난 설엔 시댁 어른에게 “믿음이 부족해서 임신 못하는 거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임신을 미루는 건 사실 남편 때문이지만 타박을 받는 건 남편이 아니라 그다. 김씨 본인도 엄두가 안 난다. 엄마는 되고 싶지만 지금도 벅찬 회사 일에 아이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그가 최근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게 있다. 난자 냉동이다.

냉동기술로 지키는 가임능력

난자도 늙는다. 당장 임신 계획은 없지만 가임력 저하의 압박을 받는다면 조금이라도 더 젊고 건강한 양질의 난자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이 난자 냉동이다. 난자의 질은 임신 성공률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생식생리학에선 만29세까지를 임신 최적의 난소 상태로 판정한다. 평균적으로 37세까지는 난소가 비교적 건강하게 기능한다. 문제는 만 38세를 넘기면서 난소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데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만 35세가 넘으면 고령 임산부로 분류한다. 만 40세를 넘기면 자연임신 가능성은 약 5%로 급감한다. 국내에서 1985년 최초로 시험관 아기 수술을 성공시킨 문신용(엠여성의원 원장) 전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는 “난자를 생산하는 난소는 만 30세를 기준으로 급격히 노화한다”며 “젊을수록 난자 냉동 성공률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난자 냉동은 호르몬 주사 등으로 배란을 유도해 난자를 여럿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김씨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을 때 해동해 인공 수정을 시도하게 된다. 김씨는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난자를 냉동 보관하고 싶다”며 “조심스럽지만 나중을 대비한 일종의 보험으로 기대하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혼인 김씨의 경우엔 남편과 합의해 난자가 아닌 수정란을 냉동하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넘긴 미혼 여성들에게 난자 냉동은 귀가 솔깃한 대안이다. 최근 문 원장의 병원에도 난자 냉동을 문의하는 30대 이상 미혼 전문직 여성 비율이 늘었다.

현재 난자 냉동을 막는 법적 제재나 규제장치는 없다.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 후 처방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개인의 선택에 따라 본인의 난자를 냉동할 수 있단 얘기다. 가임기 여성은 자궁 양쪽에 하나씩 있는 난소에서 번갈아 난자를 생성한다. 난자 냉동을 원하면 이 과정을 단축시켜 짧은 기간에 많은 난자를 생성해야 한다.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난포(난소 조직에 있는 세포 집합체)를 자극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 매일 일정 시간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터라 의사 처방·지시에 따라 난자 냉동 희망자 본인이 스스로 주사를 놓는다. 이렇게 추출한 여러 개의 난소를 영하 약 200도에 얼려 보관한다.

원래 난자 냉동은 암 환자를 위해 개발된 방법이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방사선으로 인해 난소 기능이 저하되거나 조기 폐경이 우려되는 경우 미래의 임신을 대비해 난자를 추출해 냉동 보존했다. 그러나 최근엔 난소 기능을 보존한다기보다 가임 능력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용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300만원 정도가 든다. 난임(難妊) 부부들이 시도하는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수정 및 착상 과정을 제외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배란을 위한 비용이 약 200만원이며 보존에도 약 100만원이 소요된다. 정확한 비용은 배란이 되는 난자의 숫자나 보존 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난자 냉동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인공 수정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먼저 난자를 냉동하고 해동하는 과정에서 난자 세포의 원형이 보존된다는 보장이 없다. 난자를 포함한 모든 세포의 동결 보존의 성공 여부는 세포의 약 90%를 차지하는 수분 처리에 달려 있다. 수분이 얼면서 팽창하는 데다 동결 과정에서 생긴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세포막을 손상시키면 해동 후 세포는 사멸하기 때문이다. 난자는 직경이 120~140㎛(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일반 세포보다 5만 배 이상 크다. 세포 내 수분도 많아 동결보존 과정이 더 까다롭다.

과거 사용됐던 완만동결법은 성공률이 60% 정도에 그쳤다. 냉동기 센서로 액체질소 공급량과 메탄올 농도를 조절하며 온도를 천천히 낮추다 보니 난자 세포가 어는 과정에서 동해(凍害)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많이 사용되는 유리화 동결법(vitrification)은 고농도의 동결 억제제를 사용해 세포 내 수분을 제거한 후 영하 약 200도의 액체 질소에 바로 담그는 초급속 냉동법이다. 워낙 빠른 속도로 동결하기에 얼음 결정이 형성될 틈이 없어 세포 손상의 우려가 적다. 세포 동결 과정에서 세포질 내 동결억제제와 물 성분이 녹아 있는 유리처럼 변한다는 의미로 유리화 동결법으로 불린다. 제일병원 불임생식내분비과 양광문 교수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유리화 동결법은 평균적으로 약 9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기술 수준도 높은 편이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일정 비용을 감수하면 약 90%까지 성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는다. 우선 과배란 등에 수반되는 과정에서 몸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배란 과정에서 난소는 원래 크기의 약 10배까지 부풀어 오른다. 정상 난소의 경우 길이는 약 3~5㎝며 무게는 약 7~10g에 달한다. 자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자리 잡은 난소의 크기가 10배까지 팽창하면 복부에 무리가 온다. 약 2주간 이런 복부팽만감을 겪은 후엔 난자 채취 과정에서 수면마취도 거쳐야 한다. 과배란 증후군이 생길 경우 내출혈 등 합병증도 생길 수 있다. 문 원장은 “과배란 과정 자체가 자연스러운 몸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라며 “절대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생명윤리 문제도 있다. 난자는 생식의학적으로 생식세포일 뿐 수정란과 같은 배아가 아니다. 양 교수는 “(가톨릭교 신자 비율이 월등히 높은) 이탈리아에선 수정란 냉동은 금지돼 있는 대신 난자 냉동 기술이 발전했고, 상당수가 난자 냉동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난자는 생명으로 인정받지 않다 보니 법적 제재 부분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수정란은 냉동했을 경우 5년 이상 보존할 수 없으나 정자·난자 등 생식세포는 5년이 지나도 보관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적 합의와 함께 법적·제도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양 교수는 “의학적으론 난자만 있다면 가령 70세의 여성도 임신은 할 수 있는 데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 시도되고 있는 대리모 이슈도 있다”고 지적했다.

난자 냉동이라는 옵션을 일부에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임신을 위한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고 난자 냉동을 손쉬운 대안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문 원장은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임신을 원한다면 자연임신만큼의 축복도 없다. 난자 냉동은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며 “아이도 젊고 건강한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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