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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역주행’ 일본의 자업자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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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31면

지난 15일 홍콩 시내의 쇼핑몰 시티워크. 아침부터 200명가량이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월드컵 중계방송을 보고 있었다.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였다. 홍콩이나 중국의 시합이 아닌데도 (홍콩은 월드컵에 별도로 출전하며 중국과 홍콩 모두 지역 예선에서 탈락) 제법 열기를 띠었다. 분위기는 100%에 가까운 일방적 응원이었다. 코트디부아르가 득점 기회를 잡을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대표 공격수 드로그바가 공을 잡고 치고 나가면 박수가 쏟아졌다. 코트디부아르의 골이 터질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치켜들며 기뻐하는 이도 많았다. 결과는 코트디부아르의 2-1 역전승. 홍콩인들은 후련해하는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른 나라끼리의 경기를 열성적으로 응원하며 지켜보는 모습, 진풍경이었다.

코트디부아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얼마나 있었을까. 아이보리코스트(영어권에서의 명칭)라 불러 온 곳과 같은 나라인지 알고 있는 이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상아의 주요 공급지였다는 것 말고는 아프리카 서부의 이 나라와 홍콩 또는 중국 사이에 이렇다 할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일본이 월드컵 16강 진출, 또는 그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게 홍콩이나 중국에 나쁠 건 없다. 비슷한 신체 조건의 아시아인도 충분히 축구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에 배분된 4.5장의 본선 티켓(유럽은 13장)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홍콩인에게 “왜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느냐”고 물어보니 표정이 금세 굳어지며 “일본인이냐”고 반문했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표정을 다시 풀며 “우리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과 동시에 영국이 지배 중인 홍콩도 침략해 45년 패전 때까지 점령했다. 홍콩인들은 군사 시설 건설에 강제로 동원됐다. 홍콩 시내에는 일본군 ‘위안소’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홍콩에서도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한 홍콩 교민은 “이곳의 반일 감정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콩인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일본을 응원했다. 일본 축구의 기술적 발전의 성과를 보고 싶었다. 요즘 지지부진한 한국 축구에 자극제가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홍콩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권에서는 ‘신변 안전’을 위해 이런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위안부 강제동원 인정) 무력화 시도로 이는 더욱 위험한 일이 됐다. 축구를 축구로 볼 수 없는 이웃나라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은 오늘도 역주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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