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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중세를 복원하라 … 프라하 성당 살인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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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체코 프라하의 에마우제 성당(왼쪽), 오른쪽은 뾰족한 첨탑 등 고딕 건축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성 수태고지 성당이다. [사진 열린책들]

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열린책들
496쪽, 1만3800원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끈 뒤 한동안 여행객 사이에는 ‘다빈치 코드’ 따라잡기가 유행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한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생 쉴피스 성당, 영국 런던과 에딘버러의 로슬린 채플 등을 방문하며 독자들은 역사적 사실과 소설 속 허구를 넘나드는 지적 체험의 쾌감을 누렸다.

 ‘체코의 움베르토 에코’로 불리는 밀로시 우르반(47)의 고딕 스릴러 『일곱 성당 이야기』는 전세계 관광객을 사로잡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새로운 여행 루트를 선사한다.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프라하에 실제로 존재하는 6개의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지적 퍼즐 맞추기다. 이 소설이 중세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장미의 이름』이나 유럽의 비밀 종교를 다룬 『푸코의 진자』 등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에 비견되는 이유다.

 옛 건물에 손을 대면 과거의 사건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전직 경찰 크베토슬파프(소설 속에서는 K라 불린다)가 고딕 성당의 종루에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로 종을 치는 한 남자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라하 곳곳에서 잔인하고 지능적인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경찰과 귀족 출신 사업가 그뮌드는 주인공 K에게 도움과 협조를 요청한다.

『일곱 성당 이야기』의 작가 밀로시 우르반

 사건을 파헤치며 주인공 K는 살인 사건이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프라하에 현존하는 성당은 6개. 문제는 나머지 한 개의 성당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14세기 카렐 4세가 세운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과 종교적 이상에 심취했던 K는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과 역사적 지식을 앞세워 사건의 본질과 진실에 점차 다가선다.

 고딕 스릴러의 전형적인 문법대로 소설 속 모든 살인과 범죄의 중심에는 비밀 결사 조직이 있다. 비밀 결사의 존재를 알게 된 K는 모든 사건의 밑바탕에 자본주의에 찌든 프라하를 과거의 순수한 중세 도시로 재건하려는 근본주의자 그뮌드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종교적 순수함과 엄숙함으로 충만한 14세기 중세를,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되살리려는 과거에 대한 비틀린 향수가 폭력적이며 잔인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오직 중세의 건축만이 위대하네. 고딕 건축만이 도덕적이야. 인간의 도덕성과 건축의 도덕성은 그 시대에 함께 묶여 있는 거야. 지상의 삶을 보존하려면 우리는 절대로 다시는 현세의 세상에서 건물이라고 하는 저 야만스러운 상자들이 우리의 성스러운 장소를 가리도록 해서는 안 돼”라는 그뮌드의 말에는 소름이 끼친다.

 고딕 양식의 성당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복고를 향한 무모한 시도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런 일성은 과거의 흔적을 너무나 손쉽게 부수고 잊어버리는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목소리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창의력에 대해 우리는 충격적일 정도로 존경심이 없었으며, 이제 파괴의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한 끝에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푸른 벌판을 밀어 버리고 콘크리트로 덮는 것을 좋아한다. 간단하고 빠르고 기능적으로. 이것이 현대의 주문이다. 과거를 죽이려는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창조한 것을 파괴하려는 본능은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는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체코의 종교 개혁가 얀 후스(1369~1415)나 체코의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매끄럽지 않은 번역도 몰입도를 다소 떨어뜨려 아쉬웠다.

하현옥 기자

공포와 신비의 고딕 스릴러

『일곱 성당 이야기』는 ‘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 혹은 ‘체코 문학의 흑기사’로 불리는 밀로시 우르반의 대표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체코 문학에 고딕 스릴러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딕 스릴러는 중세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 양식의 하나로 잔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신비한 느낌과 공포감을 유발하는 문학장르다. 일반적으로 비밀 통로와 지하감옥 등이 설치된 중세의 성(城)이나 수도원·교회, 저택 등을 배경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며 은밀한 조력자 등이 등장한다.

때로는 로맨스와 공포 소설적 요소가 결합되기도 한다. 영국 작가 호레이시 월폴이 1764년 출간한 『오트란토의 성』이 고딕 소설의 효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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