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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세월호 위로하자" "한 발 더 뛰자" … 원팀으로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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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0일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 중 치른 가나와 최종 평가전에서 0-4로 완패했다. 지난달 28일 튀니지와의 평가전(0-1 패)에 이은 연패에 팀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았다. 일주일 뒤 대표팀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18일 러시아와의 브라질 월드컵 본선 H조 1차전에서 안정감 있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1-1 무승부를 거뒀다.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비결은 역시나 홍명보팀 의 ‘원 팀’ 정신에 있었다. ‘원 팀(One team), 원 스피릿(One spirit), 원 골(One goal)’은 홍명보 감독이 지난해 6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표팀 슬로건이다.

 ◆구자철 찾아가 상담받은 한국영=러시아전의 숨은 MVP 한국영(24·가시와)은 경기를 앞두고 상당히 초조해했다. 2년 전 런던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해 큰 대회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영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장 구자철(25·마인츠)을 찾아갔다.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조언을 구했다. 구자철은 “감독님과 선수들이 널 모두 신뢰한다. 사소한 실수는 신경 쓰지 마라. 뒤에 우리가 있다”며 어깨를 두드려 줬다. 자신감을 회복한 ‘태클왕’ 한국영은 실전에서 능력을 100% 이상 발휘했다.


 ◆"미안해, 미안해”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러시아전 도중 다리에 쥐가 나 후반 27분 교체 아웃됐다. 교체 직후 한국은 케르자코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홍정호는 벤치로 물러난 직후 “미안해, 미안해”란 말을 반복했다. 홍정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홍명보 감독처럼 발등 부상을 안고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의지는 남달랐지만 훈련량이 부족한 탓에 체력에 문제점이 드러나자 동료들에게 솔직히 사과했다. 하프타임 도중 라커룸에서 “무조건 이기자. 우리가 한 발 더 뛰어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운 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료끼리 박치기를 하는 등 자중지란 끝에 크로아티아에 0-4로 참패한 카메룬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슬픔에 빠진 국민 위해”=구자철은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뒤 훈련 이외의 시간에 꾸준히 생중계로 뉴스를 시청하며 자신의 일처럼 걱정했다. 구자철은 러시아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세월호로 인해 슬픔에 빠진 국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뛰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골 세리머니 논의는 없었다. 세리머니를 연구할 시간에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자는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홍명보의 짧고 굵은 한마디=홍 감독은 2년 전 영국 단일팀과의 런던 올림픽 8강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난 항상 마음속에 칼을 품고 다닌다. 너희들을 해치는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당시 멤버들이 이번 월드컵 팀 주축이다. 홍 감독은 이번엔 입을 다물었다. 러시아전을 앞두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굵고 짧은 한마디만 남겼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대로 선수들은 팀으로 뭉쳤고 홍 감독의 전략을 그라운드에 구현해 냈다.

이구아수=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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