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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용평가사들의 범죄 행위는 신용사회의 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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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모두 신용 평가를 부실하게 해 온 것으로 드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무더기로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이들은 평가대상인 기업들로부터 평가 업무를 따오는 대가로 신용등급을 올려주거나 신용등급 강등 시기를 늦추는 등 이른바 ‘등급장사’를 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수수료 몇 푼에 눈이 어두워 신용평가사의 존재 이유인 신용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다.

 신용등급은 해당 기업의 신용도를 보여주는 척도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과 주식투자의 근거로 활용되며, 거래 상대방이 거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중요한 정보다. 자본시장의 작동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이자,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신용시스템의 근간인 셈이다. 따라서 신용등급을 부실하게 매기거나 고의로 조작하는 행위는 자본시장의 작동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질서를 허무는 중대한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적발된 사안의 심각성과 죄질을 감안해 기관 중징계뿐만 아니라 형사고발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부실평가와 뒷북평가를 일삼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동양그룹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시기를 놓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손실을 입혔고, 회사채 시장과 CP 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다. 국제적으로도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에 대한 엉터리 신용 평가로 인한 줄소송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 상실이 급기야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부를 수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의 부실평가 관행이 드러난 이상 엄중한 문책과 형사처벌과 함께 부실평가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 조치를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징계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순환평가제나 의무지정제 등 ‘등급장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고, 평가기준과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 같은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가사 스스로가 신용질서 유지라는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