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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작명이 정책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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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시윤
성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곧 있으면 다양한 이름의 정책들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나온다. 6·4 동시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7월 1일 일제히 취임한다.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도 ‘국가 개조’를 위해 새 정책들을 내놓을 게다.

 정책은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아 보이도록, 그리고 효과가 커 보이게 하는 게 작명(作名)의 원칙이다. 이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이미 경험한 사례가 ‘무상급식’이다. 탐탁지 않아 하는 쪽에선 ‘세금급식’이라 부른다. 전자는 수혜집단, 후자는 비용부담집단의 관점을 반영한다. 빈곤층도, 부유층도 아닌 국민 대다수는 두 집단의 교집합에 속해 있다.

 정책의 작명권(作名權)은 1차적으론 정책 당국에 있다. 정책 작명가들은 이름에 따라 정책 지지와 성과가 갈린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작명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본다. 이름을 잘못 짓는 바람에 정책 혼선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기초 연금’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의 관련 홈페이지에선 기초 연금을 ‘어려운 노후를 보내시는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기 위한 제도’라 설명한다. 애초에 ‘어르신 노후 지원금’ 정도로 이름을 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수혜집단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기초’를 넣고, 지원금을 받는 이의 기도 살려주려고 ‘연금’을 넣었다. 이 바람에 고령자 아닌 국민연금 가입자 대다수를 혼란스럽게 하고 원성을 샀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도 비슷하다. ‘진로탐색 집중 학기’ 정도로 해도 학생·학부모·교사들은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을 것 같다. 그런데 거창하게 ‘자유’를 넣으면서 원래 취지보다 정책 내용이 커져 버렸다. 결국 자유학기제에 대한 교육부 설명도 장황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 고사 등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수업 운영을 토론·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개선하고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다. 그럼 나머지 학기들은 이런 활동을 하지 않는 ‘부자유학기’여야 하나. 교육 당국은 2016년부터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한다. 일부에선 ‘자유학기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어설픈 이름에 의욕이 앞서면서 자초한 비판이다.

 이름에 정책의 실체를 정확히 담아야 한다. 그래야 정책 토론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일찍이 공자도 강조한 바다.

 제자인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공자의 답변은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고, 그럼 정사(政事)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