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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로 채운 화면 … 야하기보다 맹랑하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님포매니악’에서 10~20대 시절의 조를 연기한 스테이시 마틴.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58)는 만드는 영화마다 파격과 도발의 연속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뮤지컬영화 ‘어둠 속의 댄서’(2000)에선 벽 두드리는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은 음향을 음악처럼 활용했다. ‘도그빌’(2003)은 마치 텅 빈 무대 같은 공간을 외딴 마을로 설정해 낯선 여인에게 가해지는 마을사람들의 잔혹한 행동을 그려냈다. ‘안티크라이스트’(2009)는 과감한 노출을 곁들여 제목 그대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성서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삐딱하게 해석했다.

 도발과 파격은 스크린 밖에서도 벌어졌다. 그는 스스로 지키지는 않았지만, 1995년 ‘도그마95’라는 이름의 선언을 통해 최소한의 기술로 사실적인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지구 종말의 공포를 감성적으로 그려낸 ‘멜랑콜리아’로 2011년 칸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는 “히틀러는 좋은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많이 이해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해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성(性)를 향한다. ‘님포매니악 볼륨1’(원제 Nymphomaniac: Vol. I, 6월 18일 개봉, 이하 ‘볼륨1’)이다. 한 여인의 평생에 걸친 성적 경험담을 그린 2부작 중 첫 편이다. 제목의 ‘님포매니악’은 색정증(色情症), 즉 지나친 성욕을 지닌 여성을 가리킨다. 예상대로 상영시간 내내 스크린에 남녀의 성기와 온갖 섹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놀라운 건 이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시선이다. 관객의 관음증적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성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통념을 조롱하며 섹스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파격이다.

한 여성의 성적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 ‘님포매니악’의 1부. [사진 무비꼴라쥬]

 이야기는 거리에 쓰러져 있는 여성 조(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중년 남성 셀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집에 데려오며 시작된다. 그에게 조는 두 살 때 자신의 성기를 ‘발견’한 것부터 시작해 친구와 열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지 경쟁을 벌인 이야기, 처음 사랑을 느낀 남자 제롬(샤이아 라보프)과의 관계 등을 들려준다. 그 때마다 셀리그먼은 평생 책으로 습득한 방대한 지식에 바탕한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는다. 조의 성적 탐험을 플라이 낚시에 빗대기도 하고, 피보나치 수열의 원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그런 해석에 조는 대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치 영화 전체가 수학·생물학·의학 등을 일부러 끌어들여 성에 대한 관습적인 해석을 비웃고 해체하는 것 같다. 그 태도가 아주 도발적이고 맹랑하다.

 섹스는 조에게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죽음의 반대말이다. 조는 삶에 수시로 들이닥치는 고독과 죽음의 공포를 떨치기 위해 섹스를 한다. 병상의 아버지(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병원 직원들과 닥치는 대로 섹스를 하는 식이다. 삶의 곳곳에 뚫린 공허한 구멍을 모두 메울 때까지 조는 섹스에 굶주릴 수밖에 없다. 회고담을 위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현재의 조는 프랑스의 이름난 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경험담에 등장하는 과거의 조는 20대 신예 스테이시 마틴이 연기했다. 2편은 ‘님포매니악 볼륨2’(7월 3일 개봉, 이하 ‘볼륨2’)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조는 임신과 출산을 겪고 가학·피학 등 더 파격적인 성적 탐험을 향해 나아간다. 추가 영상을 더한 감독판도 있다. ‘볼륨1’에 30분, ‘볼륨2’에 1시간 분량의 영상이 더해진다. 두 편의 감독판 모두 국내에선 오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장성란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전찬일 영화평론가): 인간 존재에 대한 기념비적 문제작. 특히 실전을 방불케 하는 배우들의 열연에 갈채를!

★★★★(김봉석 영화평론가): 대식가가 있듯 많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유쾌하게 ‘섹스’의 다양한 얼굴을 비추며 관객을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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