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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상권] (8) 강남역 언덕길…3년 전엔 주택가, 지금은 소문난 카페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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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에는 개성있는 카페와 세계 각국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 많다. 1 카페알베르는 언덕길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카페다. 1·2층이 각각 990㎡(300평)로 규모가 크다. 2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스페인 요리 전문점 까사 에스파냐. 3 멕시코 레스토랑 훌리오. 4 언덕길에서 이어진 골목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동네가 ‘핫’하다는 얘기다.

강남역은 유행을 좇는 사람과 이들을 겨냥한 브랜드가 뒤엉켜 늘 새롭고 왁자지껄하고, 그리고 복잡하다. 하지만 두세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르다. 그중에서도 강남역 CGV에서 국기원 쪽으로 올라가는 뒷쪽 골목길, 그러니까 ‘언덕길’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주택을 개조한 개성 넘치는 식당, 3층짜리 낮은 건물을 통채로 사용하는 넓직한 카페 등에선 강남역 대로의 혼잡한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언덕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김현지(24)씨는 “강남역 대로엔 대부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라 개성이 없는 건 기본인 데다 좌석 간격이 좁아 여러 소리가 섞여 늘 정신없다”며 “조금만 걸어 올라오면 이렇게 여유로운 카페가 있는 걸 왜 진작 몰랐는지 아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현장과 스튜디오를 연결하는 JTBC ‘마녀사냥’ 이원생방송에 등장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CGV강남에서 국기원 방향으로 올라가는 ‘강남역 언덕길’은 3층 이하의 낮은 건물과 주택이 들어서 있어 인근 강남대로와 달리 여유롭고 한적하다.

카페·레스토랑 즐비한 언덕길

언덕길의 시작은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 주변엔 한적한 주택가에 간간이 오래된 상점이나 사주 카페 몇개가 있을 뿐이었다. 대형상권 강남역과 가깝지만 경사진 언덕이라는 지리적 단점 때문에 비어있는 가게도 여럿이었다. 이랬던 곳이 최근 2~3년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단어가 아니고는 달리 적합한 말을 찾기 어려울만큼 달라졌다.

‘카페 알베르’ 등 언덕길에서만 카페·샌드위치 전문점 등 점포 6개를 운영하는 신현성 대표는 2009년 카페 에스프레소퍼블릭(현재 지인이 운영)을 열었다. 당시 에스프레소퍼블릭 자리엔 작은 세탁소가 있었다. 같은 건물 2·3층은 비어 있었다. 신 대표는 “낙후한 상권이었지만 길이 반듯하고 지저분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며 “게다가 강남역이 가까워 조금만 가꾸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낙후한 상권이라고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스스로 상권을 가꿔나가기로 한 거다. 이후 1년에 카페 한두 개를 새로 열며 이 길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렇게 그가 낸 카페가 모두 8개(2곳은 매각)다.

언덕길엔 카페 외에도 홍대 등에서 인기를 끌던 서가앤쿡·미즈컨테이너 등 맛집도 적지 않다. 특히 뉴욕 정통 피자가게 브릭오븐(Brick Oven)이나 스페인 음식점 까사에스파냐, 멕시코 요리전문점 훌리오 등은 현지 맛을 제대로 낸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20~30대를 끌어모으고 있다. 유진호 브릭오븐 사장은 “초기엔 뉴욕 현지 맛을 찾아 온 외국인이나 유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소문 듣고 찾아오는 한국인이 늘고있다”고 말했다.

220여m에 불과한 짧은 골목길에 있는 건물 30여 개 대부분이 카페·레스토랑으로 채워지면서 2년여 전부터 ‘강남역 언덕길’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사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기보다 인근 상인들이 모여 만들었다. 신 대표는 “상권이 잘 굴러가려면 입에 딱 붙는 이름이어야 하는데 언덕길이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워 이걸로 정했다”며 “2년 전부터 가게 주인들이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이름을 알렸다”고 했다.

언덕길의 가장 큰 장점은 여유로움이다. 늘 북적이는 대로변과 달리 한적하고 조용하다. 직장인 한미선(32)씨는 “원래 사람 많은 곳보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데다 독특한 분위기와 이색적인 메뉴의 레스토랑·카페가 곳곳에 숨어있어 마치 보물찾기 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밤에는 대로변과 분위기가 더욱 달라진다. 언덕길엔 술집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라이프스타일 앱인 스타일쉐어가 카페알베르에서 연 플리마켓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스마트폰 세대가 만든 맛집 중심 3세대 상권

강남역이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는 많은 유동 인구가 한몫한다. 이곳에서 약속잡고 만나는 사람이 많다보니 술집이나 대형 식음업장이 많았다. 2006년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생기면서 강남역 중심의 비교적 좁은 상권이 차츰 교보타워사거리까지 확대했다. 특히 2009년 9호선 신논현역 개통은 주변 상권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삼동에서 20년간 식당을 한 이남수씨는 “강남역 대로를 따라 5년 단위로 한 블록씩 북쪽 방향으로 상권이 확장돼왔다”며 “9호선 개통으로 젊은이들이 신논현역 쪽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큰 도로 뿐 아니라 안쪽 이면 도로쪽까지 상가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언덕길 역시 이 혜택을 입은 셈이다.

스마트폰도 언덕길 발전의 공로자다. 맛집은 골목 안에 숨어있어도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 손님을 끌어모으기 마련인데, 스마트폰 대중화로 사람들은 덜 알려진 상권 내 맛집까지도 점점 더 많이 찾는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맛집을 찾을 뿐 아니라 음식 사진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공유한다. 이걸 본 사람이 또 그 식당을 찾고, 이런 식의 선순환이 상권을 키우는 거다.

업계에서는 언덕길을 3세대 상권으로 정의한다. 명동·강남 등 교통 요충지 중심으로 발달한 게 1세대,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대형 의류매장 중심이 2세대 상권이다. 요즘 뜨는 3세대 상권은 맛집 중심이다. 언덕길 외에 성북동 성북동길,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 터 일대인 한남동 뒷길,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의 백현동 카페거리 등이 3세대 상권으로 분류된다.

글로벌 부동산 종합서비스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김성순 이사는 “전에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 음식점이 인기였지만 요즘엔 다들 개성이 강한 데다 SNS에 올릴만한 개성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선호한다”며 “이런 영향 덕분에 3세대의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언덕길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카페가 아니라 오직 언덕길에만 있는 개성 있는 곳이 많다. 장재현 부동산뱅크 콘텐트비즈니스 팀장은 “신논현역 개통과 삼성 입주 후 대로변보다 보증금이 싼 이면 도로까지 상권이 확대했다”며 “처음부터 임대료 싼 안쪽 골목에서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으로 가게를 낸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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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보완하는 언덕길·강남역

언덕길은 분명 3세대 상권이지만 다른 3세대 상권과는 조금 다르다. 2호선 강남역 뿐 아니라 9호선 신논현역까지 더해진 더블 역세권으로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한남동 뒷길만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하다. 백현동 카페거리나 성북동길 역시 마찬가지다.

언덕길은 이런 지역적 특성을 제대로 활용해 강남역 상권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다원플레이스 정수철 대표는 “상권은 판매시설·식음·엔터테인먼트·서비스 등이 고루 갖춰져야 확장 가능한데 강남역과 언덕길은 서로를 보완하고 있어 상권 확장에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강남역 등 전통 상권은 이미 임대료가 오를대로 올라 대형 의류매장 등 자본이 풍부한 업종이 주로 들어선다. 작은 맛집 등이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는 이유다. 강남역만 따로 떼서 보면 다른 전통 상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골목길이 이를 보완한다. 대로변에선 쇼핑하고, 골목길에선 차 마시고 밥 먹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식이다.

판매시설과 식음시설이 고루 있어야 상권이 발전할 수 있는 건 하루종일 손님을 끌어모으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예컨대 판매시설은 낮과 초저녁에, 식음시설은 밤에 손님이 많다. 판매시설이 적은 상권이라면 주간 유동 인구가 적고, 식음시설이 적은 상권에선 야간 유동객이 적다는 얘기다. 낮과 밤 모두 손님으로 북적이려면 어느 정도 판매시설이 필요하다. 정 대표는 “홍대·대학로는 판매시설이 약하고 교대역·선릉역 등 또 다른 강남역 상권은 식음시설 위주라 상권이 쉽게 확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뷰티·패션 업체도 주목

언덕길이 뜨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뷰티·패션 업체도 언덕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가로수길이나 홍대 주변에서 열던 팝업스토어나 각종 고객 대상 클래스 등을 점점 이곳으로 옮기고 있다. 유한양행의 바이오오일은 올해 4번의 뷰티클래스 중 절반을 언덕길의 한 카페에서 열었다. 김은희 바이오오일 담당 부장은 “가로수길은 공간 대여료가 비싸지만 언덕길은 강남역에서 가까워 찾기도 쉽고 대여료가 가로수길의 3분의 1정도로 저렴해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벌어지는 벼룩시장(플리마켓) 등은 골목길을 더 트렌디하게 만든다. 지난달 18일 카페 알베르 지하 1층 990㎡(300평) 규모 전시장에서 가입자 100만명의 스타일 관련 앱인 스타일쉐어의 플리마켓이 열렸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 들어가지 못하고 늘어선 줄이 국기원까지 1km가까이 이어졌다.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는 “언덕길은 강남역에서 이어지는 유동 인구가 많은 데다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아 이곳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말했다.

언덕길 미래는 어떨까. 대체적으로 긍정적 시각이 많다. 19년째 언덕길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해왔다는 한 부동산 관계자는 “언덕길은 강남역 상권 중에서도 맛집이라는 확실한 특징이 있어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건물이 하나 새로 지어지면 부동산중개업소 10곳 이상이 달려 드는데, 이건 다들 이 상권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가로수길처럼 임대료가 크게 올라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이 장악하면 지금의 특색을 잃을 것이라는 염려다. 실제 언덕길이 주목받으면서 최근 2년새 임대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

콘텐트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 대표는 “맛집 위주 상권은 장점인 동시에 한계가 될 수 있다”며 “언덕길이 대학로나 홍대 같은 상권으로 발전하려면 문화시설 등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우리동네 스타 가게
스페인·멕시코 … 언덕길서 맛보는 세계 요리

강남역 언덕길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공간이다. 독특한 메뉴를 파는 부티크 레스토랑은 대부분 외국 현지 맛을 제대로 재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언덕길은 카페 거리로 불릴 정도로 카페가 하이라이트다. 이중 언덕길 입구에 있는 브릴리언트 로스팅랩은 직접 원두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다. 테이블이 1개 밖에 없는 비좁은 원테이블 카페라 지나치기 쉽지만 커피맛 좀 안다는 커피 매니어들 사이에선 핫플레이스로 소문났다. 테이블이 한 개 밖에 없어 자리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운좋게 테이블에 앉으면 바리스타와 커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원두를 사면 무료로 커피를 한 잔 준다.

 지난해 문을 연 카페 알베르는 요즘 가장 뜨는 공간이다. CF와 각종 방송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다. 1·2층이 각각 990㎡(300평) 규모로 넓고 좌석 간격이 여유로워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2층의 넓은 테라스는 어디 교외에라도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명당이다.

 카페가 좀더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레스토랑 수준도 결코 뒤지진 않는다. 토핑이 가득한 ‘흔한’ 피자 대신 담백한 뉴욕 전통 피자를 파는 브릭오븐은 강남역 대표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주말 저녁엔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까사 에스파냐는 브릭오븐 보다 먼저 언덕길에 자리잡았다. 스페인 집이라는 뜻의 까사에스파냐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스페인 레스토랑이다. 타파스·빠에야 등 스페인 요리를 선보이는데 맛 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과 미술을 전공한 주인 부부의 감각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도 사람을 끄는 요소다.

 멕시코 요리 전문점 훌리오도 손님 줄 세우는 맛집이다. 케사디야·부리토·화히타 등의 메뉴를 1만원 이하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 입구에 오픈 키친이 있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송정·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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