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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봉용접 기술이 만든 부엌 '냉동식품'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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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크리스 스틴스트럽

1901년 미국 뉴욕주 스키넥터디의 GE사 공장 앞. 혹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몰려든 군중 속에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표정의 청년 한 명이 끼어있었다. 크리스 스틴스트럽(사진). 7년 전 덴마크에서 이민 온 스물여덟 살 기계공이었다. 그는 주물공으로 출발해 야간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부엌과는 도통 인연이 없어 보이는 외모의 그가 25년 뒤 미국 부엌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거란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27년 GE가 출시한 ‘모니터 톱’ 냉장고.

 가정용 냉장고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냉장박스는 부엌, 냉각기는 지하실이나 집 밖에 두고 배관을 길게 연결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1920년대 초반까지 고작 10만여 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당시 포드의 모델 T 자동차 값이 380달러 정도였는데 가정용 냉장고 값은 그 두세 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도 있었다. 배관 이음매가 엉성해 냉매인 이산화황가스가 새는 사고가 잦았다.

 이런 냉장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 1927년 GE가 출시한 ‘모니터 톱(Monitor Top)’이었다. 이 냉장고는 냉장박스 위에 모니터형 냉각기를 얹은 일체형이었다. 배관을 연결할 필요 없이 전기 플러그만 끼우면 바로 작동했다. 당시 GE의 광고 카피는 “기름을 치지 않아도 평생 작동한다”였다.

 이 ‘모니터 톱’ 개발을 주도한 사람이 스틴스트럽이다. 그는 1920년대 새로운 구리 밀봉용접(brazing) 방법을 고안했다. 얇은 금속을 싸고 확실하게 밀봉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 덕분에 냉장고 냉각효율이 좋은 가는 파이프를 쓸 수 있게 됐고 냉매누출 사고도 막을 수 있었다. 냉각효율이 좋아지자 작은 모터로도 구동이 가능해졌고, 작은 모터를 통째로 냉매 용기 안에 넣어 과열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스틴스트럽의 팀이 이렇게 완성한 ‘모니터 톱’은 작고 조용하며 고장이 없었다. 거기다 가격도 저렴했다. 가장 싼 모델의 공장도가격이 205달러였다. 매달 전기요금에 10~20달러만 더 내면 할부로 살 수 있었다. ‘모니터 톱’은 대공황기에도 연 100만 대 이상씩 팔려나갔다. 생산이 중지된 1937년까지 미국 가정용 냉장고 보급 대수는 총 1100만 대가 넘었다.

 가정용 냉장고의 보급은 ‘부엌 혁명’을 이끌었다. 우유를 시원하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되자 함께 먹는 시리얼 판매가 급증했다. 가정용 냉동식품 산업도 발전했다. 급속냉동 기술의 개발자 클래런스 버즈아이는 1924년 파산했지만, ‘모니터 톱’이 보급된 1930년에는 가정용 냉동식품 소매로 큰 성공을 거뒀다. 냉동식품의 인기는 70년대 가정용 전자레인지 보급의 원동력이 됐다.

 미국의 기술사학자 루스 카원은 이 같은 변화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비판했다.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주부의 가사노동 총량을 줄이지 않고 단지 노동 형태만 바꿨다”는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 덕에 인류는 식중독과 전염병 걱정을 덜게 됐다. 주부들은 밤새 쥐가 파먹은 음식을 버리며 속을 끓이지 않게 됐다. 밥 먹고 돌아서자마자 금세 또 출출해지는 아이들은 원할 때면 언제든 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스틴스트럽의 작은 기술이 불러온 큰 변화다. 올해는 더위가 부쩍 일찍 찾아왔다. 새삼 냉장고가 고마워지는 요즘이다.

이관수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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