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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부르면 '주민택시' 달려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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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산시 반송1동 ‘장산길 행복마을’ 사랑방. 공구를 갖춰놓고 주민들이 무료로 빌려 쓰도록 하고 있다. 안 입는 옷과 신발 등도 갖다 놓아 아무나 가져가게 한다. [송봉근 기자]

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 ‘월포행복마을’에는 ‘행복콜’이라는 마을공동 승용차가 있다. 자가용을 가진 주민 6명이 노약자와 학생들을 무료로 태워주는 것이다. 교통편이 필요할 때 마을 통장에게 연락하면 통장이 자가용 보유자에게 전화해 시간 있는 사람을 찾아서는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행복콜은 살기 좋은 마을을 가꾸기 위한 부산시의 ‘행복마을 사업’ 하나로 지난해 9월 시작됐다. 경전철이나 버스를 타려면 20분 이상 걸어나가야 할 만큼 불편한 대중교통 환경을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해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요즘 하루 10여 명이 이용한다. 아직까지 승용차 보유자들이 자원봉사해 무료 탑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부산시의 행복마을 사업 지원금을 활용해 실비 정도를 지급하는 것을 월포행복마을 측이 검토하고 있다.

 부산의 ‘행복마을 사업’이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행복마을 사업이란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참여와 지원을 얻어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것이다. 2010년 아미동 행복마을 등 4곳을 시작으로 현재 38곳이 운영되고 있다. 해운대구 반송1동 ‘장산길 행복마을’도 그중 하나다. 이곳 마을 사랑방엔 드릴· 그라인더 등 각종 공구가 비치돼 있다.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사다 놓은 것이다.

 이 마을은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가 많다. 이들은 집수리도 대부분 스스로 한다. 이런 점에 착안해 공구를 빌려 갈 수 있도록 구비해 놓았다. 장산길 행복마을은 일용직 건설 근로자인 주민들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마련해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현장 근로가 없는 날 마을의 집수리나 전기 작업 등을 해주는 것이다. 일부는 목공교실 강사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서구 초장동 ‘한마음 행복마을’에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이주여성이 40여 명 있다. 그래서 이주여성만으로 이뤄진 ‘차차차’ 댄스 공연팀을 만들었다. 어버이날이나 마을축제 때면 공연을 펼친다. 이주여성들이 마을 어린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들이 이처럼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일선에 나서면서 주민들과의 서먹함이 사라졌다고 한다.

 동래구 낙민동 ‘기찻길옆 행복마을’은 버려진 철도 관사를 이용해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철도 관사를 강의실로 리모델링한 뒤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핸드프린팅 같은 강좌를 열고 있다.

 북구 ‘공창 행복마을’ 주민들은 전문가 지원을 받아 스마트폰으로 단편영화를 찍고 있다. 주민이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로 참여한다. 영화 소재 자체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다. ‘공창’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공물을 모으던 창고가 있었다는 점에서 유래했다. 행복마을 디자이너(총괄기획)인 한영숙(39) 사이트 플래닝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주민들이 그저 예산이 나오기만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했으나 이제는 마음을 합쳐 마을공동체 정신을 살려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행복마을=부산시가 낙후된 마을에 사회·경제·문화적인 활력을 주기 위해 2010년 시작한 마을재생사업이다. 마을마다 활동가들을 보내 특장점을 찾아내서는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사업비는 복권기금을 부산시가 받아 충당한다. 부산시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50억원씩을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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