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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독점 깨면, 차보험료 거품 빠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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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수봉
보험개발원장

국내에서 운행되는 모든 차량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자동차보험료를 세금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은 차량 소유자와 사고 피해자의 인적·물적 손해를 복구해 안정적 경제활동을 지속시키는 필수 제도다.

 요즘처럼 국내 판매 승용차 10대 중 1.3대가 수입차인 경우에는 중요성이 더욱 크다. 수입차 수리비는 국산차의 평균 3배 이상이다. 자동차보험사는 1년에 수리비로 4조8000여억원을 지출하는데 이 중 부품비용이 2조2000억여원이다. 그런데 전체 보험사고 건수의 5.8%에 불과한 수입차 사고에 지급되는 부품비용이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5000억여원이다. 그만큼 부품 가격이 비싸다. 중형 수입차 앞 범퍼 커버 가격이 40인치 LED TV나 양문형 냉장고 가격과 유사하다. 동급 국산차 동일 부품 가격의 10배에 달한다.

 자동차부품 시장이 자동차 제작사에 의한 독점체제이고 자동차보험에 가입돼 있는 차량 수리비를 보험사가 지급하기 때문이다. 차량 소유자는 부품가격에 관계없이 자동차 제작사의 부품만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가의 부품가격은 결과적으로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는 주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가 지난 1월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했다. 자동차 제작사 이외의 부품제조회사가 직접 시장에 공급하는 부품에 대해서도 민간 품질인증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새 제도는 엄격한 시험을 통해 자동차 제작사에서 공급하는 부품의 성능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부품에 대해서만 품질인증을 부여하고 동일한 품질보증을 하게 되는 대체부품 공급 제도다. 해외 사례로 볼 때 이런 대체부품의 가격은 자동차 제작사 공급 부품가격의 60% 내외일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안전성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북미나 유럽 등에서는 유사한 제도가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체부품을 자동차보험 수리작업에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보험사가 지급한 전체 부품비용 중 OEM부품(통상 순정부품이라고 함)에 지급한 금액은 66%다. 나머지 34%는 대체부품을 사용하고 지급하는 부품비용이다. 국내의 경우 대체부품 사용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부품은 주로 자동차의 안전성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외부 부착부품들이다. 자동차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부품의 성능이나 내구성에 문제가 없어 선진국 소비자나 정부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다.

 보수용 자동차부품 시장의 자율경쟁을 위해서는 법률적·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유럽에서는 자동차용 외장부품을 수리 목적으로 생산 판매할 경우에 한해 의장권(Design Patent)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이 마련돼 있다. 자동차 보험사고에 의한 수리작업 방법이나 사용하는 부품의 선택권도 보험사에 준다. 물론 보험사는 원상복구 품질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진다. 대체부품 사용이 활발해지면 시장에서는 자율적으로 독점이 완화되고 경쟁이 촉진된다. 국내 부품제조업체도 수입차 부품을 직접 생산해 북미나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 의식과 정비산업의 수리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보험에 의한 수리작업이라 해도 결국은 자신의 보험료로 수리비를 지급하는 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품질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대체부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동차 정비공장도 소비자가 안심하고 차량을 맡길 수 있도록 품질이 검증된 대체부품을 소비자에게 권장할 필요가 있다. 차량 소유자들이 해당 부품의 안전성 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에서 품질을 시험하고 인증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보험업계 역시 적극적인 보험제도 개선으로 대체부품의 사용 확대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사고차량 수리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는 마련됐다. 소비자, 부품산업, 정비산업, 보험산업이 그 과실을 수확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수봉 보험개발원장